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는 내 인생의 동반자 - 생활탁구인 정임순 동호인
일과 결혼하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그렇다, 그럭저럭, 아니다 중 고르라면 당신은 어느 쪽인가? 성공적인 삶을 얘기하는 이들 중 적잖은 수는 ‘만약 <그렇다>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새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그렇다고 워크홀릭이 되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역설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직업에 가지는 애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취미가 곧 특기이자 생활?
생활체육 탁구 시합이 벌어지는 경기장에는 유독 관심을 끄는 시합이 있게 마련이다. 소위 빅게임이라 불리는 우승 후보들의 대결이거나 고수 대 고수의 일전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또 어떤 게 있을까? 자주는 아니지만 남녀 성대결을 들 수 있겠다. 최진구가 만든 길거리탁구에서는 남녀 성대결이 하도 빈번해서 그다지 얘깃거리가 안 된다. 하지만 일반 탁구시합에서 펼쳐지는 남녀 성대결은 늘 관심폭발이다. 그런 대결 구도 자체도 관심거리지만 플레이 스타일로도 늘 주목받는 여성 탁구인이 있다고 했다. 그가 워크홀릭 비스무레한 인물이며 이번 호 주인공이다.
탁구는 내 인생의 동반자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 비뚤어지기는커녕 더 강력한 독침 한 방의 위용을 자랑하는 녀석들이 설치고 다니던 8월 하순 저녁 6시. 서울지하철 2호선 봉천역 근처의 한 빌딩 앞.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오더니 민첩하게 빈 공간을 찾아 주차한다. 이어 환하게 손을 흔들며 차에서 내리는 모습.
“오래 기다리셨어요? 지금 인천에서 오는 길이라……”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근데 바쁘시네요.”
“탁구 한 게임 하다 오는 길이에요.”
“예? 근무시간 아닌가요?”
“제 경우는 근무시간에 관한 한 직장에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해 주시는 편이에요. 업무 특성상 밤낮이 없고 토요일, 일요일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요.”
그랬다. 근무시간에 관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할 수도 있는 직장도 있었다. 제 아무리 신이 내린 직장이 인기 있다지만 이쯤 되면 ‘신도 부러워할 만한 직장’ 아닌가? 그는 바로 그런 직장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의 직업은 FP(Financial Planner/금융자산관리사-보험설계사)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일하는 이의 연봉은 얼마 정도일까? 우리가 또 궁금한 거 못 참는다. 물어봤다. 근데, 놀라지 마시라! 미만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억 정도라고 한다. 소위 잘 나가는 대기업 수준을 지나 요즘 최고 인기인 증권맨이나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수준이다. 그것도 이미 7~8년째라니…… 헐~
한 달 관리 금액만 1억
그런데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전혀 그런 티 안 낸다. 폼 잡고 다니지 않는다는 얘기이고 그만큼 검소하단 얘기다. 속내를 알고 보니 그럴 만 했다.
“품위 유지비라고 해야 되나요? 그게 적지 않게 들어요. 나름대로 고객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고객들 경조사 챙기기부터 자잘한 것까지 관심을 갖고 일하다 보면 수입의 일정 부분은 늘 재투자 되거든요. 또 가족이 10남매로 식구가 많은 편이라 알게 모르게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았구요.”
아직 미혼인데다 워낙 고운 심성을 가진 그녀 인지라 가족들에 대한 애착도 그만큼 컸으리라. 짐짓 가족 내에서 그의 역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그 뿐은 아니었다. 버는 만큼 어느 정도는 주변의 이웃 특히나 불우이웃을 위한 기탁금 등 성금으로 지출한다고 했다. 있건 없건 관계없이 자기 몫 챙기기에 바쁜 요즘, 참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얘기다. 갑자기 예전 번안곡 히트가요 중에 전영이 불렀던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어찌 보면 시합장이 일터일 수도 있는 그로서는 전국 각지를 누비며 동호인들과 탁구 한 게임을 통해 만나는 매 순간이 모두 행복일 수 있겠다. 탁구도 즐기고 업무도 볼 수 있으니까. 어딜 가나 누굴 만나도 최선을 다해 멋진 한 게임으로 상대해 주는 정임순 동호인. 알려진 바로 그녀는 탁구선수 출신으로 실업에서도 뛰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국가대표 출신으로 알고 있기도 하다. 사실 확인 결과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북 고창에 있는 인천초등학교에서 탁구를 시작했어요. 제 체격조건이 좋았는지 선생님이 해보라고 하셔서 라켓을 잡게 된 거죠. 그 때만 해도 정식 탁구부라기 보다는 코치도 없이 애들끼리 그냥 했는데 우연찮게 지역 대회에 참가했다 팀이 좋은 성적을 내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정식으로 시작하게 됐죠.”
정임순-양영자 복식조가 탄생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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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아산중학교 탁구부로 진학한 그를 눈여겨보던 관계자에 스카웃되면서 이리 남성여중 탁구부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선수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 만난 후배가 전 국가대표 양영자 선수다. 뒤이어 전주여상에 진학한 뒤 2학년 때 팀이 해체되고 만다. 그리고 양영자를 만들어낸 이종학 당시 이일여고 감독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정임순-양영자’라는 환상 복식조의 탄생이 안타깝게 깨진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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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선 흔치 않은 왼손 펜홀더였고 백핸드를 구사했기 때문에 더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돼요. 하지만 팀원들이 있는데 저만 갈 수는 없었죠. 결국 그렇게 운동을 그만 뒀어요. 그런데 주변의 선생님들이 참 많이 애써 주셨죠. 그 덕분에 실업팀인 산업은행에 들어가게 됐구요. 하지만 학생 신분으로 입단해서 오랜만에 잡은 라켓에 적응하지 못하겠더군요. 그만두고 말았죠. 그게 선수생활의 전부예요.”
탁구는 에너지의 원천
그는 초등학교 시절의 은사 이연형 선생님을 잊지 못하고 찾아보고 있다. 자신에게 탁구를 가르쳐주신 감사한 마음 때문이다. 그 때 시작한 탁구가 지금의 자신을 지탱시켜 주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다른 사람의 자산, 노후 관리 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도 계획하고 있다. 일할 수 있는 한 일하면서 좋아하는 선배 언니 민경욱 씨와 함께 멋진 탁구클럽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저렴하면서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아지트가 될 수 있는 탁구 공간 - 그것은 탁구를 사랑하는 정임순 동호인의 소망이기도 하다. 탁구라켓은 그에게 특별한 도구 그 이상이다. 탁구는 그와 평생을 함께 할 영원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2007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