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언(醒言) 25. 〔의리에 맞는 죽음〕
의리에 맞는 죽음
임경업(林慶業)은 광해군 때에 청주 목사(淸州牧使)가 되어 권신(權臣)에게 붙어 공명을 세우려 노력하다가 계해정사(癸亥靖社) 때에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 되었다. 임경업이 여기에서 그쳤더라면 일개 탐욕스러운 비부(鄙夫)에 불과하였을 것이니, 후세에 누가 임 충민(林忠愍)을 알겠는가.
김응하(金應河)는 무신(武臣)의 소두(疏頭)로서 인목대비(仁穆大妃) 유폐 사건에 참여하였으니, 만일 심하(深河)의 전투에서 죽지 않았더라면 계해정사 때의 참륙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훌륭하고 훌륭하지 않음은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정해지는 것이니, 이 때문에 군자는 의리에 맞게 죽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주-C001] 성언(醒言) : 사람을 깨우치는 말이란 뜻으로, 총 3권에 인물평 및 일화, 사론(史論), 필기(筆記), 한문단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 임경업(林慶業) : 1594 ~ 1646.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이다. 친명반청(親明反淸) 사상이 투철한 무장으로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활약하였으며,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된 이후에도 명나라와 협력하여 청을 공격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다. 시호가 충민(忠愍)이다.
[주-D002] 계해정사(癸亥靖社) : 광해군을 내쫓고 능양군(綾陽君)을 인조(仁祖)로 옹립한 인조반정을 말한다.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 유폐 사건이 일어나자 서인(西人)은 이를 구실로 무력 정변을 꾀하였다. 계해년(1623, 광해군 15)에 반정에 성공한 뒤 광해군을 강화로 귀양 보내고 대북파 수십 명을 참형에 처하였다. 그리고 반정에 공을 세운 사람을 정사 공신(靖社功臣)에 녹훈하였다.
[주-D003] 김응하(金應河) : 1580 ~ 1619.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의(景義)이며, 철원 출생이다. 1618년 명나라가 후금(後金)을 치기 위해 조선에 원병을 청하자, 이듬해 2월 도원수 강홍립을 따라 좌영장(左營將)으로 압록강을 건너 출정하였다. 명나라 군사가 대패하자 3000명의 휘하 군사로 수만 명의 후금군을 맞아 심하(深河)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전사하였다.
첫댓글 사람의 훌륭하고 훌륭하지 않음은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정해지는 것이니, 이 때문에 군자는 의리에 맞게 죽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맘에 와 닿네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