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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조 해 일
가순호(賈淳浩) 가 많은 지게꾼들 가운데에서 그 사나이를 택한 것은 그 사나이만이 좀 별다른 지게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순호로서는 다만 선택하기 편한 점을 취했을 따름이었다. 사실 온 가족의 생존을 지게 하나에 걸머지고 역전(驛前) 공터에 옹기종기 기대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비슷비슷한 복장의 비슷비슷하게 그을린 얼굴을 가진 지게꾼들 가운데에서 어느 한 사람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난처한 일에 속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러한 모습으로 개량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겟가지나 지겟다리가 다 같이 제재소의 톱날 세례를 받은 가벼운 사각목(四角木)으로 되어 있고 짐받이나 등받이에는 송판이나 합판, 심지어는 그 위에 헌 비닐장판 조각까지 깔거나 대어 짐이나 등이 편안해하도록 조립된, 썩 직업화한 대신 볼품과 위엄은 사라져버린 대부분의 신식 지게들 사이에 자연목(自然木)을 그대로 쓴, 그러니까 가순호가 어렸을 때 더러 보던, 나무할 때나 짚단 같은 것을 나를 때 쓰이던, 자연목 본래의 형태가 가지는 쓸모에 별 의장(意匠)*을 보탰달 것도 없는 재래식의 좀 우직해 보이는 지게 하나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지게는 당연히 그러한 지게가 가지는 바의, 사각목으로 만들어진 지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별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별다른 점이란 바로 다른 지게들에 비해서 우직해 보인다고나 할까, 무거워 보이는 점이었는데 거기에 그 지게는 또한 유난히 길고 견고해 보이는 네 개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 지게의 몸통을 이루면서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두 개의 지게 뼈와 몸통에서 뻗어 나와 약간 위를 겨눈 듯하게 지평을 향한 두 개의 지겟가지가 그것이었다. 뿔들은 까무스레 윤이 났고 바로 그 지게의 임자가 그 사나이였다.
지게가 남다른 데 비해서는 지게의 임자는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서른대여섯 나 보이는, 그저 다른 지게꾼들과 비슷비슷하게 그을고 영양실조에 걸린 얼굴이었으며, 다른 한국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펑퍼짐하고 그저 그렇게 생긴 얼굴이었다. 다만 염색한 군대잠바를 걸친, 좀 별나게 넓다 싶은 어깨가 얼마간 인상적 일 뿐이었다.
“짐은 얼마 안 되지만 좀 먼데요.”
하고 가순호가 말하자 사나이는 그 무거워 보이는 지게를 지고 우선 일어서 면서 ,
“어딘데요?”
하고 별 표정 없이 반문했는데 그것은 행선지를 딱히 알고 싶어 하는 태도도 아닌 듯했다.
“흑석동인데요. 가시겠습니까?”
알 수 없는 일은 그 순간 사나이의 두 눈에 어떤 정채(精彩) 같은 것이 번뜩이기 시작한 것 이었다.
“가십시다.”
사나이는 벌써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하면서 대답했다. 왕십리 역전 공터의 지게꾼들은 초겨울 오전의 엷은 햇빛 아래서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숙집으로 돌아와 짐을 싣는 동안 가순호는 이놈의 짐만 없어도, 짐이 있더라도 버스에 들고 탈 수 있을 만큼 간단하거나 용달사 차부를 부를 만큼 많기나 하면 지게꾼과 함께 흑석동까지 걸어가진 않아도 될 텐데 하고 속으로 따분해했다. 하긴 하숙을 옮길 때마다 어떻게 그렇게 잘들 수소문해 찾아오는지 그 묘방(妙方)을 알 길 없는 신통한 방문객들만 아니더라도 이렇게 자주 하숙을 옮겨야 할 이유란 없다. 하숙집의 이러저러한 푸대접이나 불편들쯤이야 이골이 난* 그다. 하긴 방문객들 중에 그 친구만 끼어 있지 않더라도…… 사냥에 노련한 개처럼 길쭉한 얼굴을 가진 친구.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같은 반이었었고, 그때 벌써 태권도 유단자였던 좀 불량하게 굴던 애들의 하나였고, 그래서겠지만 가순호와는 별로 가까이 지낸 기억도 없는데 졸업 후 10여 년 만인 작년부터 하숙집에 놀러 오는 친구. 맘잡은 지 한 3년 된다면서 별 명성도 없는 회사의 세일즈맨이긴 하지만 덕분에 시간은 남아돈다고 낮에도 더러 찾아오곤 해서 가순호의 일하는 시간을 베어 먹곤 하던 친구. 왠지 함께 있기가 거북한 친구. 그 길쭉한 얼굴이 왠지 단순한 유기질처럼 보이는 친구. 