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해 인사라도 나누자는 핑계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릴 적 한 동네에서 흙먼지 묻혀 가며 자라던
친구였다. 촌수로 따지면 할머니 남동생의 아들이니 아재뻘이기도 하고, 또래라면 또래이기도 한 묘한 사이. 우리
는 그런 계산 따위는 잊은 채 늘 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을 기점으로 각자의 삶은 갈라졌고, 이후로
그는 내 기억 속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작년에 한 번 우연히 만났을 때, 나는 그의 근황을 처음 들었다. 예전에 군부대가 있던 자리에 시민공원이 들어섰는데,
그는 낮에는 그곳에서 공원관리원으로 일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모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성명철학을 가르친다고
했다. 강의를 듣는 이들은 주로 철학관이나 작명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공원을 쓸고 나무를 돌보는 손으로,
사람의 이름과 운명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납득이 갔다.
그가 말하는 성명철학은 우리가 흔히 아는 ‘철학’이나 ‘과학’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름이 사람의 운명과
성격, 건강과 재물, 대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오래된 믿음 위에 서 있다. 동양의 명리사상과 음양오행, 그리고
한자 문화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작명 체계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가 설명한 성명철학의 핵심 전제는 세 가지였다. 첫째, 이름에도 기(氣)가 있다는 것. 글자 하나, 소리 하나, 획수 하나
하나에 에너지가 깃들어 있으며, 그 에너지가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둘째, 이름은 타고난 사주를
보완한다는 점이다. 태어난 해와 달, 날과 시로 정해진 사주에는 누구나 부족한 오행이 있고, 이름을 통해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다고 본다. 셋째, 한자는 뜻만 좋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획수와 오행, 음양의 조화가 맞지 않으면 오히려
흉하다고 판단한다.
작명은 먼저 사주를 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아이의 출생년월일시를 바탕으로 오행의 강약을 따진다. 예를 들어 불의 기운이
약하면 화(火)의 성질을 가진 글자를 쓰고, 금(金)이 지나치게 강하면 그것을 누를 수 있는 글자를 고른다. 이름은 그렇게
사주의 빈틈을 메우는 도구가 된다.
그 다음은 수리오행이다. 이름을 구성하는 한자의 획수를 계산해 길흉을 따진다. 일반적으로 홀수는 길하고 짝수는 흉하다고
해석한다. 여기에 발음오행도 더해진다. 이름을 불렀을 때 소리가 부드러운지, 강한지, 서로 충돌하지는 않는지를 본다.
마지막으로 한자의 의미와 상징성까지 고려한다. ‘용(龍)’이나 ‘왕(王)’ 같은 글자는 기운이 너무 강해 오히려 삶의 짐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는 사람들이 작명료가 왜 그리 비싸냐고 묻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답한단다. 이름은 평생을 함께 가는 것이고,
사람을 대신해 불리고 기록되는 또 하나의 자신이다. 수천, 수만 개의 한자 가운데서 사주의 오행과 수리, 발음, 의미를 모두 만족
하는 글자를 찾아 조합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문득 내 이름을 떠올렸다. 내 이름은 흔히 철학관에서 지은 이름과는 다르다. 부모님이 작명소를 찾은
것도 아니었다. 태어났을 때 시주를 받으러 내려오신 스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들었다. 어떤 원리로, 어떤 마음으로 지어졌는
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이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기쁘거나 부끄러운 순간마다 그 이름이 나를 대신해 불려
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름이 정말 운명을 좌우하는지, 기라는 것이 실제로 작용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될 때, 누군가
가 그의 삶을 오래 생각하며 이름을 짓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름은 이미 의미를 가진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타인의 바람
과 기대, 그리고 시대의 믿음이 겹겹이 쌓인 작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공원을 쓸며 하루를 시작하고, 밤에는 이름과 운명을 강의하는 그 친구의 삶처럼, 이름 또한 현실과 믿음의 경계 어딘가에 서 있다.
우리는 그 경계를 완전히 증명할 수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다. 다만 각자의 이름을 안고 살아가며,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
를 보낼 뿐이다. 어쩌면 이름의 진짜 힘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