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9 - 고고학 박물관에 입장해 미노아 문명과 미노타우로스를 생각하다!
지중해 여행 엿새째인 2024년 4월 28일 헤라클레이온에서 2번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20분을 달려 크노소스 궁전 Knossos Palace ΚΝΩΣΣΟΣ 에 도착해 유적을 봅니다.
크노소스궁 왕의 침실 벽돌에 새겨진 양날 도끼와 왕비의 침실에 돌고래 프레스코화
에다가 수세식 변기가 유명하며 계단 끝까지 오르면 중앙 안뜰이 있고 북서쪽
왕실에 석조 왕좌가 놓여져 있고 공인들의 작업장에는 프스코화가 남아 있습니다.
미노스왕은 기원전 1700년경 수도 크노소스에 미궁(迷宮 : 라비린토스) 을 만들어 미노타우로스
(Minotaurus 미노스의 황소) 라는 괴물을 가두는데..... 방은 벽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러고는 크노소스궁전 밖으로 나와서 2번 버스를 타는데.... 이게 여기 정류소
에 들어올 때는 분명히 2번이었는데...... 순식간에 20번으로 바뀝니다?
엘레프타리아스 광장 Plateria Eleftherias Square 에 내려 광장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들어가니
입장료는 12유로인데 마눌은 다시 60세 할인을 위해 여권을 내보이라고 해서 그리했더니
역시나 크노소스궁 처럼 유럽 시민만 할인이 된답니다? 중국에서는 외국인도 똑 같이 할인해 주더라만....
헤라클레이온 고고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of Herakleion 은 옛 프란체스코 수도원
자리에 지어졌다는데...... 선사 시대로 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는 출토품으로 가득합니다.
이라클리온(헤라클레이온)은 역사와 문화가 깊게 얽혀 있으니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
은 고대 유물의 보물창고로서 크레섬의 과거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정교한 그리스 조각품 부터 복잡한 보석 까지, 박물관은 방문객에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 문명의 예술적 성취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제4 전시실의 뱀의 여신, 파이스토스판등 마노스의 반지와 금세공품등 크레타 미술에
관해 최고의 수집으로 황금 벌 펜던트는 벌 2마리가 둥근 벌집 양쪽에서
벌집 위에 꿀 한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는 형상이니..... 저 벌집의 정교함이 놀랍습니다.
20세기 초기부터 크노소스를 비롯 각지의 발굴이 진척되어 출토품도 급속히 증가돼 미술관의 조직과 건물이
서서히 정비되었는데 BC 1600년~1400년경에 그려진 프레스코하는 화려했던 당시 제작 기법을 보여줍니다.
여기 박물관 전시물 중에 뱀의 여신은.... 뱀은 허물을 벗는지라 재생을 의미하는 동물
이니, 게다가 여인의 젖가슴은 풍요를 뜻하니 그럼 뱀의 여신은 "농업의 신" 입니다.
김진경 교수는 지중해 문명산책에서 여신상을 보고 “대담하게 노출한 가슴, 가는 허리, 플라멩코 무희와 같은
현대적이고 섹시한 포즈” 라고 말했으며 한국사학자 이재범 교수도 “나의 그리스여행” 에서 극찬했습니다.
크노소스궁을 세운 미노스왕은 해신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형제들과 경쟁에서 승리해 크레타왕
이 되었는데, 이후 포세이돈은 그에게 왜 자신에게 약속한 소 제물을 바치지 않냐고
따졌고... 이에 미노스가 제물로 바칠 훌륭한 소가 없다고 하자 파도로 하얀 황소를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미노스왕의 아내 파시파에 (Pasiphaë) 가 이 잘생긴 황소를 몹시 마음에 들어한 나머지
제물로 바치지 말고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했고...... 미노스는 그 부탁을 들어주어
제물로는 다른 소를 대신 바치자, 이 제물 횡령 사태는 포세이돈에게 들통났고
분노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가 문제의 소를 아예 사랑하도록 저주를 내립니다.
소는 암소만 보면 발정이 나서 난리를 치면서도 인간의 접근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으니
파시파에로서는 소에게 다가갈 도리가 없었는데.... 암소를
향한 질투에 눈이 먼 파시파에는 당대 최고의 발명가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다이달로스는 암소 모형을 만들어줬고, 왕비는 이 가짜 암소 안에 들어가 옆구리의 구멍을 통해 황소를 만질수
있었으며.... 결국 소와 관계를 해서 태어난 괴물이 미노타우로스이니, 머리는 소 이고 몸은 사람이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잡아 먹었고, 미노스 왕은 크노소스 궁전 안의 미궁 라비린토스에
가두고 마침 크레타의 왕자 중 하나인 안드로게오스를 죽인 아테네로 부터 사람들을 데려와
미노타우로스 먹이로 주었으니 일년에 소년, 소녀 7명씩을 아테네에서 조공받아 미궁에 던져줬다고 합니다.
