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영화평론가라고는 하나, 이 글은 결코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비평적 글은 아니다. 단적으로 필자가 ‘장국영 전문가’는 고사하고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인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고작 지난 십 수년 간 보아온, 20편도 채 되지 않는 그의 출연작들을 통한 것이 전부다. 영화 못지않게 탁월했다는 그의 음악적 재능에 관해서는 아예 무지하다. 그렇기에 원고 마감을 이미 몇 차례나 늦춘 지금도 여전히 글쓰기가 적잖이 주저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지극히 ‘사적’으로 글을 여는 걸 양해해주기 바란다.
장국영이 이 세상을 떠나던 2003년 4월 1일 밤, 인터넷을 통해 그 비보를 접했다. 그때 필자는 퍽 덤덤했다. 물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가슴 밑 한구석에서는 일말의 슬픔이, 안타까움이 밀려들었지만 별난 정도는 아니었다. 극히 통속적•감상적으로, 그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나 한국 포크 음악의 기린아였던 김광석 등 그보다 먼저 자살의 길을 걸어간 몇몇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그리고 그의 주연작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비정전’을 비롯해 ‘패왕별희’ ‘해피 투게더’ 등 그의 대표작들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 작품들 속에 고인의 죽음을 예고하는 일종의 징후 내지 단서들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느낌과 더불어…
나를 동요 시키게 되는 계기는 뜻밖에도 친히 지내는 몇몇 지인으로부터 주어졌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었던 한 여제자는 2일 새벽, 필자와 함께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한 동안 장국영이란 이름을 잊고 지냈었는데 오늘 자살 소식을 듣자마자 예전 추억들이 대기라고 하고 있었던 듯이 모조리 밀려왔습니다. 초콜릿 광고에 나오던 그를 보고 그저 잘생겼다고 좋아했었던 국민학교 때의 기억도 떠오르고, 중학교 1학년 때인가 내한한 장국영의 팬싸인회가 있다는 소식에 영어 선생님께 ‘제가 홍콩에 가면 만나 뵈러 갈께요. 꼭 기억해주세요’라는 문장을 영어로 가르쳐 달라고 졸라 외워갔던 기억도 나네요. 싸인회가 있던 날 영풍문고에서 한 시간 가량을 기다리다가 시간을 지키지 않는 그의 모습에 혼자 광분하여 집으로 돌아왔던, 지금 생각하면 몹시도 아쉬운 추억도 있고요”라고. “그, 그와 관련한 나의 기억, 모두가 많이 바래지 않고 오래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지금은 군복무 중인 20대 초반의 대학생 남 제자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저와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비교적 동세대를 공유한 슈퍼스타 겸 연기파 배우인 그의 자살은 정말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그러려니 했다. 그 또래의 의례적 반응이려니 치부했다. 필자를 진정 놀라게 하고, 더 나아가 장국영에 완전히 사로잡히게끔 한 결정적 계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지인에게로부터 비롯되었다. 2일 저녁, “나는 장국영보다 젊으면서 왜 그보다 늙었는가? 먼저 간 그를 위해 한잔”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휴대폰으로 보내온, 현직 고등학교 국어교사이자 시인인 40대 중반의 한 ‘선배제자’로부터. 그 순간, 필자에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커다란 궁금증이 문득 찾아 들었다. 흔히 ‘딴따라 세계’로 폄하되곤 하는 엔터테인먼트 (혹은 예술?) 분야에 종사해온 한 명사의 죽음이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세대•성 등의 온갖 차이를 뛰어넘어, 쉽사리 목격하기 힘든 폭 넓은 동세대 감정을 공유•야기시킬 수 있는 걸까, 하는 근본적 물음이. 뜻밖에도 ‘행복’이란 낱말을 떠올리면서…
그때 비로소 필자는 장국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깊고도 큰 고민을. 그리고 아직 정리되진 않았지만-과연 그럴 수 있을까?-생전 처음 그를 본격적으로 조망하기 시작했다. 조국 홍콩/중국에선 물론 일본, 한국 등 이국 땅에서도 그 어느 대중스타 못지않은 사랑(과 질시, 비판?)을 받아온 별 중의 별을. 연기력에서라면 조국에서, 아시아에서, 아니 나아가 세계에서도 둘째라면 서러워 할지도 모를,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그다지 과장만은 아닐 ‘진짜 배우’를.
