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 봉암사 갔다가 셔틀버스를 운영하지 않는 바람에 그 먼 거리를 줄곧 걸어서 나와야 했다. 군대에서도 난 이런 구보를 하지 않았다. 유격훈련은 작전과에 있었던 관계로 3년 내내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내 이름을 내가 그냥 빼버렸다. 자랑삼아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암튼 행군 같은 것조차 하지 않았고 난 보병이 아니라 ‘삼보 이상은 승차한다.’는 포병 작전과 출신이다. 그래서 오래 걷는 것은 쥐약이다.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선랑당(仙娘堂)’
목구멍에서 단내가 제대로 올라 올 즈음에 서낭당을 보게 된다. 당집도 있고 대충 오방천이 걸쳐져 있는 당산나무도 있어 간만에 오래된 서낭당을 보나 했다. 현판이 선랑당(仙娘堂)이라 적혀있다. 서낭당도 아니고 성황당(城隍堂)도 아니다. ‘서낭’은 동네 신을 말한다. 여자 신선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이 동네 남자 신선은 다 죽었나 보다. 아니면 글빨이 여자 신이 더 세든지. 제대로 쓴 현판인지 자꾸 가까이서 보게 된다.
서낭당을 선왕당(仙王堂)에서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중국에서 온 성황당(城隍堂)이 변해서 서낭당이라고 한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크게 판을 벌이면 성황당이라고 하고 동네 조그마한 것은 서낭당으로 분류하는 이들도 있다. 국가에서 운영했던 사직단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사(社)는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의 의미이며, 직(稷)은 기장 즉 농산물을 뜻한다. 어쨌거나.
성황당(城隍堂), 선왕당(仙王堂)이라면 이해하겠는데 난데없는 선랑당(仙娘堂)은 또 뭐냐말이다. 이 마을 당골래(마을 무당)를 불러 물어보고 싶다. 옛날엔 무당이 왕이었다. 의사가 약도 짓는 그런 때였다. 그러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며 의약 분업이 되었다. 제정일치 신정(神政) 사회가 무너지고 통치자는 따로, 무당 따로인 사회가 도래한다. 이게 아직 우리 사회에 면면이 전해오는 서낭당 풍습이다. 동제 지낼 때 마을 이장이나 도의원 같은 사람 보고 제사 지내게 하지 않는다. 인품과 덕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 옛날에 우두머리를 ‘거수(渠帥)’라고 했는데 거수 밑을 ‘박수’라고 하였다. ‘벅수’라고도 하였는데 ‘박수무당’은 지금은 남자 무당을 칭하지만‘ 옛날엔 무당이 옛날에 제정일치 사회의 군주이자 무당이었다는 증거라고 한다. 박수를 한자(漢字)로 박사(博士)로 표기되었다. 문학 박수보다 문학박사가 있어 보이잖아.
“사장님 뒤에 큰 장군님께서 계십니다.”
무당이 나보고 한 말이다. 이상한 점괘로 열 받은 나를 어떻게 해서든지 달래보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나의 수호신은 큰 장군이란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건 웃기는 이야기다. 무당들이 섬기는 신을 흔히 ‘장군’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 신은 큰 장군이라고 해서 ‘대장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무식한 무당은 장군을 ‘將軍’으로 해석해서 생긴 것이다. 무당을 칭하는 ‘댱군’이란 말이 장군으로 변질한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 동네 당골래는 왜 여신을 모시게 된 것일까? 억수로 궁금하다. 제발 한문표기를 하다가 잘못 쓴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영험하다는 고목에 오방천을 두르거나 새끼줄을 친다. 그리고 염원을 담아 돌을 쌓는다. 누군가가 이야기하듯, 외부의 적이 쳐들어왔을 때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조금 아닌 것 같다. 서낭당을 선왕당이든 성황당이든 자꾸 한문화하여 유식하게 표현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쪽으로 인용해서 한자=고상한 언어로 만들려고 한다. 마치 젊은 애들이 영어=세련된 언어로 자리매김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The local god house’
서낭당보다 있어 보이지 않나? 요즘 자꾸 젊어지고 싶다.
첫댓글 "신선 같은 아가씨 귀신이 사는 집"
총각 귀신이 잘 꼬시킬 수도 있겠습니다.^^
애교로 봐 주시길~
우와, 대단하십니다. 이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다시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글이 시원시원하고 졸졸 흘러와서 마음을 찰랑찰랑입니다. 언제 봐도 즐겁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의 옛조상은 여신을 모시는 신앙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해박한 지식에 감탄합니다. 앗. 잊을뻔 했는데 저는 매일 세시간이상 걷습니다. 걷는 게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좋아요.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