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혁구 신부 / 전주교구 관리국장
미국의 메릴랜드 주의 베데스다에 사는 에드워즈는 방 4개 짜리 주택에 산다. 그런데 그녀의 집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거실 바닥과 모든 가구 위에는 정크메일, 구겨진 포장지, 봉지에서 꺼내지도 않은 5년 묵은 신문, 부러진 칫솔, 얼룩진 쇼핑백, 변색된 영수증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현관문을 열기조차 힘들다. 부엌도 마찬가지이다. 음식용기, 물병, 종이쪽지 등이 가득해서 음식을 만들기도 불가능하다. 냉장고 안에도 무언가가 가득 차서 내용물 확인도 불가능하다. 각 방들도 상황은 거의 똑같다. 옷, 상자, 종이더미 등으로 가득차 있어 걸어다닐 수도 없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화장실 앞 3피트 남짓한 공간에서 잠을 잔다. 상상을 초월하는 에드워즈의 집안 내부는 그녀가 주부로서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병, 즉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으는 저장자(hoarder)’ 라는 병 때문이다. 부동산 중개인으로서 사회생활도 잘하고 인텔리 여성으로서 사교적인 그녀가 이렇게 산다는 것을 그 누구도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워싱턴 포스트 지에서 발췌) 우리는 위의 이야기를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 역시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불필요한 것들을 괜히 쌓아두며 살기 때문입니다. 옷장을 한번 열어 보십시오. 빈 방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냉장고 안을 한번 들여다 보십시오. 남보고 웃을 일이 아닙니다. 필요치 않은 것을 나누거나 비우는데서 삶은 더 충만해지고 풍성해지는 것인데,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에드워즈라는 사람도 처음에는 그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개 두 개 세 개… 이렇게 늘려가다 그만 물건 더미에 갇혀, 자신을 위해 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가두기 위해 쌓아둔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어떤 일이 이루어졌는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며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복음, 해방, 보는 것, 자유, 이 모든 것들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비우며 내어놓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나 홀로 중심이 아니라 이웃도 똑같이 중심이 되는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나누며 비우는 삶을 사셨고 우리로 하여금 그 뒤를 따르라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남의 손을 씻다보면 내 손도 따라 깨끗해지고 남의 귀를 즐겁게 해주다 보면 내 귀도 따라 즐거워진다. 그리고 남을 위해 불을 밝히다 보면 내 앞이 먼저 밝아지고 남을 위해 기도를 하다보면 내 마음이 먼저 맑아진다.” 나누고 비우는 것도 바로 같은 방향입니다. 나누면 내가 먼저 풍성해지고 비우면 내가 먼저 자유로워집니다.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살도록 불림을 받았는데, 썩어 없어질 물건 때문에 옹색하고 답답하게 산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늘은 해외원조주일입니다. 우리의 정성을 한 번 더 나누어 볼 기회이며 우리들의 욕심을 비워 볼 기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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