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易解考.
어떤 시대.
조선 시대 주역을 읇조리는 정도면 시골에서 선비 대접을 받았다. 주역의 한괘 정도라도 입에 담고 글로 표현 할 정도면 한 고을의 선비로 인정을 받았다. 주역의 전체를 가늠 하고 자신의 생활에 적절 하게 활용 하는 정도면 그 사람은 무엇인가 큰 벼슬을 했다. 주역의 활용의 차원을 넘어 주역에 의문을 품고 주역의 저술에 도전하여 탈고를 한 사람은 틀림 없이 조선의 대학자였다.
조선 5백년을 통 털어 개인의 이름을 달고 출간된 주역은 총 10종이 되지 못한다. 권근의 주역천견록부터 이황, 이이, 서경덕, 한원진... 정약용의 주역사전(四箋)에 이르기까지 온전하게 전하는 주역은 열 종류가 되지 못한다.
공자 주자의 압도적 권위에 주눅이 든 상황에서 학자들이 주역의 인용과 칭송이 아닌 새로운 주역을 저술한 다는 것은 청출어람한 실력과 용기가 함께 있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주역의 시대를 살면서도 주역의 지방방송국을 개국(?)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주역사전(四箋).
얼마전 다산 정약용의 저술 '주역사전'이 출간 되었다. 한 고등학교 선생의 노력에 의해 한역 출간된 주역사전의 출간 보도를 보고 입맛이 썼다. 나는 영인본으로 묶여 있는 다산 선생의 유고집속에서 주역사전을 읽은터라 책을 구입 하지는 못했다.
다산의 주역은 이미 한역 되어야 마땅 하다. 그러나 이렇게 재야(?)에서 애를 쓰는 사람이 아니면 요원한 일이니 세상이 참 이상 하다. 학자들은 바쁘고 재야의 인사들은 한가 하여 이런 일을 하는 것인가.
다산은 주역이 복희씨가 천지를 관찰 하여 천명을 간파한데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천지자연의 운행현상을 잘 궁리하여 記號로 표현 땅에다가 그려보다가 그 記號에 비견 상응 되는 성격의 四物에 견주어 吉凶을 판단 하고 대응 하는 방법을 마련 하는 것이 주역의 시초라 한다.
다산은 복희씨 당대에 주역의 64괘가 모두 완성 되었다고 믿었다. 다산은 이후 문왕과 주공이 記號의 의미를 표현 하는 易의 언어인 易辭를 지었고 그 기준을 복희씨가 만든 卦와 象을 삼았다고 한다. 다산은 주역의 원작에는 네가지의 중심 기둥이 있는데 그것은 推移, 物象, 五體, 爻變이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物象이라 했다.
하여 다산이 4년이나 걸려 완성한 주역의 이름이 주역 四箋이다. 주역에서 象의 중요성은 초연수 위백양 경방등의 상수역자들의 중요 강조 사항으로, 다산도 상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왕필의 의리역파와는 다른 상수역의 계열에 선다. 그러나 다산은 상수역의 계열을 따르면서도 상수역의 허실에 매우 도전적이었다.
다산은 상수역의 비논리적이고 견강부회한 해석을 털어내는 데에 많은 애를 쓴다. 그러나 다산 스스로도 자신의 주역사전에 자신을 하지 못한다. 몇년을 두고 애써 해석한 효사가 어느날 다시 보면 열에 일곱을 틀렸다는 토로는 학자로써의 다산의 진면모다.
다산은 주역사전에서 爻를 강조 하는 것을 가치로 삼았다. 다산의 전시대 까지는 주역에서 爻變을 강조 하는 분위기는 비교적 없었다.
ㅡ 卦의 一二三四는 畵다. 그 一二三四가 변한 것이 爻다. 爻는 交로 陰陽의 교역이다. 오늘날 畵를 爻로 알고 있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주자는 효변을 점사로 인식 했다. 그러나 다산은 효변을 역사(언어)의 근본 원칙으로 인식 하고 爻變이야 말로 주역의 언어를 풀어 내는 열쇠로 보고 주역사전에서 그것을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다산의 주역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다산 마저도 주역안에서는 논리의 모순과 작위적인 해석으로 헤멘다.