모 주간지로부터 고인을 기리는 추모성 원고 청탁을 받은 뒤, 이 글과 마찬가지로 극히 사적으로 출발한 글을 쓰며 고인의 출연작 베스트10을 연대기 순으로 선정, 간략하게 리뷰를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필자는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비록 의식하진 못했더라도, 필자가 고인을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아주 좋은 배우로 여기고 있었다는 걸. 그 글을 다 마치고 나서는 그가 그 흔한 좋은 배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이란 규정이 결코 과장이 아닌 진정 대단한, 역사적인 배우라는 확신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서두에 이 글이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비평적 글은 아니다”라고는 했지만, 여기에 그 베스트10을 옮긴다면 지나치게 감상적이며 편의적 선택으로 비칠까. 혹 그렇더라도 용서해주질 바란다. 평론가 특유의 ‘젠체하기’쯤으로.
1. ‘영웅본색’(1985, 감독 오우삼) ***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 이젠 세계적 스타감독이 되어 있는 오우삼은 여기저기서 사나이 세계의 의리와 배신, 자기희생 등의 모티브를 차용한 이 지독한 마초 액션물을 통해, 자신은 물론 주연배우인 주윤발과 장국영을 스타덤에 등극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뒤이어 나올 숱한 (액션) 영화들에도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장국영은 경찰로 등장해 인상적 열연을 펼친다. 하지만 아직은 앳된 모습의 그는, 썬 글라스와 휘날리는 긴 외투 차림으로 쌍권총을 마구 쏘아대는 주윤발 등의 카리스마에 가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매력을 좀 더 음미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영화의 영어 제목처럼 ‘더 나은 내일’(A Better Tomorrow)을 기다려야 할 성싶다. 그래서일까, 적잖은 이들에겐 속편 ‘영웅본색 2’(87)가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설 것 같다.
2. ‘천녀유혼’(87, 감독 정소동) ***1/2
‘영웅본색’ 못지않은 아류작들을 숱하게 양산시킨 기념비적 (처녀) 귀신 영화. 니콜 키드먼에 버금가는 절세의 미인 ‘왕조현 신드롬’을 일으켰다. 장국영은 남자들의 정기를 빨아먹고 사는 요괴 섭소천(왕조현)을 사랑하는 순진하면서 착한 영채신을 열연했다. 화려한 SFx(특수 효과) 액션에 공포, 로맨스, 코미디 등이 총동원된 퓨전 장르 영화답게, 그는 한층 진일보한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여기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여성성이 내포된 멜로 이미지가 강하게 엿보인다. 하지만 왕조현의 그늘에 가린 감도 없지 않다. 결국 장국영은 다른 배우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적 연기자’라기보다는 조화를 창조ㆍ유지해나가는 ‘공존의 배우’인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3. ‘인지구’(88, 감독 관금붕) *****
홍콩 영화가 낳은 최고의 걸작 멜로드라마 중 하나. 왕가위와 더불어 포스트 홍콩 뉴 웨이브의 간판주자로 간주되는 관금붕의 초기 대표작이다. 홍콩 금마장 최우수여우주연상(매염방)과 촬영상, 미술상 수상이 증거하듯, 1930년대와 1991년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며 인간 세계와 공존하는 영혼의 세계를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그렸다. 그 점에서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를 위시해 ‘식스 센스’ ‘디 아더스’ 등의 선배작인 셈이다.