그 친구만 끼어있지 않더라도…… 책 나부랭이가 든 헌 고리짝을 마지막으로 내다 실으면서 가순호는, 그러나 멀찌감치 옮겨 가봤자 얼마 뒷면 또 찾아와서 매우 재치 있는 태도로 방문을 똑똑 두드릴 것이 거의 확실한 그들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그래도 굳이 한강 너머로까지 옮겨가려는 자기 자신이 적잖이 딱하게까지 여겨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거의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사나이가 지게를 지고 마악 일어서서 어깨를 고른 뒤 한 발짝 떼어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짐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지게의 뿔들이 워낙 긴 탓이었을 것이다. 짐을 실은 위로도 그 뿔들은 각각 하늘과 지평을 향해 삐죽삐죽 솟아나와 있었던 것이며, 사나이가 마악 한 발짝 떼어놓으려 했을 때(그 순간 가순호는 그 지게를 처음 보았을 때 그가 뿔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참으로 뿔임을 깨달았던 것인데) 그 모습은 마치 뿔을 가진 한 마리 아름다운 짐승이 그 뿔을 가누며 마악 움직이기 시작하려는 순간의 모습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가순호는 자기가 이사 가는 사람이라는 것조차 깜빡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사나이는 가순호 쪽을 바라보며 일어섰는데 그가 떼어놓은 그 첫 번째 한 발짝, 그것이 앞으로 내디딘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 디딘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나이는 등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약간 위를 겨냥한 듯하게 지평을 향해 삐죽 내민 지게의 그 뿔들을 전진 방향으로 두고, 두 번째 발짝도 세 번째 발짝도 사나이는 뒤로뒤로 물러 딛고 있었다. 사나이의 얼굴은 따라서 계속 진행 방향과는 반대쪽인 가순호 쪽으로 향해져 있었고, 그리고 그 얼굴은 서서히 기쁨으로 타오르는 아름다운 얼굴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뿔을 앞세우고 얼굴은 뒤로 향한, 그 세상에서 처음 보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운동체는 그리고 한 마리 힘찬 짐승처럼 민첩하게 나아갔다. 아니, 물러갔다. 가순호는 용솟음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사나이의 빛나는 얼굴을 마주 보면서 그 힘찬 짐승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나이의 그러한 걸음(뒤로 걷는)은 또 가순호가 짐을 지워본 어느 다른 지게꾼의 똑바로 걷는 걸음보다도 훨씬 빨랐다. 다른 지게꾼의 경우 가순호는 몇 번씩이나 뒤따르는 지게꾼을 기다리기 위해 앞선 걸음을 멈추어야 하곤 했지만 사나이는 가순호로 하여금 조금도 앞지를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일정한 거리를 힘들지 않게 유지하면서 뒤따르는 가순호의 얼굴을 항상 적당한 거리에 두고 바라보며 사나이는 뒤로뒤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나이의 시선은 외견상 가순호에게 머물러 있는 듯해도 실은 가순호 너머의 어느 딴 곳, 아니면 자기의 등 뒤 전진 방향을 향해 삐죽 내민 지게의 그 견고하고 아름다운 뿔 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골목을 벗어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큰길로 나서자 사나이는 이따금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진행 방향을 곁눈질로 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대범한 걸음걸이에는 조금의 감속(減速)도 초래되지 않았다. 행인들은 이 기이한 지게꾼에 마음의 허(虛)를 찔려 혹은 멈춰서고 혹은 길을 비키며 어리둥절하고 놀란 표정으로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거 희한한 지게꾼 다 있는데.”
“아주 독보적인 방법인걸.”
“저 정도가 되려면 피땀 나는 훈련을 쌓았을 거야.”
“지게꾼도 이젠 기발한 아이디어 개발 없인 먹구살기 어렵게 된 모양이군.”
“좌우지간 좀 색다른 지게꾼인걸.”
어쩌고 하는, 마음의 동요를 나타내는 탄성들이 가순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이런 소리도 들려왔다.
“관절이 좀 이상하게 생긴 사람은 아냐?”
“글쎄, 별로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데.”
“아냐, 저 무릎 관절이 움직이는 모습 좀 봐.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아?”
“그야, 뒤로 걷구 있으니까 좀 이상해 보이는 건 당연하지.”
그러나 사나이는 묵묵히 다만 힘찬 걸음으로 눈동자들의 물결 사이를 행진했다. 약간 위를 겨냥한 듯하게 지평을 향한, 견고하고 아름다운 뿔들을 촉수처럼 앞세우고.
