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인간학
최윤환
1.
카페 회원이 안 보인다, 정리했다는 등의 글이 올랐고, 네티즌의 댓글도 올랐다.
영문을 모르는 나로서는 고개를 가우뚱한다.
누구인데? 왜? 어떤 원인으로? 등의 질문이 난다.
무슨 일인데?
궁금증만 더 일어난다.
불투명하게, 일부러 에둘러서 보도하는 요즘의 뉴스를 보는 것 같다.
예컨대 사람 성씨를 A씨(55), A모씨(55), B씨(55,여) 등 영어 알파벳으로 나가고, 어쩌다가 김모씨(55) 이렇게 성씨가 나오기도 한다.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사고 사건인지도 모르게 하고...
몇해 전, 메르스 질병으로 전국을 놀라게 했는데도 초기에는 '삼성병원' 이름을 정말로 야비하게 감췄다.
돈 많은 병원이라서 그렇겠지만 뻔히 알 수 있는데도 언론매체에서는 숨기려고 급급한 사례도 있었다.
6하원칙이 없는 보도라는 인식이...
2.
2018. 7. 31. 화요일.
오늘은 무척이나 더운데도 오후에 서울 강동구로 나갔다.
전철칸이 시원했다. 후덥지근한 방구석보다는 지하철을 타고서 아무 데나 장거리로 나갔다가 귀가하는 것도 피서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달이 문학지를 발간하는 문학사무실에 들렀더니 마침 임 회장이 있기에 독대하면서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글을 매우 빠르게 속독하므로 시는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수필만 즐겨한다고 말했다
詩에서는 6하원칙이 없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가 있어야 하는데 시에서는 이게 없다.
":요즘에는 세상이 하도 복잡하니까 이 6하원칙(六何原則)도 부족해서 8하(八何), 9하(九何)까지도 늘어나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부족하기에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했다.
임 회장은 자기도 그렇다면서 수필학에 대해서 언급했다.
"수필은 인각학이어야 한다, 수필에는 인간 사이에 어떤 정(情)이 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수필 인각학' 용어를 누가 맨처음 썼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북 출신 강범우 교수의 '수필 인각학' 수필론에서 이 용어를 보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 이북에서 남하하였고, 서울 모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노년에는 충남 보령시 소재 보령호 근처로 내려가 사시면서 잊혀지고 있었다.
'수필 인간학' 이 용어로도 정을 느낀다.
1950년대, 60년대 산골마을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했고, 더러는 덜 가난했으나 빈부의 차이가 적어서 거기가 거기였다. 가난한 사람들한테 쌀말이나 보태주고, 설, 정월 대보름, 추석, 시향, 회갑잔치, 혼인 잔칫날, 초상(初喪)에는 마을사람 모두가 와서 시끌벅적거리며 일을 거들었으며, 먹을 것을 넉넉히 장만해서 나눠 먹었다.
내가 살았던 대전시 은행동 중교다리 부근의 도시민도 얼추 그랬다. 1960년대의 도시. 이북 피난민도 많았고, 허름한 루핑집(종이에 타르 유류를 바른 지붕)에서 살았고, 구루마(달구지)로 장작을 팔고, 똥 퍼 구루마도 있었던 당시의 도시 빈민가들한테도 나름대로의 정이 있었다.
내가 본 시골과 도시의 빈민층에는 어떤 인간의 정이 있었다.
문학에는 시, 소설, 평론, 수필, 희곡 등의 여러 갈래가 있다.
이 가운데 수필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을 바탕으로 쓴다. 생활에서 발효된 경험(체험 등)이 근간이기에 어느 정도껏 나이가 들어야 한다.
나는 50대로 보았고, 문학회장은 60대로 보았다. 나는 50대가 가장 필력이 완성하다고 보았고, 회장은 60대의 완숙으로 보았다.
내 50대에는 아직은 다리가 성성해서 도보여행하면서 보고 듣는 게 많았고, 또 직장을 떠나야 할 시기가 점차로 다가온다는 아쉬움으로 나를 되돌아보던 시기였다. 아직은 덜 발효된 힘으로 보았다.
