'아름다운 강산'
한지에 수묵, 춘수畵
제3공화국 시절, 한국 록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신중현에게 당시 박정희 정권은 권력자인 박정희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라고 꾸준히 강요했다. 허나 신중현은 수차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했고,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없지만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 노래를 만들어 발표했다. 참고로 이후로 정권에 찍힌 신중현은 "미인" 같은 다수의 히트곡들이 줄줄이 금지곡이 되는 수모를 겪으며 오랜 활동 금지를 당했다. 당연히 이 곡 또한 금지곡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건전가요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건전가요들과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물론 신중현은 70년대부터 한국 대중음악을 좌지우지하던 오버그라운드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민중가요로 분류되기도 어렵다. 노래가사 자체가 잘 보면 강산에 대한 찬미에서 시작해 '사랑하는 너와 영원히 살아가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통속적인 감정을 읊으며 마무리된다. 이 나라와 강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네가 있기 때문이며, 자칫 권력자에 대한 찬양을 피하려던 원 의도가 무색하게 전체주의적 메세지로 전락할 수도 있는 조국에 대한 예찬을 이 땅의 아름다운 자연과 '너'로 대표되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찬으로 승화시켜냈다. 그야말로 거장 신중현이 박정희 정권 포함 특정 개인 및 단체가 아닌 대중 전체에게 바치는 의미로 만들어 낸 회심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장현과 더 맨' 앨범에 수록되어 1972년에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더 맨(The Men)은 신중현이 1971년 결성한 밴드로 신중현은 당시에 더 맨의 노래를 담은 앨범을 따로 발표하지 않고 한 면엔 다른 가수의 노래를, 다른 면에 더 맨의 노래를 담은 스플릿 앨범으로 주로 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장현이 부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더 맨은 신중현 사단의 전속 밴드에 가까운 위치였기 때문에 이 곡은 애초에 장현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곡. 메인 보컬은 더 멘에서 보컬을 맡았던 박광수. 신중현은 본인도 모르게 이런 식으로 앨범명이 만들어져 발매됐던 것에 꽤 불쾌해한 듯, 본인이 리마스터링 작업을 해서 '신중현과 더 맨'이라는 이름으로 재발표했다.
그 뒤로 신중현 본인도 여러 차례에 걸쳐 셀프 커버하여 발표한 등 상당한 애착을 보였고, 이선희를 비롯한 수많은 가수들의 음반 및 공연으로써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현재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시대를 관통하는 명곡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비공식 애국가' 라는 소리도 나올 정도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에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친박근혜 성향 단체가 집회에서 이 노래를 쓰는 데에 신중현의 아들인 신대철이 분노를 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신대철은 2016년 12월 31일, 박근혜 퇴진 10차 집회 때 '아름다운 강산'을 공연했다. 전인권 밴드, 신대철의 동생 신윤철 등이 연주하고 국악으로 협연하는 20분짜리 노래로 편곡했고, 보컬은 전인권이 맡았다.
2000년대 초반, 북한에도 이 곡이 전파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특히 평양의 음악 전공생들에게 인기가 많아 당시 북한에 성악을 전공한 학생들은 이 곡을 불러야 성악을 한다고 인정받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고. 북한이 이 곡의 배경 지식을 알 확률도 드물고 당시 남북 교류가 이어지던 시절이었으니 딱히 금지곡은 되지 않은 모양.
첫댓글 이선희에게 빚진 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