가순호는 은밀히 용솟음치는 기쁨에 몸을 떨며 사나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얼굴이 세상의 어떤 미남자보다도 아름답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짐을 싣기 전만 해도 그저 그을고 영양실조에 걸린, 펑퍼짐하고 그저 그렇던, 요컨대 평범하게만 보이던 얼굴이 일단 짐을 싣고 그 기이한 행진을 시작하자 그을린 피부는 구릿빛으로 불그레 상기하기 시작했고, 빛나기 시작했으며, 이제 그 행진이 큰길에 이르자 눈·코·귀·입이 저마다 또렷이 살고 서로 도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의 얼굴을 이루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을 아름답다고 하는 건, 하고 가순호는 생각했다. 바로 저런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몇 주 전에 가순호는 그 비슷한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차들이 봄비는 퇴근시간 무렵이었는데 좌석버스의 창가 쪽 자리를 얻어 앉아 늘 하는 버릇대로 무심코 차창 밖을 내다보던 중에 그는 그 비슷한 얼굴을 보았던 것이다. 지금은 마장동 개천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자그마한 판잣집 크기의 부피로 쌓아 올린 무슨 종이상자 같은 것들을 잔뜩 실은 자전거 한 대가 마침 가순호가 탄 버스에게 앞지름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 붐비는 자동차들의 거친 물결 사이에서 그 부피 큰 짐을 실은 자전거의 페달을 힘을 다해 밟는 스무 살 가량 난 청년의 앳된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얼굴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가순호는 자전거가 다른 차들에 가려 아주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숫제 고개를 뒤로 틀고 있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지금 저 사나이의 얼굴에는 미치지 못해, 하고 가순호는 생각했다. 그때 그 청년의 얼굴이 확실히 아름다운 것이었음에는 분명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어딘가 가엾고 애처로운 것을 데린 것이었다. 그러나 사나이의 지금 저 얼굴은 조금도 애처롭다거나 하는 구석 없이 완벽하게 아름답다. 엄격함과 자유로움을 한꺼번에 가진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구속과 무절제를 다 함께 벗어난, 그리하여 생명의 아름다운 본성에 이른 자기의 양식(樣式)을 찾아낸 사람의 아름다움.
어느새 중국음식점 ‘육합춘(六合春)’ 앞을 지나고 ‘광무극장’ 앞도 지났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지나쳐 내다보기는 했어도 땅을 딛고 걸어보기는 처음인 이 길이 낯선 고장처럼 생소한 느낌이 들었으나 주위의 건물들이며 모든 사물들이 일상의 허울들을 벗어던지고 가순호들에게 말을 건네어오는 듯했다. 흐릿하고, 먼지의 틴들 현상*처럼 아물아물해 보이기만 하던 사물들이 전모를 드러내머 가순호들 앞에 도열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건물들의 사열식(査閱式). ‘박산부인과 병원’ ‘아리랑사진관’ ‘양지카바레’ ‘○○편물점: ‘△△양화점’ ‘× ×
가구점’ ‘㉧㉧오토바이센터’ ……중앙시장 앞을 통과했다. 행인들뿐 아니라 버스에 타고 가는 사람들까지도 이 기이하게 행진해가는 지게꾼을 보기 위해 얼굴들을 일제히 차창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네거리의 교통순경까지도 잠시 자기의 임무를 잊고 입을 벌린 채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나이는 아름다운 얼굴을 번쩍 들고 눈동자들의 물결을 뒤로 거슬러 묵묵히 그리고 힘 있게 퇴보(退步) 해갔다.
신당동 네거리에서 길을 건너는 동안에 즐겁고 조그만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마침 멈춤 신호가 켜져 있어서 양쪽 보도에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서 있었던 것인데, 사나이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행진을 계속했던 것이다. 가순호는 순간 습관이 제동을 걸어 잠깐 당황했으나 곧 사나이를 바싹 뒤따라 건너기 시작했다. 마음 놓고 달려오던 자동차들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그러고는 욕지거리를 내지르려는 태세로 차창을 열고 고개를 비틀어 내민 운전수들의 얼굴에는 다음 순간 욕지거리 대신 일제히 웃음이 떠올랐다. 양쪽 보도에 신호가 바뀌기만 기다리고 섰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일제히 웃음이 떠올랐다.
“뭐야, 뭐!”
하고 신경질적인 몸짓으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교통순경 (순간 사실 가순호의 심장은 콩알만 해졌었다)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멈칫 서서 잠시 넋 나간 사람의 표정으로 이 기이한 법규 위반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나이는 그들에게 일별*도 던져줌 없이 힘찬 관절의 움직임으로 묵묵히 행진했다. 뒤로뒤로. 가순호는 즐거움으로 온몸이 비비 틀리는 듯함을 느꼈다. 거의 자기가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웃는 것일까. 가순호는 그것이 뿔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역행(逆行)의 즐거운 의미일까. 그 아름다움일까. 시구문*을 지나 퇴계로로 접어들었다. 동국대학 앞을 지났다. 그렇게 대한극장 앞을 통과했다. 표를 사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간판에 그려진 서양 배우들도 이쪽을 굽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내 웃음이 피어올랐다.
