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옆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특급 한옥(韓屋) 호텔'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를 짓겠다는 것은 한진그룹의 대표적인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대한항공은 2008년 2900억원을 들여 송현동 부지 3만6000여㎡를 사들인 뒤 7성급 한옥형 특급호텔, 다목적 공연장, 갤러리 등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 개발 계획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학교 인근 200m 안에 화장장·가스저장소·호텔 등을 지을 수 없도록 규정한 학교보건법에 발목이 잡혔다. 서울중부교육청은 부지 인근에 풍문여고·덕성여고 등이 있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2010년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이 나오자 2012년 '호텔과 여관을 구분하지 않고 최상위 특급 관광호텔까지 설치·영업을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과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
- 1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 전통문화 체험 공간인 K-익스피리언스를 조성한다고 밝힌 경복궁 옆 서울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장련성 객원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13년 8월 청와대 간담회에서 "특급관광호텔의 건립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문제의 해결을 직접 건의했다. 박 대통령이 이에 화답해 관광진흥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호텔 사업 가능성이 높아지는 듯했다. 정부는 유해 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은 학교 주변에 건설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마련한 뒤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필수 법안 가운데 하나로 꼽아 국회에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조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이른바 '항공기 회항' 사건을 일으키며 이 문제는 다시 논란거리가 됐다. 야당이 '재벌 특혜법'이라고 완강하게 반대했고, 건축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도 불허(不許) 방침을 밝혔다. 최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의원이 대한항공 측에 처남의 취업을 청탁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한진그룹은 사실상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을 겪고 있다.
결국 대한항공은 이날 호텔을 빼고 한국 전통문화 체험이 가능한 복합문화 허브 공간인 가칭 'K-익스피리언스(Experience)'를 만드는 방안을 발표했다. 'K-익스피리언스'는 지하 3층, 지상 4~5층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다. 지붕은 한국 전통 기와를 모티브로 삼고, 지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하이-라인 산책로'를 조성한다. 열린공간(여가·휴식), 모둠공간(복합 문화 체험), 전통공간(전통문화 체험), 상징공간(현대문화 체험) 등으로 구성되며 2017년까지 1단계 완공된다.
대형 공연장과 전시장에는 K팝 한류 공연 등 문화 행사가 계속되고, 인간문화재가 제품을 제작·판매하는 등 전통문화 상품을 위한 공간도 만들 계획이다. 인사동과 문화센터, 북촌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축하고 지하에는 대규모 주차장을 갖춰 접근성을 높인다. 경복궁·인사동·북촌 등 주변 지역과 연계해 문화 체험 관광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호텔 건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정부의 문화 융성 추진 계획에 대한항공이 동참하길 바라는 상황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호텔 건설을 포기했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지금 당장은 호텔을 지을 수 없지만 미래 가능성을 열어둔 포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