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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랜턴이 '보다 나은 한국인'을 꿈꾸며 만든 여학교 |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의 대사로 유명하지요. 서울 강남권에서 이화여대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중년 여성이 당시 전체 여자 대학생보다 많을 정도로 이 학교는 시대의 아이콘입니다.
1886년 오늘은 이대의 뿌리, 이화학당이 첫 수업을 시작한 날입니다. 이 학교는 11개월 전에 아들과 함께 우리 땅을 처음 밟은, 감리교의 여성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이 설립했습니다. 뉴욕의대 출신의 아들 윌리엄과 함께 모자(母子) 선교사였지요. 우리나라에 올 때 어머니는 53세, 아들은 29세였습니다. 스크랜턴은 자신의 집에 기거한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목사가 배재학당을 연 것에 자극받아 서울 정동에 여학교를 설립합니다. 첫 학생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김 부인. 고관의 소실로 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이 되고 싶어서 학교를 찾았다고 합니다. 1886년 오늘 스크랜턴이 김 부인 한 명을 상대로 첫 수업을 펼친 것이지요. 이화학당은 고종이 하사한 교명입니다. 이화(梨花)라는 이름은 정동에 흐드러지게 피던 배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라는 설도 있고요. 학교법인 이화학원은 이화여대와 부속유치원, 부속초등학교, 부속이화․금란중, 부속이화․금란고, 병설영란여중, 병설미디어고와 이화여고, 이화외고 등의 식구가 있으며 지금은 분리됐지만 예원중과 서울예고도 뿌리를 같이 하고 있지요. 스크랜턴 여사는 1987년 이화학당 안에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조선엔 남녀가 마주쳤을 때 멀리 피하지 않고 궁둥이만 슬쩍 돌려 외면하는 것을 ‘궁둥이내외’라고 할 만큼, 남의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 피하는 ‘내외하는 풍습’이 있었지요. 여성들이 남자 의사의 진료를 기피했기에 여자들을 위한 병원을 세운 것입니다. 명성황후가 ‘보구여관(保救女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요. 오늘날 이화의료원의 전신입니다. 스크랜턴 모자는 “사대문 바깥의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에게 음식과 의료혜택을 주고 싶다”며 약을 나눠주는 시약소(施藥所)들을 세웠는데 나중에 항일운동 본산이 된 상동교회, 아현교회, 동대문교회입니다. 스크랜턴 여사는 “내가 하는 일이 이 땅의 사람들 마음에 들든지, 안 들든지 나는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온화한 애정’이란 꽃말을 가진 배꽃과 어울리는 말이지요? 그는 이화학당의 교육이념으로 ‘보다 나은 한국인’을 설정하고 ‘한국인이 한국적인 것에 대해 긍지를 갖게 되는 것’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만약 스크랜턴이 지금 ‘옥탑방 왕세자’처럼 환생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자랑스러워하고 감격해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과연 우리가 우리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나요? 분명 19세기에 비해서 ‘보다 나은 한국인’이 된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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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이든의 트럼펫협주곡 드려옴니다 영화타이타닉의,,,내주를가까히 바이올린 연주도 요~~~ 꿈꾸며 만든하교며,,
더둠어 온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