“햐, 무슨 이각수(二角獸) 같은데.”
“뿔이 네 걘 데?”
“아 사슴처럼 보이는군.”
“무슨 소리, 들소 같은데.”
“타조 같기도 하다. 다리가 둘뿐이잖아?”
“뿔 달린 타조도 있나?”
“참, 뿔!”
성심병원 앞을 지나고 아스토리아호텔 앞을 지나 다시 프린스호텔 앞을 통과했다. 결혼회관 앞을 지났다. 산업경제신문사 앞을 지났다. 초겨울 정오 무렵의 엷은 햇빛은 그나마 빌딩들의 칙칙한 그림자에 가려 차도에만 조금 담배가루 같은 빛을 던지고 있었다. 보도는 칙칙한 가래침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거리의 모든 것이, 모든 건물들이, 모든 사람들의 얼굴빛이 한결같이 가래침 빛깔로 보였다.
‘DP&E, 블론디’ 앞을 지났다. ‘정(鄭) 건강관리현구소’ 앞을 지났다. 건너편 보도에는, 남대문시장으로는 끼어들 능력이 없는 노점상인들이 가래침 빛깔의 옷들을 입고 가래침 빛깔의 상품들을 벌여놓은 채 따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분주하고 스산스러워 보였다.
남산으로 오르는, 이 도시에서 제일 오랜 육교 밑을 지나고, DDT나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같이 보이는 거대한 ‘서울특별시 농업협동조합’ 건물 앞을 지나서 건너편으로 서울역을 바라보며, ‘교통센터’건물을 끼고 돌아 ‘USO’ 앞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거의 일직선으로 한강까지다.
동자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가래침 빛깔의 얼굴들을 이쪽으로 돌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겨울의 우리나라 사람들 얼굴빛은 오래전서부터 모두 한결같이 가래침 빛깔이었던 것 같다.
가순호는, 내 얼굴도 가래침 및깔일 거야, 하고 생각했다. 줄곧 가순호의 얼굴만을 응시 하며 뒤로뒤로 부지런히 무릎의 관절을 움직이고 있는 사나이의 얼굴만은 그러나 아름다운 구릿빛이었다. 그 구릿빛 피부 위로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땀방울이 굴러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수증기가 서려 올랐다. 가순호는 그 얼굴을 향해 수줍게 미소를 띠워 보냈다. 이렇게 줄곧 마주 보고 걸으면서 조금도 자기를 감추고 싶지 않다는 건 사나이의 얼굴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가순호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 앞에 이
토록 즐겁게 몸을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경 가래침 빛깔일 이 얼굴을. 사나이의 눈빛에도 순간 우정의 신호라고 간주할 수 있는 밝은 움직임이 지나갔다. 가순호는 가슴이 터지도록 떨려오는 기쁨을 맛보았다. 저 훌륭한 남자가 내게 우정의 뜻을 전해왔다.
“저……”
“예?”
사나이는 격의(隔意) 없이 밝은 목소리로 얘기를 들을 의사가 있음을 나타냈다.
“좀 쉬시지 않으시겠어요?”
“저가 힘들어 보이나부죠?”
“아,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럼 선상님이 힘드시나보군요.”
“웬걸요. 저야 뭐 힘이 들 턱이 있나요? 이렇게 그냥 걷는데. 그리구 선생님이라니요. 전 뭐 그저 볼 것 없는 일개 학생일 뿐인겉요. 만 년 학생이지요.”
“공부허시는 분이구먼요. 공부허시는 분이면 선상님이지요. 전 첫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요즘은 공부허시는 분들이 다들 곤궁하시다면서요?”
“……언제는 공부하기 쉬운 적이 있었나요? 그보다 그럼 그냥 걸으시겠습니 까?”
“예. 선상님만 힘들지 않으시면 전 짐 나르는 동안은 쉬어본 적이 없는걸요.”
대림산업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럼 그냥 걷죠. 그런데 저…… 제 얼굴이 혹 가래침 빛깔로 보입니까?”
“예?”
“푸르딩딩한 가래침 빛깔·…‥”
“원, 선상님두 별 농담을 다.”
사나이는 뜻밖에도 희고 건강해 보이는 치열을 드러내 보이며 감추지 않고 웃었다.
“그렇게 안 보입니까?”
가순호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 가끔 제 얼굴이 병자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왠지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조금 전에도 그런 생각을 잠깐 했거든요. 제 얼굴이 가래침 빛깔일 거라는…… 그런데 아저씨가 고쳐주셨습니다.”
“원, 저가 무슨……”
“아닙니다. 제가 여쭤봤을 때 아저씨가 봬주신 그 웃음으로 깨끗이 나았는걸요. 이 기분대로라면 마라톤이라도 뛸 수 있겠어요.”
