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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주
어느 나라든 주류(main stream) 집단이 존재한다. 흔히 ‘보수 세력’으로 불린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후 반공보수가 우리 사회의 주류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좌우 동거 체제가 되면서 NL·PD가 좌파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대한민국 좌파는 남북 분단 때문에 구조적으로 친북좌파로 가게 돼 있다. 이승만 대 김일성의 대결은 곧 자유민주주의 대 민족공산주의 간 대결이다. 이 구조가 본질적으로 변한 건 없다.
87년 민주화 이후 40년 간 우리 사회에 두 가지 흐름이 뚜렷했다. 첫 번째는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 가는 흐름이다. 사회 각 영역에서 민주화가 진행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두 번째는 질서(order)에서 무질서(disorder)로 진행된 흐름이다. 자유·인권·민주주의·법치·시장의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다. 이 질서가 정치·경제·외교안보·대북정책·언론·교육·종교·노동 등 전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이 두 가지 흐름은 마치 DNA의 나선형 구조처럼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해왔다. 이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기본 가치들이 파괴되면서 광장의 무질서가 법과 질서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김대업 병풍 사기·반미 촛불·광우병 난동·천안함·세월호·박근혜 대통령 탄핵·문재인 정권의 각종 헌법 위반·민노총 불법·국정원 대공 수사권 폐기 등등은 민주화와 전혀 상관없는 법치 파괴와 ‘무질서’의 각도에서 봐야 그 본질이 보인다. 윤석열 정부 이후 거야의 검수완박 등도 ‘입법 독재’라기보다 기존 질서를 와해하려는 ‘입법 난동’으로 보는 것이 본질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4·10 총선의 결과는 87 민주화 이후 질서에서 무질서로의 진행에 확정적 마침표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87 체제가 여러 우여곡절과 변곡점을 거쳐 ‘무질서의 승리’로 확정된 사건이 4·10 총선이다. 유권자들이 각종 현재진행형 범법자들을 ‘선거’라는 민주주의 합법 절차에 따라 헌법기구(국회의원)로 승인해준 사건이 4·10 총선이다. 범법자뿐 아니라 반윤리적 인간들과 반대한민국 세력까지 포함돼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회 구성의 성격을 좌-우 또는 이른바 보수-진보의 관점에서 봐왔다. 하지만 22대 국회는 질서냐, 무질서냐의 각도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이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또 한편, 반공보수는 물론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중시하는 세력이 더 이상 한국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 소수 세력(minority)으로 전락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4·10 총선이다. 향후 우리 사회가 각종 포퓰리즘 등 여러 형태의 무질서로 빠져들 수 있는 정치적 인프라가 마련됐다는 뜻이다. 아주 나쁜 전망을 상정한다면 한국 사회가 남미(南美)형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자유보수 세력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530만 표 차이로 승리한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근본 오류는 철학의 부재, 사상의 빈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상과 이념을 떠나 민생을 챙기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적·사상적 수준이 이 정도였으니 할 말이 없다. "올바른 사상과 이념으로 민생을 챙기겠다"고 해도 시원찮은데,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중도 실용’으로 북악산에서 ‘아침이슬’ 부르다 친·종북 촛불세력에 무릎을 꿇었다. 이 여파가 끝내 박근혜 탄핵으로, 문재인·이재명 등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상·이념에서 상대에게 밀리면 정치·경제·언론·교육·노동·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밀리게 된다. 이는 불변의 사회적 진리다.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승자가 된 이재명·조국은 자신들의 사법 리스크를 타개하기 위해 윤석열 탄핵을 추진할 것이다. 그 수순은 채 상병 특검→김건희 여사 특검→윤석열 대통령 탄핵 순으로 보인다. 채상병 특검으로 윤 정부의 법률적·정치적 흠집을 낸 뒤, 김건희 여사 특검으로 격렬한 도덕적 수치심을 유발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중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먼저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와 법치는 결코 정치적 타협과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국민 앞에 천명해야 한다. 대통령 취임식 때 했던 각오를 뼛속 깊이 다시 새기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국민과 함께 승리하겠다고 선언한 후 뒤를 돌아보지 말고 그 길로 가야 한다. 정치적 우회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겠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법치와 질서에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살고, 윤 대통령이 살고, 김건희 여사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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