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어회가 비싼지 싼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연어횟감은 상당히 싼 편이다.
창고형 대형매장인 샘스에서 냉동연어횟감을
온라인으로 사놓고 한 번씩 별미로 꺼내 먹는데
입에 살며시 녹는 맛이 일품이다.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먹으면,
"오늘은 그 이야기 안 하실 거죠?" 하며
나에게 미리 확인을 받는다.
자주 했더니 귀에 딱지가 앉았나 보다.
회만 보면 생각나는 이야기니 어쩔 수 없다.
**
<약속시간 1시간 전>
"우리 동해바다까지 왔는데 회는 묵고 가야지?"
"그래. 시간도 충분하니 묵고 가자."
문무수중왕릉을 지나 월성 원자력발전소 가까운 곳.
동업하던 고등학교 친구 섭이와 둘이서 작은 마을로
내려갑니다.
자잘한 섬 하나 없이 확 트인 동해바다는 늘 보는
이의 가슴에 포부를 담게 합니다. 대구에서 자랐던
우리 둘은 회에는 별로 상식이 없다 보니, 그나마
눈에도 익고 먹어본 적도 있는 아나고회를 찍었습니다.
"둘이서 점심 겸해서 먹으려면 어느 정도 하면 될까요?"
"반 관 정도 하시면 돼요."
"반 관이면 얼만데요?"
"이만오천 원."
"네. 주세요."
관에 대한 개념이 없다 보니 서울 물가 기준으로
가격이 그 정도면 괜찮다 싶어서 시켰지요.
주방 겸 부엌에선 이내 똥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 둘은 느긋하게 허리띠를 풀었습니다.
<약속시간 30분 전>
여전히 주방에선 쉼 없이 똥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인심 넉넉한 미리 나온 입맛음식들로 이미 배가 불렀습니다.
"야... 이 집 인심 한번 좋다~ 역시 시골이라 다르네."
"근데... 회는 와이래 빨리 안 나오노?"
"아지매요~ 우리 시간 없는데 빨리 주소 고마~"
"네네~ 다 돼 갑니더~ 쪼매만 더 기다리소~"
속에 든 음식들이 속에서 부푸는지 배는 점점 더
부른 느낌입니다.
<약속시간 15분 전>
여전히 주방에선 쉼 없는 소리 똥땅거립니다.
"이거 시간 늦어서 묵지도 못하겠다~ 빨리 주소 고마~"
"다 됐어예. 인자 곧 나갑니더~"
"아따... 그 참 더디네. 인자 일어나야겠는데 우짜노?"
초조해진 우리는 자꾸 시계만 봅니다.
<약속시간 10분 전>
드디어 주방의 똥당 소리가 멎었습니다.
"자~ 나왔어예~"
주인아줌마가 큰 회 접시(양푼이 크기만한)를 들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옵니다.
섭이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립니다.
그 시선을 따라가던 내 눈도 왕방울이 됩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회 접시에는 깻잎 두어 장 깔고
거의 십 센티 높이의 아나고회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기 뭔교?"
"아나구회 아인교?"
"근데 와이래 많노?"
"뭘 많아요... 두 분 드시기 적당하지예."
"적당??? 으.............."
전의 상실... 그래도 오기로 혹은 아까운 마음에
젓가락을 듭니다.
"아이고 나는 더 못 묵겠다. 니 다 무라~"
깻잎에 몇 번 고상하게 담아먹던 섭이가 뒤로 벌렁 나자빠져버립니다.
<약속시간 5분 전>
"안 되겠다... 부라~"
돌 던지기 전에 마지막 비장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뭘?"
섭이가 의아하게 쳐다봅니다.
"초장을 회 우에 부란 말이다~"
"니 정말 다 묵고 갈라꼬???"
"그라마 니는 남기고 갈라꼬???"
회 위에 초장 한 그릇을 다 붓고는 숟가락으로
비볐습니다.
아... 그다음은 회상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입과 회 접시 사이를 오가던 현란한 나의 숟가락질.
점점 더 커져가던 섭이의 눈.
결국 그날 우리는 약속시간을 십분 넘기고서야
발전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섭이는 의젓한 걸음으로, 저는 숨이 차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오는 길, 웬 트림은 그리 자주 나는지...
그때마다 함께 솟구치는 초장냄새와 비린 아나고 냄새.
그날 제가 먹었던 것은 아나고회가 아니라
아나고밥이었습니다.
회를 먹을 때면 늘 그때 기억이 떠오르고, 저는 언제나 그때보다는 더 맛있는 회들을 우아하게 먹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는 두 번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아나고회를 먹게 되더라도 절대 안 하겠습니다. ㅎ
* 아나고의 우리말은 붕장어입니다.
그 당시 알던 아나고로 그냥 썼으니 이해 바랍니다.
첫댓글 연어샐러드, 연어초밥, 연어덮밥
무지 좋아해요~
부드럽고 감칠 맛 최고!
