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는 숫자가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 있다. ‘텐배거(Ten Bagger)’. 투자금이 열 배로 불어나는 기적 같은
종목을 가리키는 이 말은, 원래 야구에서 한 타자가 단숨에 열 개의 베이스를 훔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말
로 하면 ‘10배 장사’쯤 되겠다. 이 표현을 대중화한 이는 월가의 전설, 피터 린치였다. 그는 시장을 전쟁터가 아니
라 관찰의 숲으로 보았고, 그 숲 어딘가에는 열 배로 자라는 나무가 반드시 숨어 있다고 믿었다.
지난해 새 정부 출범 이후 불어닥친 투자 열풍은 그 믿음에 불을 붙였다. 코스피 지수는 75% 넘게 치솟았고, 코스
닥 역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이 열기 속에서 원익홀딩스, 씨어스테크놀로지, 로보티즈라는 이름 석 자는
당당히 ‘텐배거’ 반열에 올랐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로봇 산업의 미래라는 기대가 주가를 밀어 올렸다. 2024년만
잠시 숨을 골랐을 뿐, 2020년 이후 해마다 한두 개의 텐배거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시장이 여전히 꿈을 생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 다음이다. 열 배로 뛴 주가는 다시 열 배로 떨어질 수 있다. 하늘을 날았던 기억이 클수록
추락은 더 아프다. 코로나19 치료제 열풍 속에 신풍제약은 7천 원대에서 12만 원을 넘어섰지만, 시간이 흐르자 만
원대 초반으로 내려앉았다. 리튬이라는 이름만으로 시장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하이드로리튬 역시 2만 원대의 고공
비행 끝에 다시 땅으로 돌아왔다. 텐배거의 신화 뒤에는 언제나 이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새처럼 날고 싶어 한다. 그러나 패러글라이딩은 평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바람이 솟아오르는 절벽
끝까지 스스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종목 사이에서 진짜 먹잇감을 가려내려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매처럼 날카로운 눈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새로 시작된 병오년도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하늘을 올려다
보며, 또 한 번의 텐배거를 꿈꿔본다. 다만 이번에는 날아오르는 순간만이 아니라, 착륙할 자리까지 함께 그려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