“그럼 한번 뛰실까요?”
사나이의 두 눈이 순간 번쩍 빛난 듯했다. 그것은 처음에 가순호가 행선지를 흑석동이라고 말했을 때 사나이의 두 눈에서 볼 수 있었던 정채의 번뜩임과 흡사한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하구 뛰실 수도 있으세요?”
“걸을 수가 있는데 왜 뛰기라고 못 하겠습니까?”
사나이는 벌써 무릎을 힘 있게 높여 머리 위로 뿔들을 들먹이며 뛰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전히 얼굴은 가순호를 향한 채. 가순호도 엉겁결에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사나이의 뛰는 모습은 마치 겨울의 들판을 유유히 가로질러 뛰어가는 뿔 세운 들소의 아침 산보 같았다. ‘칠성사이다’ 앞을 지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기이한 경주를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추거나 고개를 돌린 채 걸었다. 두 사람은 그 눈동자들의 물결을 헤치고 힘차게 뛰어갔다. 가순호의 심장에서는 곧 녹슨 기관(汽罐)이 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양쪽 폐에서는 목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눈치를 챘는지 사나이가 속도를 늦추었다. 평보*로 걸으면서 사나이는 조금 근심하는 표정으로 가순호를 바라보았다. 가순호는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저…… 그렇게 하구 자주 뛰시기도 하시나부죠?”
“예, 손님이 급해하실 땐 이따금 뛴답니다.”
“가족은 많으세요?”
“노모 한 분을 모시고 있지요. 효도를 못해드려서 늘 송구스럽답니다. 성님이 한 분 계셨는테 동란 때 그만 돌아가셨지요. 산에서 내려온 눔덜한테.”
“산에서 내 려온……”
“예, 그 뭐 인공*인가 공빈*가 허는 눔덜 있잖었습니까.”
“……부인은 안 계시구요?”
“……”
“……괜한.”
“아닙니다. ……그것두 첫앨 낳다가 애놈허구 같이 죽었답니다. 원체 약한 몸이었는데다…… 어디 변변히 먹였어야죠.”
“……오래됐나요?”
“한 댓 해 됐죠.”
‘성남극장’ 앞을 지나, 두 사람은 용산 미군부대의 긴 벽돌담을 끼고 걷고 있었다. 벽돌담 위에는 먼지 낀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그 안은 퀸셋 막사들이 들어선 또 하나의 거대한 도시일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하나의 거대한 연쇄 상가라고 볼 수 있는 서울의 거리에서 어떤 형태로든 상점의 간판이 걸려 있지 않은 거리는 이곳뿐인 것 같았다. 민간복 차림의 백인 하나와 흑인 하나가 각각 자그마하고 귀엽달 것도 없는 한국 여자 한 명씩을 허리에 데리고 가순호들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지나갔다.
“아까 보니 선상님은 혼자 계신 것 같더군요.”
이번에는 사나이가 가순호에게 건네어 왔다.
“네. 한 5, 6년째 하숙생활만 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있긴 한데 뿔뿔이 흩어져 산답니다. 모두 자기 식으로 살길 고집하는 사람들이라서요. 다 병 든 사람들이지요.”
“병환이 들다니요?”
“글쎄요. 가족이 한데 모여 살 수 없다는 것부터가 병 아니겠어요? 모여서는 건강하게 살지 못하니 그게 병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렇다고 따로따로 산대서 건강하게 사는 것도 못 되고 말입니다.”
변두리 교회 하나를 맡아서 하느님만 갈구하며* 살고 있는 아버지 내외와 별 정치적 신념도 없으면서 타성적인 야당 생활을 하고 있는 맏형,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임관 이후 어느 동기생보다도 빠른 진급으로 중령에 이르러 있는 둘째형, 미국인 상사의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여고 때 이래의 도미 계획을 착착 실천에 옮기고 있는 누이동생, 이상주의자다운 명석한 조직능력도 없이 무턱 대고 노동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셋째형, 그리고 잡지사 근처에 있는 다방에 드나들며 책 읽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어쩌다 글줄이나 얻어 싣게 되거나 번역거리라도 맡게 되면 거기서 얻은 푼돈으로 간신히 하숙비나 물게 되는 것이 고작인 가순호 자기 자신, 이렇게 주욱 머리에 떠올려 봐도 누구 하나 참으로 사람답게 살고 있다고 믿어지는 사람은 없다.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는 건 그리고 개답게 살지 못하는 개와 다를 바 없다. 이를테면 짖지 않는 개가 무슨 개란 말인가. 하긴 무는 개가 있기는 하다.
“그럼 혼인두 안 허시구요?”
“네, 어디 벌어먹일 자신이 있어야죠?”
