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괘는 증산이 직접 만들어 도지와 도통을 숨겼다고 밝힌 상징물로, 드러내기보다는 감추고 물러나는 성격을 지닌 괘입니다. 둔괘 안에 들어 있는 상징들 역시 완성과 성취보다는 미완과 중도 소멸을 가리킵니다.
『1. 수운(水雲)의 거년 경신(庚申) 4월 초 5일은 음력이로되, 나의 금년 경신 4월 초 5일은 양력이니 음양합덕(陰陽合德)이며 태극도수(太極度數)가 분명하도다.』
수운 선생의 거년 경신(1860)년 4월 초 5일은 음력이고, 정산의 금년 경신(1920)년 4월 초 5일은 양력이라는 말입니다. 같은 경신년, 같은 날짜이나 하나는 음력이고 하나는 양력으로 대응되니, 이는 우연한 날짜의 중복이 아니라 음양이 서로 합하여 덕을 이루는 구조로 보아야 합니다. 정산은 이를 음양합덕이라 밝히며, 이 대응 속에 태극의 수(數)와 질서가 분명히 드러난다고 인식하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핵심은 정산이 수운 선생을 단순히 기념하거나 추앙한 것이 아니라, 그를 모든 연원의 출발점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음력의 수운과 양력의 자신을 겹쳐 놓은 것은 선천과 후천,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음을 드러내려는 의도적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수운은 시작의 자리”이고, 정산은 그 흐름이 현실 속에서 “이어진 자리”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산이 수운 선생의 행적과 도맥을 반복하여 짚어낸 것은 단순한 계승 의식이 아니라, 연원의 뿌리가 수운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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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수운 선생' 과 '정산' 의 관계를,....
< “수운은 시작의 자리”이고, 정산은 그 흐름이 현실 속에서 “이어진 자리”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산이 수운 선생의 행적과 도맥을 반복하여 짚어낸 것은 단순한 계승 의식이 아니라, 연원의 뿌리가 수운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럼 질문을 해야지...
질문: 아래 '정산' 께서 작성한 포유문에 의하면, 증산과 정산 사이에 '수운 선생' 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데, 글쓴이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저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걸까?
(아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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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戊辰 : 도기 20, 서기 1928)년 원조 치성 후에 포유문(布諭文)을 내리시니 이러하니라. 포유문 曰 人生處世에 有何所欲고 唯名唯榮이라, 曰名曰榮은 人所共欲而 求之難得은 是何故也오? 왈 인생처세 유하소욕 유명유영 , 왈명왈영 인소공욕이 구지난득 시하고야 都是無他라 未知捷徑이니 捷徑은 非他求也| 라, 도시무타 미지첩경 첩경 비타구야 吾之所求에 有無量至寶하니 至寶卽 吾之心靈也이라. 오지소구 유무량지보 지보즉 오지심령야 心靈通則 鬼神可與酬酌이요, 萬物可與具序로되, 심령통즉 귀신가여수작 . 만물가여구서 惟吾至寶之心靈을 無路可通하야 汨沒無形之中에 虛過一世러니 유오지보지심령 무로가통 골몰무형지중 허과일세 幸於此世有無量之大道하니 正吾之心氣하고 立吾之義理하며 求吾之心靈을 행어차세유무량지대도 정오지심기 입오지의리 구오지심령 任上帝之任意로다. 임상제지임의 洋洋上帝在上하시고 浩浩无極道主奉命하니 肅我道友嚴我道友야 양양상제재상 호호무극도주봉명 숙아도우 엄아도우 極誠極敬하고 極勇極烈하라. 극성극경 극용극렬 明明度數無私至公하사 引導乎無量極樂 五萬年淸華之世하시면 명명도수무사지공 인도호무량극락 오만년청화지세 難求之欲과 虛過一世之願을 至于斯而豈不解寃哉아? 난구지욕 허과일세지원 지우사이기불해원재 欽吾道友 勖哉勉哉어다. 흠오도우 욱재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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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글씨로 표시된 곳에서 <上帝=증산, 无極道主=정산> 이다...
첫댓글 https://www.youtube.com/shorts/De4BZ2Hq-kY
🙂😄🤔 글쓴이가 인용한 아랫 글은 정산께서 직접 한 말이죠.
『1. 수운(水雲)의 거년 경신(庚申) 4월 초 5일은 음력이로되, 나의 금년 경신 4월 초 5일은 양력이니 음양합덕(陰陽合德)이며 태극도수(太極度數)가 분명하도다.』
왜 정산께선 위처럼 말했을까요? 글 쓴이는 실제했던 말씀을 근거로 글을 논하고 있는데 ...
스핏님
벽초님
두분의 글 모두 사실에 입각했지만 서로 모순된 상태를 나타내는군요
글쓴이는 도주님의 '포유문' 을 보지 못하였거나, 보았어도 이미 마음이 딴 곳에 있었으므로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그러니, 저런 소설을 쓰고 있는 거지요....
수운도 도주님처럼 <천명과 신교> 가 주어진 사람이었지만, 天運(천운: 하늘의 운행으로 '7일래복' 이라고도 함) 에 응하지 못했던 것이고....도주님에게는 저 사건으로 인해 종지의 1번째 항목인 '음양합덕' 이 문득 生有 한 거지요...
(참고)
5. 당나귀야, 노당나귀야, 너의 꾀를 내가 안다. 너 아무리 그러한들 천운을 어길쏘냐 어미 잃은 어린 아고兒孤 유인하여 몰아가니 저이 운수 망쳐노니 한심하고 가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