장국영은 3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기생 여화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는 부잣집 아들 역으로 등장, 최고 수준의 멜로 연기를 구현한다. 매염방의 연기가 말로 다 형용키 힘들 만큼 매혹적이어서 다소 빛이 바래긴 했지만. 영화에서 감독의 계급적ㆍ성적ㆍ현실정치적 문제의식을 읽어내는 재미도 여간 쏠쏠치 않을 듯.
4. ‘아비정전’(90, 감독 왕가위) *****
신화의 반열에까지 오른 홍콩 영화의, 왕가위의, 그리고 장국영의 대표작 중 대표작. 대중적으로 참패를 거둔 전형적 ‘저주받은 걸작’이다. 1960년 4월 16일로부터 1년 동안, 홍콩과 필리핀을 무대 삼아 다섯 중심인물 사이에서 줄곧 엇갈리는 사랑을, 블루 톤의 미장센과 이국풍 음악을 배경으로, 지독히도 쓸쓸하고 허무하게 묘사한다.
이 영화 출연 직전 연예계에 대한 회의로 인해 은퇴를 감행했던 장국영은 1분을 영원시하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생모를 찾아 방황하는 바람둥이 아비 역을 통해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거머 쥔다. 그 연기 톤에는 그러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극단의 고독감과 허무함, 상실감이 짙게 배어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 걸작에서만은 예외적으로 그는 장만옥•류덕화•류가령•장학우 등 여타 출연진의 연기 총합을 압도하는 생애 최고의 열연을 펼친다.
5. ‘백발마녀전’(93, 감독 우인태) ***1/2
‘천녀유혼’ 시리즈에 이은 또 하나의 환상적 무협 멜로물. 왕조현과는 또 다른 임청하 특유의 섹스 어필이 단연 돋보인다. 임-장 투 톱의 연기 앙상블 역시 큰 주목감. 특히 중성 이미지가 감도는 두 스타가 벌이는 러브 씬은 내가 목격한 홍콩 영화 중 가장 에로틱하면서 자극적 장면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터. 한마디로 그 자체가 대 장관이다. 영화에서 장국영은 무술의 최고수로서 전작과는 판이하게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남성적 이미지를 선보이는데, 그것은 ‘동사서독’(94)에서도 재현된다. 그 속에서 ‘동사서독’은 물론 장예모의 ‘영웅’에 등장할 탐미적 이미지들을 발견, 음미하는 재미도 제법 클 듯. 주제 면에서 "인지구‘와 일맥상통하는 공통점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테고.
6. ‘패왕별희’(93, 첸 카이거) ****1/2
제인 캠피언의 ‘피아노’와 공동으로 9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으며 세계 영화역사에 우뚝 선 걸작 시대극. 첸 카이거라는 이름과 함께 이른바 ‘중국 제5세대’라는 용어를 세계적으로 인정ㆍ통용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때까진 아시아의 스타에 머물렀던 장국영이 세계적 배우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여장남자 경극 배우 데이로 분해 본격 동성애 연기를 감동적으로 펼쳤다. 그는 첸 감독, 공리 등과 함께 ‘풍월’(96)에서도 또 한 차례 ‘패왕별희’ 못지않은 성숙하고 매혹적인 열연을 펼친다.
7. ‘금지옥엽’(94, 진가신) ***1/2
‘첨밀밀’(96)로 작가의 반열에 오른 진가신 감독의 수작 로맨틱 코미디. 남장여자 임자영(원영의 분)을 축으로 인기 작곡가 고가명/샘(장국영)과 로즈(유가령) 사이의 삼각관계(?)를 코믹하면서도 진중하게 묘사했다. 장국영은 페이소스 머금은 코믹 연기를 멋들어지게 구현한다. 흥미로운 점은 연예계의 화려함 속에서 끊임없이 평범함을 추구하는 샘이라는 캐릭터가 장국영의 페르소나를 투영하고 있다는 것, 사랑하면서도 자영이 남자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는 샘의 진술이 심히 ‘보수적’으로 비치기도 하나, “남자든 여자든 난 널 사랑한다”는 더 길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8. ‘동사서독’(94, 왕가위) ****
왕가위가 장국영을 비롯해 양가휘, 장만옥, 양조위, 임청하, 유가령, 장학우, 양채니에 이르는 화려한 출연진을 대거 동원해 완성시킨 무협 멜로 액션물이란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화제의 문제작. 8명의 캐릭터가 얽히고설키는 복잡한 플롯도 그렇지만,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촬영상 수상에서 알 수 있듯, 왕가위 특유의 탐미적 영상미가 호흡을 가쁘게 한다.
