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군사쿠테타의 무게, 고작 '통닭'이었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패배한 반역자조차 최소한의 ‘품격’은 지키려 애썼다.
윤석열의 마음의 고향, 이웃 일본은 스스로 '할복'이라도 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주사위를 던지며 루비콘강을 건넜고,
나폴레옹은 혁명의 완성을 위해 브뤼메르 쿠데타를 일으켰다.
비록 그것이 헌정을 파괴하는 역모였을지라도,
그들은 ‘구국의 결단’이나 ‘체제 개혁’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실패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조차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역사적 소명이었음을 강변하며 비장하게 죽어갔다.
자신이 내건 명분이 초라해지는 것은 죽음보다 더 큰 치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가장 비루하고 기이한 반역의 변(辯)을 목도하고 있다.
내란의 책임을 부하들에게 전가하며 숨기 바빴던 윤석열 대통령이 마침내 내놓은 계엄 선포의 이유는 충격적이다.
“국회가 장병들 통닭 사줄 예산을 깎아서.”
이것이 헌법을 유린하고 무장병력을 국회로 불러들인 반란 수괴의 자백이다.
수천 년 역사 속 어떤 독재자나 반란군 수괴도
고작 ‘통닭’을 국가 전복과 비상사태의 명분으로 삼지는 않았다.
이는 비극을 넘어선 저급한 블랙코미디다.
명분은 그 사람의 그릇을 대변한다.
국가의 안위와 헌정 질서가 일개 부식비 예산 문제와 동급으로 취급되는 그의 인식 세계에서,
대통령이라는 직위의 무게는 깃털보다 가볍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통치자인지를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더욱 통탄스러운 것은 이 발언이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해 온 지지자들마저 모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도자가 숭고한 가치가 아닌 고작 ‘통닭’를 명분으로 내세울 때,
그를 따르던 무리는 신념을 가진 정치적 동지가 아니라 사리분별 못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는 자신을 지지해 준 이들을 ‘하찮은 것’조차 못 되는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지금 국민의 힘과 그의 지지층이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이성을 갖추고 있다면,
이 희대의 촌극에 대해 침묵하거나 옹호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장 앞장서서 이 부끄러운 고백을 규탄해야 마땅하다.
역사는 이번 사태를 거창한 이념 대립이 아닌, ‘통닭 계엄’이라는 조소 섞인 이름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 초라한 반역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오직 살아남은 국민들의 몫이다.
그리고 ‘통닭 계엄’을 아직도 지지하고 있는 '통닭의 힘' 장동혁에게
'배달 통닭'이라도 한마리 보내주고 싶은 밤이다.
" 왜 사냐" "니 마이 묵으라"
2025. 12. 23.
김경호 변호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