“원, 선상님 같은 분이·…….”
“……그런데, 아저씨, 아저씨는 혹시 개가 무섭지 않으세요?”
“개라니요?”
“무는 개 말입니다. 길들여진 개 말입니다. 전 그 개가 무섭습니다. 밥을 직접 먹여주는 제 주인한테는 꼬리는 사리지요. 제 주인은 몽둥이로 때리거나 내쫓을 권리를 가졌다는 걸 알거든요. 그런데 주인 외의 사람에겐, 특히 한번 약점을 보인 사람에겐 그 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물어뜯을 준비를 합니다. 어려서 한번 개한테 물린 뒤로는 전 늘 개만 보면 전전긍긍한답니다. 개한테 물어뜯기는 꿈을 꾸는걸요.”
“예. 저도 어려서 개한테 물린 적이 있지요. 그 뭐 공수병인가 허는 거에 걸릴까봐서 얼마나 겁을 냈는지요.”
“아, 아저씨도 그러시군요. 아저씨도 개를 무서워 하시는군요.”
그러나 사나이의 얼굴에서는 무엇에 대해 무서워하는 빛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허지만 그 개헌테 등만 보이지 않으면 물진 못하는 법이지요.”
하고 사나이는 말했다. 가순호는 감탄했다.
“그렇군요. 아저씨. 아저씬 이제 제 병두 가지째를 고쳐주십니다.”
하고 가순호는 기쁨에 들떠 말했다.
“원, 선상님두. 또 그런 말씀을.”
하고 사나이는 숨김없이 웃어 보였다.
미군부대의 벽돌담은 길기도 하다. 한참만에야 삼각지 로터리에 이르렀다. 육중한 콘크리트 더미들로 쌓아 올려진 고가 교차로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사나이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바지주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그렇게 땀을 닦고 나자 사나이의 얼굴은 새로 정련(精鍊)한 구리처럼 더욱 말쑥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 딛는 무릎의 움직임은 더욱 힘차진다. 가순호도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그때 육군본부 쪽에서 달려 나오던 지프 한 대가 급하게 제동기 소리를 내며 멎었다. 운전병 옆좌석에서 장교 한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다.
“순호 아냐? 또 이사 가는구나.”
“아, 형.”
둘째형 필호였다. 사나이는 별 표정 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걸음을 좀 늦추었으나 그대로 행진을 계속했다.
“여전하구나, 넌. 그 얼굴색하며. 그런데 저 지게꾼 좀 별나구나. 저 지게꾼 아니었더라면 널 못 알아볼 뻔했다.”
“별난 게 아니라 자기 양식을 찾아낸 단 한 분의 지게꾼예요.”
“자기 양식을 찾아낸 단 한 분의 지게꾼? 거 뭐 복잡하구나. 아, 아냐. 설명은 듣고 싶지 않다. 네가 그렇게 말할 땐 그렇게 말할 준비야 또 돼 있을 테지. 그건 그렇고 어떻게 지내니, 요즘은? 누구 좀 만나봤니?”
“누구요?”
“아버지 어머니나 또 그 밖에……”
“아버지 어머닌 몇 주 전에 한 번 가봤어요, 여전하시죠, 뭐.”
“형님은?”
“못 봤어요. 형은 누굴 만났드랬어요?”
“아니. 나두 아무도 못 봤다. 만난 김이니 얘기다만 너 그런데 그 생활태도 좀 바꿀 수 없니? 네가 쓰는 그 글 나부랭이라는 것두 그렇구, 그게 뭐냐?”
“형을 닮으란 얘기죠?”
“야, 임마 그게 아냐. 좀 논리적으로 현실을 보란 말이다. 가만, 얘기 좀 하자, 누누이 얘기했지만 네 태도가 그게 이조 말의 수구당이 하던 짓과 뭣이 달라? 세계는 지금 현실주의의 대세루 가고 있어. 현실주의가 뭐냐. 바로 유효성을 찾는 일 아니냐, 유효성. 해서 득이 있느냐? 득두 빨리 거둘 수 있느냐? 이상주의자의 시대는 지나갔어, 임마. 또 설사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면 새로운 이상주의자가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이상주의자란 유효성을 위해서, 후진국일수록 그렇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이상 따윈 깨끗이 버릴 줄 아는 사람의 이름이야. 바로 효용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다, 임마.”
“형, 나 가겠어요. 저분을 더 이상 지체하게 하구 싶지 않아요. 한 마디만 얘기하면 대개 유효성만 따지는 사람이 갈 곳이란, 후진국일수록 그래요, 결국 일본놈들처럼 되는 길이나 공산당놈들처럼 되는 길밖엔 없으리라는 것뿐예요. 난 그렇게 되지 못하겠어요. 일본놈들에 대해선 어려서부터 난 생리적으로 적 개심을 길러왔고 공산당놈들을 막기 위해서 형 덕 안 입구 휴전선 근물 했댔어요.”
