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경 위의 등불
— 우리는 한쪽 소리만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아주 익숙한 구절을 만납니다.
바로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둔다는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까지 공관복음 모두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씀이죠. 그동안 저는 이 본문을 대할 때 늘 마태복음의 이미지로만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이 보여주는 등불: 세상을 밝히는 선한 행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5~16)
마태복음에서 등경 위의 등불은 세상에서 우리가 행해야 할 ‘선한 일’입니다. 세상의 빛으로서 모범이 되고, 세상을 밝게 하는 행동을 하라는 주님의 따뜻한 권면이죠. 참 친숙하고 익숙한 말씀입니다.
마가와 누가복음이 보여주는 등불: 속지 않는 지혜와 분별
그런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보면 이 등불 이미지가 전혀 다른 각도로 쓰입니다.
두 본문은 90%가 넘는 일치율을 보일 정도로 거의 동일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마가복음 4:21~25)
(누가복음 8:16~18 동일)
이 두 본문에서 참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등불을 켜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다는 이야기 바로 뒤에, 숨은 것이 결국 드러나고 감추인 것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언급이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왜 예수님은 등불 이야기를 하신 뒤에 “무엇을 듣는지 스스로 주의하라”고 경고하셨을까요?
문득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은 본래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좋은 상품도 알려져야 팔리기 때문에 세상은 광고에 열을 올립니다. 때로는 진짜 목적을 깊이 감춘 채, 화려하고 매력적인 얼굴을 먼저 내밀기도 하죠.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등불을 환하게 켜서 사람을 현혹하고 유혹하는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납니다. 사탄 역시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꾸미고 찾아오지 않습니까.
헤아림과 분별, 그리고 빼앗김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들을 것인가’ 깊이 조심해야 합니다.
성급하게 듣고 판단하면 속기 쉽습니다. 겉모습과 화려한 언변에 속지 않으려면 잘 듣고 주의 깊게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겉모습만 보고 성급하게 헤아리고 판단하면, 세상 역시 그들의 눈과 잣대로 우리를 파악하고 헤아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계산에 빠지고 말겠지요.
그 결과 올바른 분별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삶과 가치, 명예와 신앙을 지켜내겠지만, 분별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됩니다. 그가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명예와 소중한 재산마저 도둑맞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을 마치며
마태복음의 등불 이야기에서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서 살아가야 할 우리의 모범을 읽습니다.
반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등불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의 화려한 언변이나 외모에 미혹되지 않는 신중한 분별력을 깨닫습니다.
같은 등불 비유가 복음서 안에서 이렇게 다채롭고 깊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교훈입니다.
그동안 저는 마태복음의 등불에만 너무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조용히 건네는 그 등불 이야기에도 더 깊이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