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정량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무엇이든 알맞은 선이 있고, 그 선을
넘으면 탈이 난다. 우리는 그것을 적재정량이라 부른다. 안전과 효율을 위해 정해진 일정량,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다. 화물차에도 정해져 있고 선박에도 국제만재흘수선이라 하여 정해져 있다.
사람의 위도 하나의 용기와 같다. 하루 세 끼, 정해진 시간에 위의 70퍼센트 정도만 채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한두 번 과식하는 것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것이 습관이 되면 결국 위가 견디지 못한다. 넘침은 반드시 부담으로
돌아온다.
컴퓨터도 다르지 않다. 욕심이 문제였다. 노트북의 저장 용량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데이터를 가득 채워 넣었다.
언젠가는 정리해야지 하면서 미뤄두던 끝에 결국 탈이 났다. 늘 쓰던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이 깨져버린 것이다.
워드 프로그램이 있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몸에 밴 익숙함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컴퓨터 수리점을
찾아가 손을 봤고, 그 과정에서 노트북에 있던 데이터를 데스크톱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자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15년 전,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 탐사를 떠났을 때의 항해일지였다. 잊고 있던 시간들이 파일 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찾고 있는 자료가 꼭 컴퓨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서재는 책뿐 아니라 각종 자료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출입문에서 책상으로 이어지는 통로만 간신히 열려 있을 뿐이다. 남이 보면 숨이 막힌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금세 찾던 논문과 자료들이 이제는 기억력
의 쇠퇴 탓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공간은 짐으로 가득 차 있어 몸을 움직이기도 어렵다. 결국 하나를 찾기
위해 여러 물건을 밖으로 들어내야 한다.
2013년 북극항로 시범운항 일지도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노트북에 바로 기록하지 않고 A4용지에
손으로 써서 봉투에 넣어 보관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진들은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노트북
과 데스크톱에 남아 있다. 다행히 손으로 쓴 항해일지도 디카로 촬영해 두었기에 바로 출력도 가능하다. 요즘은 챗GPT
의 도움을 받으면 워드 파일로 옮기는 일도 어렵지 않다. 인공지능의 편리함이 어느새 우리 삶 가까이에 와 있음을 실감
한다.
인생은 흔히 마라톤에 비유된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출발선에서부터 전력을 다해 달려서는 안 된다. 호흡을 조절하고,
힘을 비축하며, 자신의 속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넘치지 않게, 그러나 멈추지 않게. 적재정량을 지키며 끝까지 가는
것, 그것이 결국 오래 버티는 지혜일 것이다.
삶도, 위도, 컴퓨터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덜어낼 줄 아는 용기, 비워둘 줄 아는 여유.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나
에게 가장 필요한 적정량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