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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7(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오신 날'과 '지리산 칠 암자'의 교집합을
세 번째 왔다.
두 번째까지는 칠암자를
정숙하고도 정통으로 걸었으므로
이번엔
2020년에 마음먹고 두고 간
해 묵은 숙제를 푼다.
실상사는
선종의 한 가닥인
구산선문의 대표적 대장사찰이다
국보 1과 보물 11가지를 보유한
유명하고 저력 있는 사찰이기도 하며
평지에 앉아있어 동네사람들과 친한
일상(日常)의 대표적 선종사찰이다
아침 6시,
목욕탕 갈 시간까지 8시간이나 남아 있다.
8시간까지야 걸리겠냐마는
오늘
목욕탕 가기 전
실상사 보물과 국보를 확인한다
12개 국보와 보물을
내 궤적(軌跡)에 맞춘다.
(실상사--약수암--실상사--백장암--실상사) 15KM
실상사 입구 돌장승(조선 정조시대)
퉁방울이 제주도 하루방의 기원인 듯싶기도 하다
부인 석장승
절 앞에 절을 지키는 장승이 드문 일 이기는 한데
부인이 남편보다 더 험상궂다.
실상사는
일주문이 없어
부처를 지키는 천왕문이 바로 나온다
1) 보물 37호
실상사 3층석탑(쌍탑)
2) 보물 35호
실상사 석등,
아주 예쁜 석등이다.
지붕의 덮개석이 화려하여
자세히 멀리서 한참 보면 석등이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3) 보물 41호
철조 여래좌상,
(약사전 내 소재)
4) 보물 39호
증각 홍척국사 응료탑비,
(극락전 앞 소재)
세월의 인고(忍苦)가 그대로 묻어난다
이 거북은 크기만큼이나 아담하고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5) 보물 38호
증각 홍척국사 응료탑,
홍척국사는 실상사를 최초로 세운 스님이며
증각은
홍척국사 열반 후 왕이 추존해 준 이름이다
6) 보물 34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
7) 보물 33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수철화상은 실상사를 융성시킨 홍척국사의 제자이다
8) 보물 36호
실상사 부도,
경내(境內)밖에 있어 이 양반 찾는데 논 밭길을 가로질러 거의 1시간 걸렸을 것이다
탑비는 없으며
누구의 탑인지 언급이 없다
<지난번까지 보물 36호였는데 숫자가 암묵 되어 있다>
이제
약수암으로 간다.
왕복 5.4km
걷기에 딱 알맞은 거리다.
약수암 보광전,
저 안에 보물이 있는데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터라 문이 닫혀 있다.
우특허냐
스님께
'보물찾기' 한다고 허락을 받아
내가 처음으로 직접 문을 열었다.
(시주하고 싶다고 하니 옆의 보살님께서 흐뭇해하신다, 1만 원이 내 욕구보다 적었다)
작은 정면 삼 칸이지만
보물이 있는 곳이라 팔작지붕 건물이 날아갈 듯하다
9) 보물 421호
약수암 목조탱화,
나는 이리하여
아주 가끔이라도 예술가들을 존경한다
약수암을 나오는데 보물 찾기를 한다고 하여
스님께서 얘기해 주신다
이건 모사품(模寫品)이고
진품은
며칠 전에 전주 모악산 금산사박물관에서 가져갔다고,,,
믿는 건 죄 아니다
자세히 다시 보니
부처님을 포함한 1층 5분은 부처님과 같은 엄숙한 얼굴이지만
2층에 계신 6분은 석가모니 바로 위 두 분 제자를 포함하여 인상이 밝고 여유롭다.
1층과 2층의 얼굴 표정이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1층은 심각하고 2층은 놀구 계시다.
이게 맞는 것이다.
실상사 삼거리로 다시 왔다
걸쭉한 남원추어탕,
추어뼈가 씹히어 오랜만에 제대로 된 탕을 먹었다
이제
남은 물건 3개
실상사에서 3.9km 떨어진 지방도 입구,
여기까지는 좋았다
여기로부터 1.2km 아스팔트 된비알을 올라야 할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백장암,
보물과 국보가 나란히 서 있다
10) 보물 40호
백장암 석등,
실상사 석등에 비하여
밋밋하지만 소박하고 단순한 백치미가 있어 그 또한 좋다
11) 보물 420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1584년),
이거 찾아야 하는뎅
스님을 찾아 '보물찾기'하러 왔는데 어디 감춰두었냐고 여쭈어보니 내 어깨를 툭 치며 하시는 말씀이다
'엊그제 금산사 큰 집에서 왔다 갔다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이다
12) 국보 10호
백장암 3층석탑,
돋을새김도 명확하고 지붕돌도 완벽하여
그림의 보존상태가 너무 좋다
엄청난 시골에 있어
이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게 아까운 거다
국보와 보물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국보와 보물의 숫자의 의미 때문에
몇 년 전에 국보와 보물 뒤에 붙여진 숫자를 이제는
국가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보와 보물의 숫자가 1에 가까울수록 그 물건의 중요도와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데 그건 사실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이제
그 숫자는 지정한 순번에 의한 것에 불과할 뿐 가치와는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 물건이 국보 10호이고
국보 24호인 불국사 석굴암
국보 224호인 경복궁 경회루를 견주어 보면
금방 이해될 것이리라
어쨌거나 조타
대한민국
국보 10호를 보았으니,,,,,,,,,
1500년 전 그네들의 숨결을 잠깐이나마 느낀다는 게
이렇게 아닌 들 다른 방법이 있으랴!
백장암을 뒤로하고 본 지리산(1.5배)
이게
산속에 깊이 숨어 있는
절 맛이다.
내가
처음 마주 한 실상사는
30년 전 어느 날 젊은 시절 여름 가족휴가 때이다.
세상을 모르던 시절
이런 평지에도 절이 세워져 있다는 것을,
산 꼭대기 근처에만
절이 있다는
내 고정관념을 깨 준 고마운 절이다
그때의 실상사(實相寺)가
처음처럼 만큼이나
지금도 그러하듯이
내 마음도 변함은 없으나
그때를 찾는 내 걸음걸이의 속도는 그때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일반 중생이
'부처님 오신 날 '이라도 일 년에 한 번
절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가 겪었던 그 어느 날
돌아가신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김수환추기경님을 뵈러
명동성당을 찾은 만큼은
비록 못 되더라도
그나마 아름다운 일이다.
기회가 되면
지리산 팔암자를 또 올 수도 있겠지만
갈수록
그럴 확률은 적어질 것이다
첫댓글 철 지난 사진이기는 한데
흩어져 있는 소중한 사진들이기에,
게재하오니 참고하여 주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