장국영은 단적으로 폼생폼사라고 할 법한 무게감 있는 연기를 구사한다. 개봉 당시 과잉 스타일로 인해 적잖은 비판을 받았으나, ‘영웅’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과잉이라 하기 어려울 듯. 김성수 감독의 ‘무사’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작진 않을 듯.
9. ‘해피 투게더’(97, 왕가위) ****1/2
단지 동성애를 다소 솔직하게 그렸다는 이유로 2차례에 걸친 수입 반려를 거치는 등 수난을 겪은, 제50회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재회에 관한”, ‘어긋난 사랑의“, “만남과 헤어짐의” 이 이야기에서 장국영은 당시만 해도 파격적이고 과감한 동성애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영화 속 세 연인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 장(장진)이 각각 중국과 홍콩, 대만 출신이란 점에서 영화를 3중국에 대한 메타포로 읽을 수도 있을 듯.
10. ‘색정남녀’(99, 이동승) ***
제47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제목이 시사하듯, 장국영 출연작 중 가장 적나라한 작품. TV 브라운관의 한계 탓에 그 맛을 만끽할 순 없지만, 장국영과 막문위가 벌이는 도입부의 그 노골적이고 야한 정사 씬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야한 성애물쯤으로 지레짐작하진 말 것. 3류 에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애환을 적나라하지만, 때론 코믹하고 때로 구슬프게 그린 문제작이니까. 여로 모로 박중훈-송윤아 주연의 ‘불후의 명작’과 비교해보면 흥미진지진할 듯.
이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필자는 더러는 처음 보기도 했고, 어떤 영화들은 다시 봤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확인’에 이르게 되는 ‘어떤 발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상기 www.izm.co.kr에서도 밝혔듯, 장국영은 여느 스타들, 배우들과는 달리, 좀처럼 혼자만 살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영화를 평가할 때, 다른 그 어떤 요소들 못지않게 캐릭터와 연기 요소를 중시하는 필자에게 그것은 터닝포인트적 함의를 띠는 주요 발견이었다. 비단 지난 10여 년 간의 평론 활동만이 아니라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해온 그 간의 20 여년 간 품어 왔던 연기에 대한 고정관념 혹은 편견을 일거에 뒤흔드는 대 발견! 그래, 이렇게 썼던 것이다.
“그의 출세작 ‘영웅본색’부터 유작 ‘이도공간’에 이르기까지 근 20년에 걸친 그의 필모그래피를되돌아보면, 그는 좀처럼 혼자만 튀는 법이 없었다. ‘아비정전’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예외였다. 압도적이긴 해도, 그 걸작에서마저도 장만옥이나 유덕화 등 다른 동료 출연진과의 조화를 해칠 만큼 튀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 그는 늘 조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연기를 펼쳤다. 다른 사람 다 죽여가면서 자기만 사는 카리스마의, 적자생존의 연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살리고, 그리고 나서 자기도 사는 앙상블의, 공생의, 희생의 연기를. 심지어 그는 다른 배우들의 그늘에 가진 적도 적잖다. 출세작 ‘영웅본색’에서는 당장 주윤발에 가렸다. ‘천녀유혼’에서는 왕조현에, ‘인지구’에서는 매염방에, ‘백발마녀전’에서는 임청하에, ‘동사서독’에서는 양가휘 등에, 심지어 ‘해피 투게더’에서는 양조위에 가렸다. 유작 ‘이동공간’에서는 신예에 지나지 않는 임가흔을 압도하지 않는다.
