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시 읽기> 빈집/기형도
문은 어느 쪽에서 잠갔을까
짤막한 실연 발표를 필두로 줄줄이 나오는 것은 실연 전의 아야기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느라 보낸 밤들은 짧았고, 어느덧 맞이한 새벽에 본 겨울 안개들은 내면에 고요히 가라앉았겠지. 자신과 함께 어둠을 지키던 촛불들, 감정이 너무나도 차올라 도리어 아무것도 적어 넣을 수 없었던 흰 종이들, 그걸 보며 눈과 마음을 적시던 눈물들, 한마디로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 이 모든 것들에 시인은 ‘잘 있거라’는 말을 보내면서 이별하고자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시인은 돌연 문을 잠가버리는데, 그 잠그는 방향이 좀 모호하다. 만일 안에서 잠근다면 시인은 ‘가엾은 내 사랑’과 빈집에 함께 갇히게 된다. 시인은 이제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한 곳에서 과거에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빈집은 다분히 절망적이고 자폐적인 공간이며 ‘열망’을 상실한 자의 황량한 내면 그 자체다.
반면에 ‘가엾은 내 사랑’을 빈집에 놓아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빈집은 영원한 추억과 그리움의 공간이 된다.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기에 ‘내 사랑’은 그곳에 지금 모습 그대로 있게 된다.
그러고 보니 시작이 왜 ‘사랑을 잃었네’가 아니라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인지 알겠다. 이 시는 한마디로 사랑을 잃은 자의 넋두리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쓰는’ 자의 고백인 것이다. 중요한 건 실연 자체가 아니라 ‘실연 그 후’이며, ‘잘 있거라’는 이별의 말이 아니라 문을 잠그는 행위다.
그나저나 우리는 예전에 어느 쪽에서 문을 잠갔던 걸까.
―김경민,『시 읽기 좋은 날』, 쌤앤파커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