후일 아테네 청년인 테세우스가 와서 미노스의 딸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게 되는데.... 신화이기는 하지만 이런 신화 속에 역사의 흔적이 있으니
크레타는 아테네의 상국이었다는 것이며 아테네는 조공을 바쳐야만 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에서 인용한 다른 기록에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 왕의 부하 타우로스장군
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웹툰 "플루타크 영웅전"도 이 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인물은 이름이 "소" 인 셈인데, 고대 인물들의 이름들을 보면 리카온(늑대), 레온(사자)
등 동물에서 따온 이름이 꽤 있으니 이상할 일은 아니며 다만 미노스 문명은
그리스어 계열이 아닌 언어를 사용했으니 그리스 계열에서 번역 차용해 붙인 명칭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전승에서 전해지는 타우로스 장군은 용맹하여 시합에 나가면 늘 이겨서 노예를 많이 차지했으며,
잔인한 성격이라 그들을 가혹하게 대했다고 하는데.... 왕은 타우로스 장군이
왕비와 가깝게 지내자 그를 싫어했고, 그를 처치하기 위해 테세우스의 손을 빌렸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역사와 신화를 조합하자면 미노타우로스 전설을 문명의 패권이 미노스 문명에서 미케네 문명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기호로 보는데.... 즉 미노타우로스는 크노소스 궁전 벽화나 다른 유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소를
중심으로 한 미노스 종교로, 이 신(소)과 결합을 표현하니 바알 처럼 신을 괴물로 비하한 은유로 해석됩니다.
선진 크레타 문명이 후진국인 그리스를 압도하던 시기에는 그리스 본토 젊은이들이
제물로 많이 희생되었는데..... 후에 그리스 본토 국가들이 크레타를 정복한 것을
아테네를 대표하는 영웅인 테세우스의 미노타우로스 토벌로 표현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미노스 문명에서 실제로 인간의 뼈에서 살을 도려낸 흔적이 대량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아즈텍 처럼
식인 행위가 있었던게 아닌가 추측하는 학자도 있는데,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것은 제사 의식의
일부인 경우도 있지만, 크레타에서 발견된 뼈에 남은 흔적은 그러한 의식의 결과물들과는
다르고, 동물을 도축할 때의 흔적과 유사하며 가축의 뼈 및 기타 다른 식재료들과 함께 발견됩니다.
인신공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사와 관련된 흔적을 찾기는 어려우니.... 그렇다면
그리스 소년들은 현대적인 해석에서 처럼 '제물' 로 바쳐진 것도 아니고 '소의 머리를
한 괴물' 로 표현된 크레타인들에게 문자 그대로 '먹이' 로 바쳐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각에서는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는 당시 크레타의 상황을 풍자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으니....
인류학자 조지 프레이저의 추정에 따르자면, 미노스 문명은 본래 왕권의 교체가
8년 주기의 마지막 해에 결정되었으니 이는 다른 그리스 지역에도 적용되는 법칙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노스 왕이 지내기로 한 숫소 희생제 경우, 8년 주기의 마지막 해에, 전통에 따라 왕 자신이 희생
되어지는 의미를 지녔지만 대용물로 아테네 출신의 일곱 청년과 일곱 처녀들이 바쳐지게 된 듯 하니
미노스 왕은 사실상 자기를 희생시켜야했지만 종교적, 사회적 합의를 어기고 폭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엄격한 신분제에 따라 자기 역할이 있었던 제정일치 사회는 결국 그 사회의 대표인 왕에 의해 붕괴
되어 사리사욕만 챙기는 상업국가로 변질되었다는 추정인데.... 크레타 문명이 산토리니섬
의 화산 폭발로 인한 해일이었던, 그리스의 침략이었든 멸망하고 나서 크레타의
신으로 신성시 되던 황소가 그리스의 시선에서는 끔찍한 괴물로 변모해버린 것이라고도 합니다.
미노타우로스가 지진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추정하는 가설도 있으니 미노타우로스를 묘사한 문헌 중에 "모습
은 보이지 않고 굉음이 울린다"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있는데, 지진의 묘사와 유사하니 크레타 섬은
유라시아 판과 아프리카 판이 부딪히는 보존형 경계에 위치해 지진이 많은 지역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다이달로스가 만들었다고 하는 크레타 섬 지하의 미궁이 아직 고고학적으로 발굴되지 않았다는 것도
지진 비유설에 힘을 실어주는데..... 이렇게 본다면 테세우스는 운좋게 지진이 끝났을
때 크레타 섬에 왔고 이를 자신의 공으로 돌린 셈이 되는 것일지도.... 나의홈 : cafe.daum.net/baikall
첫댓글
자신(自身)의 마음 그릇이 제대로 놓여 있는지
‘확인(確認)’해 볼 일입니다.
사람이 쓰는 말 중에서 ‘감사(感謝)’라는 말처럼
아름답고 귀한 말은 없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늘 ‘인정(認定)’이 있고,
늘 ‘웃음’이 있고, 늘 ‘기쁨’이 있고,
늘 ‘넉넉함’이 있습니다.
감사(感謝) 합니다.
🍊🍊🍊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