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나도 참 가슴 깊이 새기고 좋아하는 말이다. 내가 클릭수도 그리
보장되지 않는 축구 역사 칼럼을 종종 쓰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잊은 이들에게는 한국 축구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 한국 축구 역사를 들춰내려 한다. 하지만 이 문구를 지난 28일 열린 동아시안컵 일본과의 경기에서 붉은악마가 현수막으로
내건 순간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정서를 생각하면 반대 의견을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나는
붉은악마의 이 메시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붉은악마에서
지난 28일 열린 한일전에 내건 걸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역사 의식 걸개가 축구장에 걸려야 하는
이유는?
이날 경기에서 붉은악마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얼굴이 새겨진 커다란 초상화를 펼쳤고 이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구가 담긴 대형 걸개를 내걸었다. 대한축구협회와 주최 측에서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판단
하에 이 걸개 철수를 요구했고 한 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전반전이 끝난 뒤 이 걸개가 철수되자 붉은악마는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남은
45분 동안 응원을 멈췄다. 이때부터 잠실종합운동장에는 조직적으로 일본을 응원하는 원정팬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고 결국 한국은 일본에
1-2로 패했다. 한국으로서는 13년 만에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에서의 한일전 패배라는 치욕을 맛봤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우리나라 위인 초상화를 내거는 게 무슨 잘못이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는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 해보자. 정녕 이게 일본을 향한 우리의 외침이 아닌가. 이건 마치 어떤 논란을 일으켜 놓고 “주어가 없다”며 발을 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역사’라는 게 ‘일제 감정기’를 말하는 게 맞지 않나. 축구장에 반일 정신으로 항거했던 위인 초상화를
내걸고 갑자기 역사와 민족 이야기가 나올 이유는 없다. 정 한일전에 대한 역사 의식을 고취시키려 했다면 1998년 같은 장소에서 일본을 격파할
당시 황선홍의 발리슛 장면을 걸개로 내거는 게 맞는 일이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오해가 있는 것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축구장에 등장해서는 안
된다.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논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독도가 우리나라 땅인데 우리나라 사람이 그 말 한 게 무슨 잘못이냐”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결론 내려주는 단체가 아니다. 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건 이게 정치적인
메시지인지 아닌지일 뿐이다. 그저 이번 걸개에 대해서도 “아닌데? 우리는 일본한테 한 말이 아닌데?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는데?”라고
발을 뺄 수 없는 이유다. 이건 역사 수업 시간에 나올 말이지 축구장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나도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를 대단히 존경하고
단재 신채호 선생이 전했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한국인이지만 그렇다고 이번 문제에서까지 이 걸개를
옹호할 수는 없다. 축구장은 정치와 역사를 논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붉은악마가
후반전 응원을 멈춘 사이 일본 응원단은 마치 안방처럼 열띤 응원을 펼쳤다. (사진=연합뉴스)
전범기 등장의 온전한 비판 기회
놓쳤다
일본 관중 사이에서 전범기가 등장한 건 무척 화가 나는 일이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을
축구장에서 휘두르는 일본 관중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 더 나아가 대한축구협회가 제소해 강력한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범기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그저 우리나라 위인 초상화와 명언을 꺼내 들었는데 악독한 전범기를 일본이 꺼내 들었으니
일본이 훨씬 더 잘못했고 우리의 행동은 용납이 된다는 식의 논리는 잘못됐다. “우리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 뿐”이라는 이유가 축구장에서 통용된다면
아마 전세계 축구장은 모두 떼인 돈을 받으려는 걸개와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프러포즈, 회사의 부당한 회고 등 축구 외적인 걸 성토하는 장으로
변질될 것이다. 축구장 만큼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축구장에서 경기 도중 촛불시위도 허락이 될
기세다.
우리 스스로 일제 전범기에 대해 규탄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린 셈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한국과 일본은 경기장에 정치적인 색이
짙은 메시지를 ‘똑같이’ 내건 입장이 됐다. 지금 분위기는 더 무섭다. 악랄한 전범기에 맞서 붉은악마가 별 문제될 것 없는 위인 초상화와 명언을
내건 게 뭐 얼마나 큰 잘못이냐는 게 여론이다. 여기에 반기를 들면 매국노가 되고 친일파가 된다. 그래도 누군가는 여론을 떠나 반대의 입장을
내야 한다. 붉은악마가 정치적인 문구를 내걸지 않았더라면 일본 응원단의 전범기를 온전히 비판하고 국제 문제로 이끌어 갈 수도 있었지만 우리의
대응은 너무 잘못 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아주 훌륭하고 우리가 늘 새겨야 하는 말이지만 그 이야기를 왜 축구장에서
해야 하는 건가. 그저 평소에 새기면 된다.