임 회장은 잘 발효되고 숙성한 포도주를 연상하려면 60대라고 보았다. 임 회장은 조약돌을 예로 들었다. 젊은날의 돌은 깨뜰어진 지가 얼마 안 되었기에 돌끝이 날카로워서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찌르며, 자기도 다친다. 돌이 많이 부딛치다 보면 그 날카로운 모서리가 닳고 닳아서 이제는 둥글게 매끄럽게 다듬어진다고 했다. 수필도 이처럼 날카로움이 떨어져 나가고 둥글고 부드럽고 매끄러운 것만 남은 조약돌이어야 한다. 이런 경지에 오르려면 수필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나이는 60대라고 보았다. 아직은 철이 덜 들고,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수필을 쓰지만 그런 수필에는 글맛이 없다라고 보았다.
내 고향은 서해 갯바다와 가까운 곳에 있다.
시골집에서 걸으면 충남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해수욕장, 남포면 용머리해수욕장, 한나절 걸으면 남쪽으로는 서천군 춘장대와 마량포구, 북쪽으로는 대천해수욕장에 다녀올 수 있다. 갯바다를 따라 남하하거나 북상하면 정말로 많은 갯돌을 본다. 닳고 닳아버린 조약돌. 심지어는 그 날카롭던 유리조각도 닳고 닳아서 청보석인 양 반짝거렸다.
갯바다 모래장불을 걸으면 앞으로는 조약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겠다. 하나의 수필을 보는 것처럼.
수십 년이 지난 2018년인 지금 세상은 정말로 부자로 잘 사는데도 인정(人情)은 거의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이 기계와 숫자로 계산되고, 시간도 하루나 時間의 단위가 아닌 분(分)단위로 세분화되었다.
2019년 최저임금 상승률과 관련하여 남을 고용하는 소상공인, 중소기업체 등에서는 주 52시간 규정을 지켜야 하는데 이게 큰 손해를 끼친다는 듯이 집단항의가 일주일 넘게 분분한다.
사장님들이 임금비 때문에 장사를 못 하겠다고 반발하면 사장님이 아닌 노동자의 처지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며칠 전 강원도 화천군 호박 재배농가에는 날씨가 무더워서, 과잉생산으로 가격폭락했다며 수확한 애호박을 대형 농기계로 깔아뭉개는 사진이 인터넷에 떴다.
오늘은 강원도 횡성군 오이 재배농가에서도 과잉생산으로 가격폭락이며 수확한 오이를 산지에 쏟아내버리는 사진이 떴다.
애호박, 오이를 폐기처분하는 뉴스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하면서 더러는 이들의 소행을 달갑게 보지 않았다. 고아원, 양로원 등에 무료로 나눠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담긴 댓글이 많이도 떴다.
단일작물 재배하는 농가는 오로지 돈으로만 계산했을까? 인간적인 배려와 정은 없었을까 싶다. 그거 가난한 이웃한테 나눠주었더라면...
서해안에 주소지를 두고, 농업경영인으로 등록하여 농사를 짓는 나.
농사꾼도 생활인이기에 돈을 벌어야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이치쯤은 나도 안다.
그런데 농작물 작황이 좋으면 오히려 가격폭락이라면서 애써 키운 농작물을 중장비로 깔아뭉개야 하는가?
무, 배추, 상추 등의 푸성귀는 작황이 나빠서 가격폭등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도시소비자가 가계비 부담이 늘어나고...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아니다.
삶이 있는 글.
이 카페, '아름다운 5060'에도 '삶의 이야기' 방이 있어서 정말로 많은 회원들이 글과 사진을 올리고, 댓글도 엄청나게 달린다, 사이버 공간답게 각자의 생각들도 함께 동조하기고 하고, 때로는 반발하기도 한다.
글 올리는 사람이나 댓글 다는 사람이나 지나치지 않아야 하는데도 때로는 날카롭게 찌르며, 부딪치기도 한다.
3.
귀가할 때다.
지하철에 새까만 외국여자 두 명이 있다. 젖가슴, 엉덩이, 허벅지의 보륨이 엄청나게 크고, 동양인· 한국인의 체형과는 완전히 달랐다.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근육질이기에 도대체 어느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지?
인류의 조상이 동아프리카에서 세계로 전파했다는 인류학이 숫제 잘못이다, 엉터리이다 할 만큼 우리네 체형과는 판이했다.
