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계가 있는 서가
내 서재 서가 둘째 칸에는 시계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살아 있고 하나는 멈춰 있다. 바늘이 성실하게
움직이는 것은 작년에 다이소에서 삼천 원을 주고 산, 지름이 한 뼘쯤 되는 둥근 아날로그 시계다. 값은 싸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는, 말 그대로 제 몫을 다하는 시계다.
다른 하나는 오래전 내가 배를 탈 당시, 2기사로 일하던 시절 일본에서 샀던 네모난 탁상용 알람시계다. 지금은
고장이 나 하루에 두 번만 맞는 시계가 되었지만, 나는 끝내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시계는 내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미드워치가 되면 일어나기 싫은 몸을 억지로 흔들어 깨워주던 친구였고, 바다
위에서 길고 고단한 밤을 함께 견뎌준 죽마고우 같은 존재다. 지금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지 못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장 난 시계 속에는 그 시절의 땀과 파도 소리, 그리고 젊은 날의 고단함이
그대로 멈춰 있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시계와 그다지 인연이 깊은 사람은 아니었다. 학생 시절에는 집이 가난해 손목시계 한 번 차보지 못했다.
시간은 늘 교실 벽에 걸린 시계나 남의 손목 위에서 흘러갔다. 결혼 예물로 받은 시계도 신혼 때 집사람 눈치가 보여 잠시
손목에 차다가, 어느새 책상 서랍 속에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그보다 앞서 외삼촌이 결혼하시며 물려주신 손목시계도 있었지만, 내 손에 있는 시간보다 전당포에 맡겨진 시간이 더 길었다.
해군에 있을 때는 술집에 시계를 맡겨 두고 술을 마신 적도 많았고, 결국 그 시계는 전당포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배를 탈 무렵, 동료 선원들 중에는 결혼 선물로 롤렉스 시계를 사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연가로 귀국하며
앵커리지 공항 면세점에서 삼백 불짜리 남녀용 오메가 시계 한 세트를 샀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내 형편과 마음
에는 충분한 선택이었다. 결혼식 날 서로의 손목에 채워주던 그 순간만으로도 시계는 제 역할을 다한 셈이었다.
시계는 예나 지금이나 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시계의 근본적인 기능은 단 하나,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고급 시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어도 언제 어디서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손목시계는 어느새 필수품의 자리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서재에는 여전히 두 개의 시계가 있다. 컴퓨터 화면에도 시간이 나오지만, 서가에 나란히 붙어 있는 이 두
시계는 각기 다른 말을 걸어온다. 멈춘 네모 시계는 옛날 배 타던 시절로 나를 데려가고, 살아 있는 둥근 시계는 지금 이 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말라고 재촉한다.
하나는 지나온 시간을, 다른 하나는 남은 시간을 보여주는 셈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것을 대하는 마음은 저마다 다르다. 내 서가의 두 시계는 오늘도 말없이 그 사실을 가르
쳐 준다. 멈춰 있어도 의미를 잃지 않는 시간이 있고, 쉼 없이 움직이기에 더 소중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그 앞에 앉아,
흘러간 시간과 흘러갈 시간을 조용히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