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처음 읽으며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참 후에 깨닫고 보니 받은 대로 갚아주라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복수의 개념이 아닙니다. 사실은 보상의 개념이지요. 사람에게는 특히 좋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되로 받은 것을 말로 갚아주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좋게 표현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얹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뺨 한 대 맞았다면 두 대 이상을 때려주고 싶은 것이 우리네 일반적인 특성이란 말입니다. 바로 그런 못된 성품을 제한시키고 막으려는 목적이 있는 법이고 규율입니다. 이 하나가 빠졌느냐? 그러면 상대방의 이 하나만 빼면 된다는 것이지요. 그 이상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물론 오늘날은 그런 법칙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이 새로운 법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들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지키고 말고는 우리들의 선택입니다. 참 신앙인들은 되든 말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무나 택할 수 있는 삶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사실은 그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지요. 일반인들이 따라가기 힘든 삶이기에 존경과 경외를 보냅니다. 흔치 않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도 작품화 되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부로 닿을 수 없는 그런 삶에 감동을 받고 자신의 인생에 귀감을 삼기도 합니다.
그 반대로 특별한 삶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복수극은 흔히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소설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악행이 악랄하고 무자비할수록 그 복수에 대한 기대는 증폭되고 기대됩니다. 때문에 소위 인기를 높이려면 비례하여 그 악행의 수위를 높이면 됩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영화 ‘레옹’에서 부패한 형사의 악행에 대한 복수를 말입니다. 저 놈은 반드시 죽어야 해, 하는 마음을 부여잡고 함께 이야기의 끝을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주 가까이 ‘범죄도시2’에 등장하는 잔인한 악당의 최후를 좇아가는 우리네 마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저 놈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해, 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의 끝을 보면서 막혔던 속이 확 풀립니다.
빤히 보는 눈앞에서 엄마가 그리고 뒤이어 아빠가 총탄을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집니다. 이미 상황을 예견한 아빠는 어린 딸에게 자료가 담긴 칩을 건네줍니다. ‘카탈리아’는 그것을 삼킵니다. 대단한 기지와 담력으로 악당들을 따돌리고 바로 그것 덕분에 수사관의 도움을 받아 미국행 여권과 여비를 얻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여서도 결코 어린아이 같지 않은 행동으로 경찰과 수사관들의 보호를 따돌리고 시카고에 있는 삼촌을 찾아갑니다.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삼촌과 할머니를 만납니다. 비로소 억눌렀던 슬픔을 토합니다. 대단한 서막이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카탈리아의 미국 도피행이 그려집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조직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부모가 그 조직으로부터 무참히 살해됩니다. 카탈리아의 가슴에는 복수심만 남습니다.
삼촌이 키웁니다. 복수를 하더라도 일단 자신부터 보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총만 잘 다룬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모든 배움 속에는 아마도 그 복수심이 처절하게 스며있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끈질기게 그리고 더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였을 것입니다. 15년의 세월이 그녀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상상해봅니다. 옛날 보았던 만화책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도사를 찾아가서 긴 세월 수련을 쌓아 자신도 무예의 도사가 됩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에 나와 활동을 하는 것이지요. 개인적인 복수도 될 것이고 사회적인 구제나 구원도 될 것입니다. 악을 처벌하고 약한 백성을 돕는 일을 합니다. 소위 의적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원수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 사이 어디에 잠적하여 잘 먹고 잘 사는지 모릅니다. 어떻게든 찾아내야 합니다. 방법은 그가 스스로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찾고 있다는 기미를 던져줍니다. 그것이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고 바로 당사자에게도 알려져서 자기를 찾도록 유혹합니다. 그 미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악인들을 골라내 살해합니다. 그리고 흔적을 남깁니다. 살해 현장에는 콜롬비아에서 유명한 꽃을 그려놓거나 그 꽃을 남겨둡니다. 사건을 맡은 FBI 수사관이 몇 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통합하여 범인을 찾아냅니다. 수사망을 좁혀 범인과 맞닥뜨립니다. 기막히게 빠져나갑니다. 상황은 이해하지만 도울 수는 없습니다. 그도 살인자니까요.
자기 때문에 삼촌도 할머니도 살해됩니다. 도저히 살려두어서는 안 되는 악당으로 만듭니다. 결국은 색다른 방법으로 끝장을 보게 됩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특색이 있다면 우람한 실력자도 아니고 뛰어난 전직 요원도 아닌, 아주 날렵한 여성으로 시원하게 복수한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그런데 자기 일(?)을 할 때는 그 분야 월등한 도사입니다. 영화 ‘콜롬비아나’(Colombiana)를 보았습니다. 2011년 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