내가 잠실에서 내려야 하기에 자리에 일어선 뒤 그 외국인한테 한국말로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지요?"
나를 동그랗게 쳐다보기에 이번에는 영어로 "너의 나라는?" 물었다.
"네델란드"라고 두 여자가 말했다.
네델란드인은 북유럽인이라서 피부가 매우 깨끗하고 체형, 체모가 완전히 서구인인데 왜 이들은?
'어디에서 내리려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잠실'이란다.
내가 그 두 여자와 함께 내렸다.
동대문역사역에서 충무로에 간다는 메모지를 보고는 잠실에서 동대문쪽으로 가는 코스를 안내했다.
전철역사 안에 있는 안내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몇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야 할지를 원투쓰리... 하면서 천천히 손으로 집어주었다.
내가 '한국말 알아요?' 물었더니만 하얀 이를 보이면서 '쪼금' 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표시를 했다.
그들이 전철을 올라타기 직전까지 자세히도 어디에서 전철을 교환하는지, 또 충무로, 남대문 등의 안내 지도판으로 설명했다.
지하철에 올라타기 직전에 그들은 하얀 이를 내보이면서 진정으로 '고맙습니다' 한국말을 남겼다.
새까만 피부색깔과 하얀 이가 대조적이었다.
영어회화를 그만 둔 지가 벌써 이십 년도 더 넘었다.
보직이 바뀐 뒤로는 외국으로 출장 나가지도 않았고, 영어 그 자체도 포기한 채 오로지 우리 글쓰기에 관한 기관에 다니면서 글쓰기 공부에만 치중했다.
체질에 배지 않은 영어회화는 쉽게, 절벽으로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쉰 살까지 솰라솰라 했는데도 입이 꽉 닫힐 줄이야...
큰사위는 외국인. 지금은 외국으로 출장나갔고, 큰딸은 잠실에 와 있고...
내가 큰사위와는 한국말로 대화를 한 탓일 게다.
4.
서해안에 주소지를 두고, 농업경영인으로 등록하여 농사를 짓는 나.
농사꾼도 생활인이기에 돈을 벌어야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이치쯤은 나도 안다.
그런데 농작물 작황이 좋으면 오히려 가격폭락이라면서 애써 키운 농작물을 중장비로 깔아뭉개야 하는가?
그런데 무, 배추, 상추 등의 푸성귀는 작황이 나빠서 가격폭등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도시소비자가 가계비 부담이 늘어나고...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아니다.
삶이 있는 글.
이 카페, '아름다운 5060'에도 '삶의 이야기' 방이 있어서 정말로 많은 회원들이 글과 사진을 올리고, 댓글도 엄청나게 달린다, 사이버 공간답게 각자의 생각들도 함께 동조하기고 하고, 때로는 반발하기도 한다.
글 올리는 사람이나 댓글 다는 사람이나 지나치지 않어야 하는데도 때로는 날카롭게 찌르며, 부딪치기도 한다.
2018.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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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 4 7. 일요일.
이런 글은 생활일기이다.
그냥 컴퓨터 자판기를 눌러서 다다닥 하면서 글 쓰면 그뿐이다.
우연히 카페에서 발견했기에 여기에 올린다.
이런 일기라도 남았기에 지난 시간을 더듬을 수 있다.
오늘 오후에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 서호쉼터로 나갔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특히나 외국인도 숱하게 와서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즐기고 있다.
밥 먹자.
나중에...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민주주의 개념이 무엇일까요?
와글와글거리는 것이지요.
독재주의 개념은 획일주의, 통일주의, 전체주의 등으로 불리겠지요. 하나로만 이뤄진 개념이겠지요.
모든 물건가격은 마냥 비싸면 좋은가요?
그럼 반댈로 마냥 싸면 나쁠까요?
셍신자, 유통자, 소비자 사이에 조율되어야겠지요.
시골에서 농사를 운영했던 제 시각에는 많은 생각이 납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의 차이이겠지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은 방향키, 무게 중심의 변화, 급격한 변화 등의 요인을 두루 살펴서, 좌우로, 앞뒤로 조율해서 항해한다.
좌우로 기우뚱 앞뒤로 흔들거리면서 물결의 방향, 바람의 세기 등을 감안한다. 오로지 외골수는 아니다.
모두 다 잘 아는 내용이기에 덧글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