그렇게 말하고 가순호는 속도를 줄인 걸음으로나마 벌써 저만큼 앞서 가고 있는 사나이를 향해 결연히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야, 임마! 저 자식이, 저게!”
어쩌고 노해서 외쳐대는 소리가 등 뒤에서 잠시 나더니 이어, 제깐 놈 내 알 바 뭐냐는 듯이 지프가 부르릉 떠나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형의 소박한 형제애에서 나온 충고를 공산당과 한데 묶어 면박을 준 일이 못내 미안하고 한편 부끄럽기도 했으나 가순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걸었다. 가순호가 가까이 따라가자 사나이는 다시 걸음의 속도를 빨리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아저씨.”
“웬걸요. ……성님이신가요?”
“네. 닮았습니까?”
“닮지 않으셨던 데요. 성님께선 몸이 부하시더구먼요.”
“아, 네. 형은 어려서부터 좀 똥똥한 편이었죠. 형이 중학 3학년일 때 전 국민학교엘 막 입학했었는데 그때 둘의 키가 같았으니까요.”
“예에.”
그랬구먼요, 하는 뜻으로 사나이는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이고 나서 더 이상 호기심을 표시해오진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걸었다. 용산전화국과 용산우체국 앞을 지났다. 미원(美苑) 주식회사 앞을 지났다. 건너편으로 황달 걸린 사람의 얼굴빛같이 누런 빛깔로 칠해진, 큰 글씨로 ‘철우회관’이라고 쓰이고, 그보다 좀 작은 글씨로 ‘전국철도노동조합’ 이라고 쓰인 건물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일로 한강을 향해 행진을 계속했다. 그때 한강 쪽에서 신문사 깃발을 단 자동차들과 경찰 오토바이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처져서 가슴에 번호판을 단 젊은 남자가 입김을 뿜으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라톤 경기인 모양이었다. 한 50미터쯤 뒤에 또 한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앞선 사람이나 뒤선 사람이나 다 같이 몸에 붙는 상의와 엉덩이만 가린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전력을 다해 뛰고 있음이 역력했다. 사람들은 모두 연도로 몰려갔다. 금세 사람들로 울타리가 쳐져서 보도는 마치 옆이 막힌 좁다란 낭하처럼 되었다. 가순호들은 사람들의 등으로 옆이 막힌 그 낭하를 통해 그대로 행진을 계속했다. 사나이가 말했다.
“선상님은 구경 안 허세요?”
“네. 아저씨하구 걷는 걸 멈추고 보고 싶진 않습니다.”
“……”
사나이는 똑바로 가순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순호도 똑바로 사나이를 마주 보았다. 오랜 친구에게라도 그러하듯. 가순호는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에나 걷던 중에 그러한 마라톤 경기를 보던 일을 생각하고 그때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던 선수들의 모습을 아름답다고까지 생각했던 자기 자신에게 지금 순간 우월감을' 느꼈다. 그때의 자기는 얼마나 작은 소꿉장난 같은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던가. 그리고 지금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작은 것에 취해 있는 동안 자기는 얼마나 커다란 아름다움과 마주 서서 가고 있는가.
대한여행사 관광버스 영업소와 신진자동차 용산서비스 센터 앞을 지났다. 거기까지도 사람들의 등으로 옆이 막힌 좁다란 낭하는 계속되었다. 한강대교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순간 사나이의 걸음이 멈칫하는 듯했다. 가순호는 사나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알루미늄빛으로 번쩍 거리는 한 떼의 건물군(群)이 시야에 들어찼다. 일고여덟 해 전만 해도 모래먼지와 잡초가 무성하던, 그러나 지금은 기하학과 역학에 힘입은 바의 번듯하게 드높여진 한강변 위에 새로이 형성된 또 하나의 도시, 맨션아파트 마을이었다. 균제와 위관*을 자랑하는 그 건물들을 사나이는 어쩌면 처음 보는지도 몰랐다. 가순호는 고개를 바로 했다. 사나이는 멈칫했던 걸음을 다시 힘차게 옮겨놓고 있었다. 무릎의 관절을 힘차게 움직여 뒤로뒤로 하늘과 지평을 향한 네 개의 뿔들을 들먹 이며. 가순호는 다시 부지런히 사나이를 뒤따랐다. 강 쪽으로부터는 차가운 초겨울의 바람이 불어왔다. 가순호는 등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는 땀이 선뜩선뜩 식는 것을 느꼈다. 헌병 파견소 앞을 지나는 동안 차도 쪽을 향해 횡대로 도열해 있던 세 명의 육·해·공군 헌병 들이 딱딱하고 위엄 었는 자세들을 풀고 고개를 돌이켜 사나이의 기이한 행진을 눈여겨보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아치형 철골(鐵骨) 아이빔*들이 육중한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다리의 중간께로 접어들었다. 아직 얼어붙지 않은 강물이 풍부한 수량을 뽐내며 천천히 다리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거기 자갈 채취선 하나가 배 가득히 자갈을 싣고 떠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든든하게 방한 채비를 차린 잉어 잡이 노인 한 사람이 조그만 조각배에 앉아 낚싯줄을 휙획 잡아채는 모습도 보였다. 사나이는 묵묵히 뿔을 앞세우고 자기가 두고 가는 방향만을 응시하며 물러갔다. 그때 가순호의 시야에, 아이빔들이 교면*에서 서로 마주 닿는 부분에 등을 대고 앉은 걸인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걸인의 모습은 분명해졌다. 여자였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아니었다. 찬 공기 속에 먼지와 때로 얼룩진 가슴을 드러내놓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무릎 앞에는 양은 밥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동전 몇 닢이 흩어져 있었다. 여인은 뭐라고 칭얼거리고 있었다.