더 아쉬운 건 이후 붉은악마의 대응이다. 붉은악마는 이 걸개가 철수된 뒤 후반 내내
응원 보이콧을 선언했다. 일본 응원석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나오는 동안 오히려 홈팀인 한국은 전혀 홈 이점을 안고 싸우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
위에 언급한 걸개가 전혀 문제가 없었고 누군가의 부당한 행동으로 걸개가 철수됐다고 하더라도 이건 추후에 거론할 문제다. 당장 여기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응원을 중단하는 건 붉은악마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난 일이다. 붉은악마는 설령 그게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붉은악마 중 개인이 응원 보이콧을 선언하는 것이야 말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조직적으로 응원을 주도하는 측에서 보이콧을 하는 건 다른 문제다.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고 대표팀 응원은 응원이다. 일본도 결국 전범기 흔드는 관중이 제지를 당했다.
붉은악마는
이렇게 축구만을 응원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붉은악마, 순수하게 축구만을
이야기해야
붉은악마의 응원 보이콧은 결국 애꿎게도 대한축구협회와 주최 측이 아니라 죄 없이 열심히 뛴 선수들을 향한 보이콧이
됐다. 정말 이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다면 경기가 끝난 뒤 공식적으로 유감을 나타내는 게 옳았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붉은악마는
후반전 내내 상대팀의 일방적인 응원을 안고 싸운 선수들을 볼모로 정치적인 싸움을 펼친 셈이다. 나는 붉은악마 구성원이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상관하지 않지만 적어도 대표팀 경기에서 골대 뒤에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때라면 축구 응원에만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붉은악마가 한국 축구에 기여한 바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순수하게 축구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며칠 전 K리그 서포터스가 붉은악마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붉은악마는 초심을 찾아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이 말씀이
적힌 걸개를 철수해 일부 여론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의 행동에 문제를 삼으려면 이 걸개 철수가 아니라 전범기에 대한
앞으로의 대응을 지적해야 한다. 이번 경기에서도 어김 없이 내걸린 전범기를 어떤 식으로 앞으로의 한일전에서 막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여론도
그쪽으로 압박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가 붉은악마 걸개 철수를 지시한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이번 한일전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전범기를 흔든 일본 관중을 제지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문제는 국제적으로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할 일은 앞으로 더 확실하게
이를 차단하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을 앞세워 붉은악마의 행동까지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붉은악마가 이런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한다면
전범기도 막을 수가 없다.
이종격투기에서 정찬성의 행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찬성은 이종격투기 챔피언 조르쥬 생피에르(캐나다)가
일제 전범기가 새겨진 도복을 입자 이에 대해 영문으로 공개 항의했다. 정찬성은 생피에르에게 “일제 전범기는 아시아의 하켄크로이츠”라며 “당시
일본은 나치와 다르지 않다”고 전했고 생피에르 역시 “불쾌했던 분들께 사과하고 싶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면서 사과했다. 정찬성의 말을 전해
들은 도복 제작사 측에서도 “해당 도복을 판매하지 않겠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쓸 것”이라고 밝혔다. 누군가
“일본이 전범기를 내걸었는데 붉은악마가 그저 옳은 정치적 메시지를 내건 게 무슨 잘못이냐”고 묻는다면 정찬성의 행동을 기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똑같이 정치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이렇게 얼마든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붉은악마는 정치 집단이
아니다
흔히 축구는 전쟁이라고 한다. 하지만 축구공을 앞세워 하는 치열한 전투일 뿐 총과 칼이 등장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축구장에서 축구가 아닌 것들이 하나둘 용납되다보면 언젠가는 총과 칼도 용인되는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아무리 축구가 전쟁의 축소판이어도
축구는 축구로 바라봐야 한다. 앞으로도 잘 따져봐야 한다. 붉은악마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단체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단체인가. 붉은악마가 싸워야 했던 대상은 일본 선수들과 응원단이지 걸개 철수를 지시한 대한축구협회와 주최 측이 아니다. 이 문제를 애국심과 연결
짓고 그저 반일 감정을 앞세워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붉은악마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단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
축구 그리 열정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중요 이슈 터질때마다 보면 김현회가 쓰는 칼럼은 딱 내 입맛을 맞춰주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음.
첫댓글 걍 경기 끝나고 맞다이 뜹시다.! 요시!
덜떨어지는 새끼들은 왜 하지말라는지 이해를 못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스포츠에 색채를 입히지말고 우리팀이겨라 우리팀잘해라라는 순수성을 가지고 가자는게 뭔지 이해를 못하나?
하여튼 국뽕 쳐맞은 저새끼들 너무 생각하는게 일차원적이야 왜 일본한테 빌미를 제공해주냐고
그렇게해놓곤 허허 난 애국자야! 생각하는거 보면
꼴보기싫다 왜 축구경기 보는데 정치역사 얘기를 들먹여서 사람 정색하게 만드냐 붉은악마는 무슨 국뽕악마새끼들 그러고 후반전은 응원안합니다!!해서 결과는 짐.. 으유
냄비&국뽕
내가 예전에 저 문구 걸개 축구장에 왜 거는지 이해못하겠다고 하니까 훌리 새끼들 광분해서 개지랄하던 기억나네ㅋㅋㅋ 그 새끼들 다 어디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