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꽁지 터진다
옛날에 어느 작은 마을에 처녀 총각이 살았다.
하루는 총각이 나무하러 산에 가보니
마침 처녀도 나물 캐러 와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딱 둘 뿐이었다.
총각은 엉큼한 생각이 들어서 수작을
꾸미기 시작했다."너 나물 다 캤니?"
"응, 너 나무 다 했어?"
"응, 그러면 우리 점심이나 먹자."
둘은 자연스럽게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서 가지고 온 점심 보자기를 풀었다.
그런데 총각은 무얼 좀 알았던 모양이나 처녀는
맹한 구석이 있어 남녀의 일에 관해 전혀 몰랐다.
총각이 넌지시 말했다. "저 옹달샘에 가서 물을
좀 마시려고 하는데 나를 좀 붙잡아 줄래?"
"그래." 총각 녀석은 그 대답을 듣더니만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하여 알몸이 되었다.
"물먹는데 옷은 왜 벗어?"
처녀가 묻자 총각이 둘러댔다.
"혹시라도 물에 빠져서
이 옷을 적시면 어떻게 입어?
그러니까 미리 벗는 거야." "응, 그렇구나."
총각은 넙죽 엎드려 물을 마시다가
뒤를 향해 처녀에게 소리쳤다.
"물 마시기가 힘이 들어. 내 다리 사이에
살꽁지가 하나 달려 있지? 그걸 꼭 잡아다오.
그렇지 않으면 물을 못 마시겠다."
처녀는 멋도 모르고 그 문제의 살꽁지를 잡았는데
처음에는 한 손으로 잡았지만 살꽁지가 자꾸
굵어지니까 두 손으로 잡았는데도
점점 굵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처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살꽁지 터진다. 물 좀 그만 먹어라.
살꽁지 터진다. 살꽁지 터져."
"그래 꼭 잡아라,
터지기 전에 꼭 잡아라. 잘못하면 빠지니까."
주모가 갈림길에 섰다. 기둥서방을 들일 건가 말 건가? 서로 장단점이 있다는 걸 주모는 잘 알고 있다.
장점은 대충 이렇다. 사람들이 과부라고 깔보지 않는다. 엿장수고 갓장수고, 늙은 놈이나 젊은 놈이나, 양반이나 상것이나 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양물을 찬 놈들은 과부 치마 벗길 궁리만 한다. 술에 취해서 주막이 파한 후에 안방으로 쳐들어오지 않나, 곰방대에 불 붙인다며 부엌에 들어와 술상 차리는 주모의 치마 밑으로 손을 넣지 않나…. 든든한 기둥서방이라도 있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술 처먹고 밥 처먹고 나서 돈 없다고 치부책에 외상 달아놓으라고 뻔뻔스럽게 나오는 놈들도 부지기수다. 해가 바뀐 외상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놈들이 어깨가 떡 벌어진 기둥서방이 치부책을 코앞에 펼치면 전대를 풀든가 물납이라도 한다.
국밥을 한참 먹다가 제 머리카락을 국밥 속에 넣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새 국밥 가져오라 떼쓰는 놈, 술 두 잔을 따르니 호리병이 바닥났다고 깽판 치는 놈들도 기둥서방의 고함에 쑥 들어간다. 장작도 패고 구석구석 소제도하고 지붕 고치는 것도 기둥서방 몫이다.
이런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만만찮다. 주막집 주모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것이다. 바로 하룻밤 운우의 정을 나누고 해웃값도 챙기는 것. 온종일 눈물 흘리며 아궁이에 불 지펴 국 끓이고 밥 해 상 차려내고, 고두밥 쪄서 누룩과 버무려 막걸리 걸러내 팔아도 늦은 밤 호롱불 아래서 계산을 해보면 별것이 없다. 땀 흘린 품값을 제쳐 놓더라도 매상고에서 재료비를 빼고 나면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남정네와 하룻밤 자고 나면 재미는 재미대로 보고 재료비 한 푼 안 들어간 해웃값은 고스란히 알돈이다.
하나 기둥서방이라고 들여놓으면 그 짓을 할 수 없다. 또 하나, 기둥서방은 기둥서방일 뿐인데 이게 주인행세를 하며 친구들을 데려와 공짜 술을 주거나 돈통에 손을 대기도 한다.
청풍 나루터 주막. 서른아홉 살 주모는 아직도 박가분을 바르면 눈 밑의 잔주름을 감추고 처녀까지는 몰라도 청상과부 행세는 할 수 있는데, 한해 전에 왈패들 등쌀에 못 이겨 홀아비 우 서방을 기둥서방으로 맞아들였다.
지난 단옷날, 씨름판에서 황소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주막으로 들이닥쳐 술 한독을 다 비우고 호탕하게 웃어 젖히는 게 너무 멋있어 주모가 먼저 꼬리를 쳐서 우 서방을 안방으로 끌어들여 호롱불을 껐다. 그 큰 덩치로 꾹꾹 누르는 통에 주모는 세 번이나 숨이 넘어갔다.
이튿날부터 우 서방이 안방을 차지하고 가끔 문을 열고 큰기침을 하니 조무래기 왈패들이 얼씬도 못했다. 우 서방은 부러진 평상 다리도 고치고 수챗구멍도 치우고 밤이면 주모를 기절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여섯 달을 착한 기둥서방으로 보내더니 여섯 달이 지나자 저잣거리 건달생활이 그리웠던지 주막을 나가 쏘다니기 시작했다. 노름판에 매달려 열흘씩 집을 비우고 가뭄에 콩 나듯이 주막으로 와도 곤드레만드레 쓰러져 코를 골아, 부엌에서 뒷물하고 온 주모를 뚜껑 열리게 했다. 외상값 받아서 노름판으로 직행하는 일도 생겼다.
우 서방이 타지로 원정도박을 갔다가 보름 만에 주막으로 돌아올 때 새벽닭이 울었다. 안방 문을 열자 주모는 발가벗은 채 이불로 몸을 감쌌고, 어떤 놈이 옷을 옆구리에 찬 채 튀는 걸 우 서방이 낚아챘다. 불을 켜고 보니 약재상을 하는 부자 홍 첨지였다.
우 서방과 홍 첨지가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흥정을 시작했다. 홍 첨지가 백 냥부터 시작해 천냥까지 올렸으나 우 서방은 팔자를 고치겠다는 듯이 삼천 냥을 요구했다. 결국 세 사람은 사또 앞에 서게 됐다. 주모가 ‘친정아버지 보증빚 갚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기둥서방은 외상값을 받아 노름판에 간다’고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한 게 먹혀들었다. 사또의 판결은 이랬다.
“기둥서방의 본분을 망각한 우 서방은 홍 첨지의 멱살을 잡을 권한이 없다. 주모로부터 기둥서방 직책에서 해고됐으니 앞으로 주막 출입을 금한다. 그리고 홍 첨지는 주모에게 해웃값으로 천냥을 지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