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교회를 세우며
2013년 12월에 28년 목회하던 교회를 은퇴하고 한국으로 이사해서 조그만 빌라를 사고 살림에 필요한 모든 가구를 사고 큰터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신학교 강의도 하고 에스더기도운동본부에서 사역자들 성경공부도 인도하면서 존경받으며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시집 오 남매 가족모임도 자주하고 조국 땅에 뼈를 묻으려고 생각했었는데 2017년 1월에 3년 동안의 고국생활을 접고, 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결정한 것은 지난 12월에 딸의 집에 가서 갑자기 결정하게 된 것이다. 아들 가족도 오고 딸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는데 딸의 간절한 청으로 다시 미국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딸은 벨링행에 있는 WWU에 다닐 때에 그곳에 크리스천 학생모임을 만들고 금요일마다 기도회를 인도하다가 아버지가 교회에 학생부 전도사가 나가서 필요하니 와서 도우라고 부탁해서 그곳 집회를 목요일로 옮기고 2시간 반이나 걸리는 길을 달려와서 학생부를 인도하고 주일저녁에 돌아가는 힘든 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자라고 전도사가 되어 8년이나 애쓰고 헌신했던 모 교회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어 부득이 새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오셔서 도와주셔야 되지 않느냐고 해서 안 오겠다고 하던 아버지가 꼼짝 못하고 오게 만든 것이다.
딸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워싱턴 주 학자장학생으로 대학교를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피어스카운티 수선화 여왕이기도 했고 그 무엇보다 뜨거운 복음의 열정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웠다. 고등학교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했고 대학교부터 아이들 셋을 낳고 젖을 물리면서 세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포틀랜드(OR), 뱅쿠버(WA)와 아틀란타(GA) 교회들과 시애틀 교회에 여름성경학교와 학생부 수련회를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인도해 왔다.
2016년에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연합 청소년 수련회에 10명이 가서 은혜로운 집회를 인도했고 타코마에서도 작은 교회 연합집회 강사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울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간증을 하였다.
딸은 U.Pen 대학원 교육학과를 나왔고 평통자문위원, 대한부인회장, 현직 교사, 신학대학원도 나온 전도사로 굳이 목사 안수를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은퇴하고 한국으로 가고 후임 목사하고 같이 목회하면서 큰 갈등을 겪게 되고 이제는 목사 안수를 받고 자기가 목회를 해야 자기 소신껏 할 수가 있겠다고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결심하기까지 1년 동안 교회에 안식년을 내고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를 돌아다니며 울면서 방황하고 기도했었고 소식을 들으며 한국에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얼마나 사랑했던 교회인데 수차례 돌아가고 싶어서 시도했었고 마지막으로 원로목사인 아버지와 당회원들이 모두 받아달라고 권면했건만 후임자는 딸에게 전권을 줄 수가 없다며 거절하게 되었다. 담임목사 자리를 원하는 것이 아닌데 무슨 전권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래 딸과 같이 영어도 잘 통하고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니 두 사람이 한 마음으로 목회를 아주 잘 할 줄로 안 것은 딸 내외가 교회를 떠난다면 자기는 우리 교회에 부임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후임자는 딸 부부를 높이 알고 친해서 우리는 멀리 떠나 한국으로 온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니 말을 삼가야 한다. 딸의 열정이 너무 커서 후임자가 감당할 수 없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딸은 남편이 의사이기에 자기 안락만을 위해 산다면 굳이 교회를 개척하고 고생할 필요가 없고, 우리도 편안한 삶을 원한다면 아들과 같이 여행이나 다니고 한국에서의 생활이 부족함이 없고,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살기가 너무 좋다. 그러나 이제 집을 팔고 새 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리기로 했고 딸집으로 같이 들어가 합하기로 해서 우리의 모든 것은 없어지게 되었고 원로목사 사례비와 한국교회와 신학교에서의 사례비 등 모든 수입원이 끊어지게 되었다. 3년전 한국으로 올 때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왔는데 이제 또 이곳에서 아주 영주하려고 새로 샀던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오직 주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인 것을 확신하고 다시 미국행을 하는 것이다.
딸은 4월에 청년들과 기도하는 중에 오아시스 환상을 보았고 이름도 받았다고 한다. 영혼들이 쉼을 얻는 교회를 세우고 특별히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교회로 세워, 기독교세가 가장 열악한 워싱턴 주에 장차 미국을 살려낼 영적 부흥을 소원하는 교회를 세우기를 소망하는 것이고, 나는 천국 분점 같은 교회, 천국 훈련장 교회를 세우고 싶다.
이 땅에서 철저히 천국에 들어가는 훈련을 교회에서 받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어른뿐만 아니라 나의 자녀들, 나의 손자 손녀 열 명을 철저히 훈련시키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딸은 여름마다 뜨거운 성경학교로 아이들을 교육시켜왔고 우리 아이들이 이 악한 세상에서 주님 말씀을 잘 배우고 이 미국과 세계를 살리기를 소원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딸이 교회를 세우고자 하기 전에 많은 성도들이 먼저 교회를 세우자고 했고 교회를 사임하게 된 성령 충만한 부목사도 같이 합류하고 저들이 모든 목회를 할 것이고 우리는 그냥 협동목사로, 후원자로 설교 목사로 저들을 도울 것이지만 말씀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기쁘게 가는 것이다.
요한 웨슬레도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했고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까지 오직 복음의 나팔을 불다가 훨훨 날아서 주님 나라에 입성하기를 소원한다.
주님이시여! 우리 모두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세상 욕심은 하나도 없게 하시고 오직 뜨거운 사명에 불타서 살다가 우리 후세에게 아름다운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우리의 발자취를 따라 천국으로 인도함 받게 하소서. 눈물로 간절히 기도한다.
2017년은 오아시스 교회를 개척하는 첫 해가 되는 너무나 뜻 깊은 해가 될 것이다. 주여!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 오아시스교회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소망이 넘친다.
첫댓글 2017년 7월 7일은 내가 70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