다산이 강조한 주역 효변설은 당시로는 참신 하고 독보성이 있는 것이었다. 왜? 라는 의문과 그 의문에 대한 끊임 없는 천작이 주역의 진화 과정에 귀감이 되는 것이고 새로운 주역을 집필한 다산의 위대성이다.
주역의 얼굴.
<1>坤象 <2> 坤爲地.
<3> 坤元亨利 牝馬之貞...
<4>初六 <5> 履霜堅氷地.
주역의 2괘인 곤괘의 요점이다. 1. 괘상, 2. 괘명, 3.괘사 4. 효제 5. 효사.는 오늘날 주역을 구성 하는 핵심 요소다. 이 인식은 오위일체로 서로 밀고 끌고 변하고 암시 하며 占과 象과 哲學으로 하나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산은 이 토대위에서 효의 변화와 해석으로 보다 정돈 되고 오묘한 주역의 세계에 다가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다섯가지 요소중 2 괘명과 4 효제가 괘상 괘사 효사들과 함께 출발 한것이 아니라 훨씬 뒤에 승차한 심각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 대학자 다산이라 하더라도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산은 복희씨가 완성 했다는 괘와 괘사 효사등을 전혀 의심 하지 않았고 그 변하지 않는 기준 속에서 주역의 본의를 밝히려는 도전을 물경 4년이나 한것이다. 참으로 우직한 다산의 모습이다. 조선 시대의 학자들은 대부분이 이랬다. 공맹 사상의 권위에 도전 하는 일체의 연구 풍토가 제한을 받던 상황에서 주역의 본의를 피해 부수적인 연구로 본지에 다가 가려 했던 다산의 모습은 애처롭다.
곤괘에 빈마지정이 있다. 점에 물은 암말의 점이란 뜻인데 암말의 점괘가 나오면 길하다는 뜻이다.
나는 은허갑골사류찬<책의 22247> 속에서 다음과 같은 점사를 보고 주역 곤괘의 빈마지정을 생각 했다.
ㅡ辛丑卜王三月侑示壬母(비)庚承不用.
侑大母牝用.
주역에서 말한 암말의 점은 왜 길한가? 말은 귀한것이고 암말은 새끼를 생산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경제적인 면에서 암말이 길한것은 당연 하겠다. 주역이 한권의 책으로 묶이기전 청동기 사람들의 인식을 곤괘가 잘 담아내고 있는 모습이라 하겠다. 해석을 해 보자.
ㅡ 신축일에 왕이 (유)에게 임신한 여자를 3월에 집안으로 들이는 것에 대해 물었다. 하지 말까요?
ㅡ임신한 여자를 맞을까요?
牝은 牛와 匕의 결합이다. 소에 칼 자국(생식기)이 있으니 암컷을 말한다. (비)는 女와 比의 결합이다. 여자 +돕는것이다. 후처를 말한다. 은나라 시절 정실은 婦로 썼다. 임신한 여자를 후처로 맞이 한다는 의미는 생산력을 최고의 가치로 치던 시대의 이야기다. 이 당시 子의 의미는 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아이들은 모두 子라 했다. 동족간의 결혼을 엄격 하게 금지한것은 주나라 때이다.
주대의 법에는 친족간의 결혼을 금한다는 법조항이 있다. 앞 시대에 그런 광범위한 풍토가 있기에 생긴 법일것이다. 위의 점사의 해독은 순전히 나의 해석이다(참고본도 해석본이란것도 있지 않다)
그러나 이 해석 또한 많은 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기반 한것이다. 侑가 사먼이란 갑골점사의 해독법이 나오지 않았다면 나도 분명 뜬금 없는 해석을 했을 것이다. 이미 연구자들의 피와 땀 속에서 나같은 문외한도 무임 승차를 하는 것이겠다.