“한 푼만 주세요. 애 아부지는 병들어 누워 있고 애기는 배고파서 운대요. 배고파서 운대요. 한 푼만 주세요. 네, 한 푼만 주세요.”
순간 사나이가 걸음을 멈췄다. 사나이의 얼굴은 순간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광포한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지나쳤던 걸음을 앞으로 한 발짝 되물려 그는 그 양은그릇 앞에 버티고 섰다: 사나이의 얼굴은 이제 추하게 붉어져 있었다. 여인의 칭얼거림은 더욱 가련한 가락으로 바뀌었다. 그때 가순호는 사나이의 오른쪽 발이 번쩍 치켜들어지는 것을 보았다. 다음 순간 양은그릇이 애처롭게 오그라지는 소리가 났다. 사나이는 다시 절망적인 몸짓으로 그 오그라진 양은그릇을 걷어찼다. 안에 들었던 동전 몇 닢이 튀어 달아나며 양은그릇은 차도 한복판으로 굴러갔다. 졸지에 당한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폭행이 진행되는 모습만 바라보던 여인이 마침내 재난을 깨달은 듯 사나이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잡으며 악을 쓰기 시작했닥.
“아이구, 이놈아! 이게 웬 놈이냐! 이게 웬 놈이냐! 웬 놈이 내 돈 그릇을 밟고 차! 이놈아! 이놈아! 나마저 차라!”
여인이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젖꼭지를 놓친 아기가 기를 쓰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사나이는 그러나 여인에게 잡힌 바짓가랑이만 잠시 굽어보고 섰더니 다리에 힘을 주어 여인을 뿌리치고는 다시 묵묵히 행진을 시작했다. 가순호는 순간 사나이의 얼굴이 온통 눈물로 뒤범벅이 된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가순호는 생각했다. 사나이의 정말 아름다운 얼굴을 본 것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여인은 그들의 등 뒤에서 계속 악을 써대고 있었다.
“이 천하에 죽일 놈아! 평생 지게나 져먹어라! 이 도둑놈아! 이 천하에 벼락 맞아 죽을 놈아!” :
새 하숙집에 도착하여 짐을 부리고 난 다음 약속된 금액을 받고 나자 사나이는 말없이 떠났다. 그때 그는 비로소 바로 걷기 시작했는데 그 걸음은 힘없어 보였으며, 그의 등 뒤에서 하늘과 지평을 향해 뻗어 나온 네 개의 뿔들은 이제 뿔이랄 것도 없는, 때 묻은 네 개의 나뭇가지일 뿐이었다. 그 모습은 아주 초라해 보였다.
그날 저녁 가순호는 새 하숙집 여주인으로부터 메마른 김치·콩자반·멸치 졸임·계란 프라이 같은 하숙집 고유의 냉랭한 식단으로 차려진 저녁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 밤 새 하숙의 설핀* 잠자리에서 그는 개처럼 길쭉한 얼굴을 가진 친구도 포함하여 여러 명의 방문객들이 한껴번에 들이닥치는 꿈과 도시 한복판을 질주하는 들소의 뿔을 보며 흐느껴 우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아침은 몹시 추웠다.
『문학과지성』 7호(1972년 봄); 『무쇠탈』 (솔 1991)
조 해 일
조해일(趙海一) 1941년 만주에서 태어나 1945년 귀국하여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매일 죽는 사람」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일상 속에 만연된 폭력의 여러 양상을 우의적으로 형상화했으며, 미군부대 기지촌을 무대로 전개되는 삶의 비극적 양상을 생생하게 파헤친 중편소설 「아메리카」를 비롯해 「뿔」 「대낮」 「겨울 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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