놀라운 건 그것이 그가 연기를 못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압도적인 연기를 구현하지 않는 건,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정확히는 여느 뛰어난 배우들과도 또 다른 출중한 연기, 다시 말해 조화 및 공생의 연기를 구사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영화 역사를 통틀어 이런 연기를 펼친 이는 거의 없다. 흔히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로 일컬어지는 찰리 채플린을 비롯해 말론 브랜도,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연기의 대가들도 그러진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 대가들보다도 장국영이 더 위대한 배우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건 분별력이 없는 주장일 테니까. 요점은 장국영이 연기의 새로운 장을,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 강조컨대 혼자만 사는 카리스마의 연기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생의 연기를 말이다. 장국영을 “위대하다”고 하는 이유다.”
그로부터 1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필자는 그때의 그 주장을 철회하거나 수정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아니 그 반대다. 약간의 과장을 허용한다면, 그 이후 필자는 단 하루도 장국영을 기억하지 않고 보낸 적이 없다. 영화를 볼 때면 으레 영화 속 배우들과 장국영의 연기를 비교했고, 강의 시 스타나 배우를 논할 때면 으레 장국영을 말했다. 실은 그 정도가 아니다. 어쩌면 그를 기점으로 배우론이 다시 쓰여지거나, 전적으로 새로운 배우론이 쓰여져야 한다고 까지 여기고 있다. 그를 중심에 놓고 작가론적 배우론을 펼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고.
과장이 아니라 이런 경험은 필자로선 난생 처음이다. 필자가 그렇게 열광해 마지 않았던 ‘사탄의 태양 아래서’ ‘반 고호’의 거장, 모리스 피알라가 장국영보다 2개월 여전인 지난 해 1월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존경해 마지 않던 세계 영화계의 거장 중 거장, 스탠리 큐브릭과 로베르 브레송이 지난 1999년 5월과 12월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도 이런 경험을 하진 못했다. 필자가 더욱 놀라워 하고 있는 건 장국영이 과작이 아닌 다작의 배우요 스타인데도, 게다가 오로지 연기의 길만 걸은 것도 아니고 대중음악인으로서도 영화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한 멀티엔터테이너인데도 이런 출중한 성취를 일궈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그의 사생활에 대해선 잘 모른다. 솔직히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영화평론가이기에 가능하면 영화로서만 말하고 싶어서 일터이다. 또 다른 지면에서도 역설했든, 돌이켜보건대 장국영, 그는 거의 항상 최고 수준의 연기를 펼쳐왔다. 비중 여부를 떠나. 심지어 평범한 배역일 때조차도 그는 빚을 발해왔다. 새삼 강조컨대 그 빚은 카리스마에서 연유하는 강렬한 빚이 아니라 동료 연기자들과 완벽하게 공존하는 은은한 조화의 빛이다. 그건 뜨겁지 않고 온화하다. 나른하며 편하다. 행복하기조차 하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럼으로써 영화를. 다른 기준으로 볼 때는 별 볼 일 없는 영화마저도 볼만한 그 무엇으로 승화시켜주고 한층 더 풍성하게 해준다.
세상의 숱한 훌륭한 배우들 중 과연 얼마나 장국영 같을까, 싶다. 아무리 고민해도 그 이름들을 자신 있게 열거하진 못하겠다. 상기 언급한 몇몇 예외적 예들을 제외하고는. 그러니 어찌 연기의, 배우의 재 발견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과장이 다소 섞였겠지만, 이후의 영화 연기의 역사는 이렇게 나뉠 지도 모른다. ‘장국영 이전’과 ‘장국영 이후’로.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