坤.元亨.利牝馬之貞.君子有攸往.
先迷.後得主利.西南得朋.東北喪朋.安貞吉.
坤. 갑골 금문에는 보이지 않는다. 亨은 갑골 금문에 향불을 올리는 모습, 아이의 머리를 자른 모습이다. '설문'은 제사를 지내는 향대라 한다. 元은 二와 兀의 결합자로 二는 上이고 올은 걸어가는 것이다. '설문'은 으뜸이다 기록 하고 있다. 利는 갑골문은 벼를 칼로 자르는 모양 '설문'은 날카롭다는 뜻 옥편은 이로울 리로 나온다.
馬는 갑골문에 말을 옆에서 본 모양이다.'설문'은 말(타는)이라고 한다. 貞은 갑골 금문은 솥의 모습이다. 卜을 태워 얻어진 모습을 '설문'은 貞은 묻는 것이라 한다.
군자유유왕에서 '주법고<언어학자>는 고대의 어법에 吾(일인칭 조사)는 없고 攸와 葛등이 보이는 것이 주역의 괘 효사가 전국 시대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논지로 유자를 고대 어법의 흔적으로 단정 하기도 했다.
先은 갑골문 금문에 사람위에 발이 있는 모습으로 '서중서'는 人의 선조를 뜻한다 한다. 迷는 갑골문 금문에는 보이지 않는다. '소전'에 착과 미의 결합이라 했고 '설문'은 미혹하다의 뜻이라 한다. 後는 갑골문에 실을 묶는 모습이다. '서중서'는 결승문자로 가계를 기록한 방법으로 후대를 말한다 했고 '설문'은 뒤졌다는 뜻이다 했다. 主는 갑골 금문에는 보이지 않는다. '단옥재'는 불꽂의 모양으로 주인의 주로 가차 되었다 한다. 朋은 화폐의 단위다. 5붕 10붕이란 말은 은허 점사 곳곳에 나온다. 설문은 鳳의 의미라 한다. 옥편에 이르러서야 친구다. 安은 갑골 금문 소전 모두에 집에 여자가 있는 모습이다. 설문은 편한 의미 靜이라 한다.
이로 유추 하여 해석을 하면 다음과 같다.
ㅡ 큰 제사를 올려라. 암말의 점이다. 군자가 나가면 조상은 어렵지만 후손은 불꽃 처럼 일어 나리라. 서남쪽에서 재물을 얻고 동북에서 재물을 잃는다. 어느정도 안정된 점이다.
이 해석을 의리역과 상수역에서 해 오던 그동안의 해석과 비교를 해 보자.
ㅡ 크게 형통하다 암말은 곧음과 같다. 군자가 갈 곳이 있으면 먼저는 친구를 얻고 뒤에 친구를 잃으니 의리를 갖을 일이다. 서남쪽에서 친구를 얻고 동북쪽에서 친구를 잃으니 곧음을 지키면 길하다.
암말의 무엇이 곧음(貞)인가. 암말을 곧음, 의리, 도(道)로 살핀 사람들의 해석력이 그저 경외스럽다. 초기 주역의 굴절의 모습을 곤괘에서도 여지 없이 보게 된다. 귀장역은 곤을 1번으로 연산역은 간을 1번으로 삼았다는 기록과 유추할 만한 흔적도 있는 것을 보면 건곤을 얼굴 마담으로 삼아 질풍노도를 달려온 주역의 진면모가 멋적다.
나는 갑골문으로 읽는 주역을 통해 주역의 괘사와 효사에서 10익을 털어 내고, 원문은 원문대로 10익은 10익 대로 연구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원문과 10익이 하나라는 억지를 계속 주장 할 것이 아니라 원문과 10익을 자유롭게 연구 하고 해석 할 때 대학자 다산 선생의 수고로움도 뭐가 뭔지 아무도 모르는 연구가 계속 되고 있는 지금의 주역 세계의 고통(?)도 사라질 것으로 본다.
첫댓글 많은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