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장바구니들고 아내를 쫓아 시장가는 것이 한때 일종의 즐거움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내에게 못한 일을 사죄도 하고 이웃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떡볶기도 사먹고 순대도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가지 않습니다. 아내의 한숨소리가 너무 커진 때문입니다. 올라도 너무 오른 생필품가격 때문입니다. 정말 5만원 한장 들고 시장가서 장바구니 채울 수가 없습니다. 갈 때마다 오른다는 아내의 푸념을 가까이에서 듣는 것도 고역입니다. 그래서 피해버립니다. 제가 아내의 홀쭉해진 장바구니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집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고공행진을 하는 식료품 가격을 보고는 다들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것은 이제 너무도 흔한 광경입니다.
지금 국민들 상당수가 힘든 나날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식량난과 자원난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유독 한국만 이렇게 식자재 가격이 오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말도 한결같습니다. 뭐할라고 비싸게 팔겠느냐는 말이지죠. 자기들도 본전치기를 해서는 먹고 살길이 없으니 조금 붙여 파는데 워낙 가지고 오는 값이 비싸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불편하고 힘들고 긴 한숨이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 사정입니다.
평소 몸이 좋지 않았던 지인이 있습니다. 병원가기를 싫어해서 수술 날짜를 잡지 못하다가 겨우겨우 병원에서 입원 그리고 수술 계획이 잡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 대 격돌로 인해 졸지에 수술 날짜가 기약이 없이 연기되어 버렸습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특히 어린 환자들의 경우는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구 탓인지를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양비론을 들먹이고 싶지도 않습니다.의사들은 이제 마지막 선택을 하고 있고 정부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한국의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듯 시퍼른 칼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당연히 알았을 정부와 의사들이 왜 제대로 대화와 의논을 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 나아가 분노가 끓어 오릅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상위계층을 차지하고 가장 특권층이라는 고위공무원들과 의사들이 지금 이렇게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도 예외없이 피곤하고 듣기 힘든 그런 뉴스가 가득찹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각자도생의 행렬이 끊이지 않습니다. 여야에 예외가 없습니다. 하다하다 이제는 특정 정당에서 중요 직책을 담당했던 인물이 탈당후 반대 성향을 지닌 당으로 그냥 옮겨버립니다. 공천탈락에 대한 분풀이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아니고,무소속 출마도 아니고, 그냥 그동안 그렇게 목이 아프게 비판했던 바로 그 당의 당복을 자신만만하게 입습니다. 그리고 묘한 미소도 짓습니다. 또 다른 인물은 탈당을 할 것이다라는 예측을 깨고 당에 남겠답니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당이 총선에서 패하면 당지도부 해체가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답니다. 그야말로 이삭줍기식이자 처세의 달인 자세입니다. 자신이 몸 담았고 자신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그렇게 개혁을 부르짖었던 그 당이 망가지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도처에 가득차 있는 모습입니다. 전 정권에서 최상위 자리를 차지한 그런 인물인데 말이죠. 이러니 집안이 잘 돌아갈 리가 있습니까. 그야말로 똘똘 뭉쳐 합심해야 하는 시점에 그냥 자기 영달을 위하고 몸 하나 간수하려 각자도생하는 정형을 너무나 처절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정치권의 각자도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였습니다. 민생을 도외시하는 정치권의 각자도생의 유전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때도 엄청난 각자도생이 발생했습니다. 왜군이 침략해 북으로 밀물처럼 밀려오자 당시 왕은 궁궐을 버리고 북으로 도망을 처버렸습니다. 왜군들은 밀려오는데 왕과 그 신하들은 모두 북으로 도망치고 홀로 남은 백성들은 그야말로 우와좌왕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부 화난 백성들은 궁궐을 불지르기도 했습니다. 하다하다 안되니 산속에서 수도하던 스님들이 무기를 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청나라군이 밀고 내려온 병자호란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왕은 한양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당시 한양에 남아 있던 백성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청나라 군사들은 조선백성들을 도륙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능한 왕과 더 무능한 신하들은 남한산성에 모여서 시대에 뒤떨어진 논란을 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백성들의 생활을 말이 아니였습니다.
한국전쟁때는 또 어떠했습니까. 당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서울을 사수하라고 방송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부산쪽으로 도망가버리지 않았습니까. 북한군들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한강 인도교를 폭파시켜버려 인도교위에 있던 수많은 남한 피난민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채 사망했습니다. 국가를 책임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그렇게 각자도생하려고 남으로 도망간 사이 서울에 남아 있던 국민들의 고통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요즘 한국의 정치권들은 말하다 막히면 온통 총선에 핑계를 댑니다. 총선이 뭡니까.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고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정치적 노력의 한 부분 아닙니까. 당연히 국민들의 문제 즉 민생처리가 총선때문에 밀린다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죠. 정치권 인사들이 지역구 공천을 받겠다고 이런 저런 작태를 벌일 때 국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아픈 데도 의사가 없어 치료도 못받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요즘 총선 무용론도 대두됩니다. 국민을 도외시하는 정치인들을 국회의원으로 뽑는 그런 총선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일테지요. 갈수록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높아만 갑니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탈당 그리고 공천탈락에 대한 거친 분노의 목소리가 나라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여의도 국회는 개점휴업중입니다. 의원들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무슨 민생관련 처리가 가능하겠습니까. 정치 주변에는 떨어진 낙엽만 처량하게 뒹굴고 있습니다. 그런 사이 힘없고 병든 이 나라 국민들의 한숨소리는 더욱 높아만 갑니다.
2024년 3월 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