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1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이 새벽, 종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오직 주의 말씀의 빛을 비춰 쪼개시옵소서.
나의 생각은 항상 죄지을 생각과 땅의 것에 매몰되어 정욕에 치우쳐 있사오니 주의 공의로 판단하시어 주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나를 고치사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이 하루도 새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주의 말씀의 뜻을 수용합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이 거기에 들어가지 않도록 성령께서 날 장악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으로 조명하여 주소서.
이 말씀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복종하는 주의 종이 되길 원합니다.
주의 보혈로 날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삼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눅 3:1-6
제목 : 다시 오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이나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나의 묵상
누가는 이사야 40:3절 말씀을 인용하여 세례 요한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한다.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사야 40장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더러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고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는 말씀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그들과 함께 돌아오실 이스라엘의 참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이다.
옛날 군대 시절, 사단장이나 군단장이 부대에 올 계획이 있으면, 병사들이 하루 전날 지휘관이 차를 타고 들어오는 그 길을 미리 평탄작업을 하였었다.
길에 있는 돌멩이를 치우고, 높은 곳은 깎아내고, 움푹 패인 곳은 메꾸는 식으로 길을 고루고루 평탄하게 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유다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실 때 그 길을 평탄하게 하는 일이 선두에 선 자가 할 일이었다.
이 말씀을 인용하여 누가는 세례 요한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을 예비하는 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미리 예비하는 것은 단순히 길을 곧게 하고 평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길, 영적인 길을 곧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복음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울퉁불퉁 어지럽혀져 있는 그 마음의 길, 영적인 길을 다듬도록 강한 어조로 평탄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의 구원을 볼 수 있는 첩경인 것이다.
(5-6)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7절 이하에 보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한다.
그런데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3:7절 이하에 보면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도록 하고 세례를 베풀지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 세례받으러 나오는 이들을 구경 하러 나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퍼붓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받지 못하는 그들의 교만을 깨부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저 회개는 단순히 나의 도덕적 윤리적 육신적 죄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회개는 뉘우침이라 할 수 있으며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짜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갈 때 그 말씀에 근거하여 회개할 수 있다.
주의 말씀 곧 복음에는 항상 성령께서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마음의 생각을 판단하고 쪼개는 능력이 있다.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따라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가는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함께 동행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왕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하게 해야 할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만 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자복하고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제는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고 평탄하게 하는 일을 세례 요한이 담당하였다.
그래서 주님을 만날 당시 백성들의 마음을 먼저 정결하게 하는 것으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외치는 자의 소리로써 세례 요한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오늘 이 시대의 외치는 자의 소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이 시대는 말세지말이라 하여 말세 중에서도 말세이다.
이 말세는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며 기다리는 때이다.
따라서 외치는 자의 소리된 자들은 오늘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며 그 길을 평탄케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외치는 자의 소리는 다름 아니라 바로 나이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풀이나 풀의 꽃과 같이 금방 시들고 떨어져 없어져 버릴 세상의 영광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복음 앞에 서서 나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것이 곧 다시 오실 주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하는 것이다.
산봉우리와 같이 우뚝 솟은 나의 교만, 내 뜻대로 살아가려는 탐욕의 봉우리들을 다 꺾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음흉한 골짜기와 같은 정욕의 구덩이나 함정을 파놓고 남들의 것을 빼앗으려는 욕심의 함정을 메워야 한다.
그것은 십자가 앞에서 나 자신을 쳐 복종시키고 오직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죄에 얽매인 자가 되지 않도록 날마다 순간마다 죄에 대하여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이사야 선지자는 이처럼 왕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한 자는 그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그 마음을 들의 풀이나 풀의 꽃과 같이 금방 시들고 떨어질 이 세상에 두지 말고 영원한 주의 말씀에 둘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벧전 1:23-2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죄를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고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거룩한 불구자가 된 사람을 가리켜 거듭난 자라 한다.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 자라는 뜻으로 아들의 생명을 얻은 것을 의미한다.
아들의 생명은 세상의 육적이고 정욕적인 풀이나 그 영광인 꽃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으로만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이 복음인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나의 양식으로 삼아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이 나의 양식이 될 때, 그곳에 아들의 생명이 날마다 살아 숨쉬게 된다.
나는 나의 마음을 알자주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마음이 아프기도 하며, 나를 오해하는 자들로 인하여 몹시 괴롭기도 했었다.
그러나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이 말씀 앞에서 내 마음이 무너진다.
그것이 바로 다시 오실 주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하는 자의 모습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복음을 알기까지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가슴을 후벼 파면서 아파했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나의 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내가 할 일은 그저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일과 그와 함께 오는 어떠한 고난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 속에 나의 의, 자기주장의지가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나를 지배하였던 것이다.
용서.....
용서.....
용서.....
주님이 날 용서 하셨듯이, 나도 나를 용서하고, 또한 사람들을 용납하며, 무엇보다 주님을 용납하여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살 길이요, 우리 모두가 살 길이며, 또한 나를 용서해 주신 주님의 뜻이 살아나는 길이다.
내 마음에 평강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 홀로 당하는 고난이라고 자기 연민에 빠져 괴로워했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그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밴댕이 속과 같이 좁디좁은 그런 자가 아니라, 주의 말씀을 양식으로 얻어먹는 자로써 주의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원수까지도 사랑하셔서 당신의 생명을 주신 주님을 믿는다는 내가 어찌하여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힘들어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사 다시 오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정결케 하소서.
내 안에 주의 성품이 나타나는 연단의 모습이 있게 하시어 오직 주님만 드러나는 주의 종 되게 하소서.
나의 심령이 곧 생명의 거주지가 되어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하시고 어떤 자라도 넉넉히 품고 수용할 수 있는 평탄한 길이 되게 하소서.
내 말을 하고 주의 말씀으로 이를 확증시키고자 하는 말씀 도둑이 되지 않도록 오늘도 나를 쳐서 주의 말씀의 도구로 사용하소서.
주의 평강과 은혜가 나를 다스리게 하소서.
오직 주의 은혜를 구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