아나고는
징그러워서 못먹어요
그런데
장어는 먹어요~ㅎ
집에서
자꾸 한 얘기 또 하면 싫어하지요?
한 서너번은 들어줄 수 있는데
그 이상은~
마트에 가면 팩에 든 연어는
그리 비싸지 않아요
저도 집에서 종종 요리해 먹는답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분지 대구에서 자라다 보니
회는 데친 오징어와 아나고가
다인 줄 알고 컸습니다. ㅎ
아나고 먹는 날은 큰맘 먹은 날이 였는데... 비싸고 귀해서. ㅎㅎ
음식점에서 주문한 회가 너무 많아서 먹기 힘들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회를 좋아하시는 분 인거 같습니다
회는 삼겹살보다는 더 고급인 음식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나는 언젠가 부터는 회를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회는 맛있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양은 너무 많고 시간은 촉급하고...
결국 회를 비빔밥처럼 비벼서
숟가락으로 밥 먹듯 떠먹었어요.ㅎ
약속시간은 다가오고
아나고회는 여전히 만들고 있는 중
안봐도 눈에 선해요.
연신 시계 보면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요.
난생처음 먹어본 아나고밥을
먹을만 했나요?
네.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물릴 정도로 많이 먹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아나고회는
물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지금 한국에 나와 있으면서
먹고픈 음식 중 하나가 아나고회..
젊었을 적엔 아나고회는
서비스로 주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비싸고,
메뉴에서 보기 힘들더군요..
학창시절 부산출신 친구가
고향집 갔다가 가져왔는데
아나고 기름을 뺀다고
사용하는 세탁기에다 돌려서
맛있게 먹긴 했는데..
그 집 빨래에서 한달간 생선
비린내가 나서 고생했다는 후담..ㅎㅎ
붕장어가 귀해졌나요?
값도 비싸군요...
ㅎㅎ 세탁기에 돌리다니,
젊은이들의 지혜 맞네요.
뒷일이야 뭐. ㅎㅎ
과유불급입니다.
좀 적게 줘야 맛있게 먹을 텐데
인심이 너무 좋아도 탈이네요.ㅎㅎ
아나고회는 약간 쫄깃한 게
맛있게 먹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점삼 때였는데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어요. ㅎ
아무래도 값 바가지 아닌
양 바가지를 썼던 것 같은데,
평생 웃을 재료를 건졌으니
제가 덕을 본 거지요. ㅎ
뭐든 적당하게 약간 모자랄 정도로
먹어야 제맛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엄청나게 아나고회를 드시고도
아무탈이 없으니 마음자리님은 건강하신 체질이네요.
듣기에는 아나고는 지방이 많아서
궂은 날에는 먹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씀이었어요.
식중독에 걸리면 혼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나고 회를 좋아 합니다만,
먹어 본지는 부산을 떠나온 지 오래 됩니다.
아나고 회로 이름 난 곳이
기장 대변 마을이지요.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자리님의 글로 잠시 고향 생각 났습니다.
어제는 동해안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봄은 콩꽃님이 맡아두고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바다와 산과 들과 도시가,
나라 전체가 봄으로 활짝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나고가 그렇게 지방이 많군요.
저희 젊을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없어서 못 먹었지요. ㅎ 있으면
뭐든 다 먹어치울 때라... ㅎ
고향이 기장이시군요.
제가 부산에서 군생활 할 때,
겨울 동계훈련이 기장 해안초소에
가서 일주일간 야간 경계하고 오는 것이었지요.
까만 밤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
들려오던 그 바다 생각납니다.
@마음자리
고향이 기장은 아닙니다.
부산근교에는 전통 깊은 사찰,
유명한 해수욕장
조금만 나가면 동해안 남쪽 해변길
기장은 부산 근교에 있기 땜에...
자연 경관과 인심 좋은 곳,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세계로 나가는 부산항^^
한국에서의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계시군요.
계룡산 아래 산골에서 자란 저도 광주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회 때문에 일화가 많았어요.
회를 먹어본 적 없는 산골 촌눔이 만만하게 먹을
수 있는 게 붕장어(아나고)회였던 기억이 납니다.
좋은 추억은 아무리 되새김해도 질리지 않습니다.
알래스카에서 연어를 잡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
저는 지금도 멍게를 좋아합니다.
처음 먹었을 때 입안 가득 바다를
물고있는 것 같던 그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아나고는 스무살 넘어 처음 먹었는데,
깻잎과 초장과 아나고의 맛조합이
독특해서 좋아했던 것 같고요.
연어는 시애틀쪽에서 많이 잡는다던데
알래스카에서도 많이 잡는군요.
마음자리님 글읽으니 ᆢ같이 초장을 듬뿍 친 아나고회를 먹은듯 합니다
속도 비릿비릿하지요? ㅎ
참 푸짐하게 먹었군요.
미식가들이 봤다면 웃었겠어요.ㅎ
회를 밥 퍼먹듯 먹었으니.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