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글을 읽는 축구팬들에 가슴에 한번쯤 설레이는 이름으로 다가왔던 선수가 있을것이다. 그 이름은 바로 지네딘 지단. 지단은 90년이후 축구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위대한 선수이다. 각 나라마다 뛰어난 미드필더가 나타나면 비교 거론되는 인물이 지단이니 그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였는지 가늠할수 있다. 또한 지단 만큼 뛰어난 미드필더들, 루이스 피구, 후안 베론, 데이빗 베컴, 후안 리켈메, 루이 코스타, 파벨 네드베드, 미하엘 발락, 라이언 긱스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우린 기억한다. 하지만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는 선수들도 많다. 그 중 한명이 필자가 소개할 터키의 불세출의 스타 세르겐 얄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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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과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축구 선수 세르겐 얄친은 터키 역사상 가장 뛰어난 테크니션으로 손꼽힌다. 터키 내에서는 "터키의 지단"으로 불리며 수많은 인기를 누렸다. 배번 또한 10번을 주로 달았다. 터키 슈퍼리그 사상 처음으로 5대명문팀인 갈라타사라이, 페네르바체, 베식타쉬, 트라브존스폴, 이스탄불스폴 에서 모두 뛴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뛰어난 기술과 창의력, 플레이메이커로서 부드럽고 섬세한 드리블과 패스. 결코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아름다운 볼 컨트롤을 구사 하였다. 그의 플레이는 터키 축구팬들을 매료시켰고 topten turkey.com 이라는 언론매체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터키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축구 선수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2위는 뤼스튀 레츠베르. 3위는 엠레 벨로조글루 였고.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선수인 하칸 수쿠르는 10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세르겐 얄친은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악동기질을 가지고 있는 안타까운 축구선수였다. 문란한 사생활과 알콜중독, 불성실한 자기관리, 팀동료들과의 마찰 등으로 언론매체에서 많은 질타를 받았다. 어떻게 보면 잉글랜드의 천재 미드필더 폴 게스코인과 같은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언론이 세르겐 얄친을 공격해도, 터키축구팬들의 세르겐 얄친에 대한 신뢰는 늘 한결 같았다. 왜냐면 그가 뛰는 팀마다 트로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클럽에서 세르겐 얄친을 원했고,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이야기 한것 처럼 임대생활도 꽤 오랜기간 하였지만, 주된 커리어를 터키 명문클럽에서 보내게 되었다. 또한 선수 말년엔 귀네슈가 감독으로 있는 FC 서울과도 링크되기도 했었다. 만약 이적이 성사되었다면 알파이 외잘란에 이어 2번째로 K리그에서 뛰는 터키 국가대표 출신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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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겐 얄친은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은 선수이다. 베식타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세르겐 얄친은 베쉭타쉬에서 5시즌동안 158경기에 나서 46골을 넣는 엄청난 활약을 하며 3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터키컵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터키축구의 신성으로 주목 받았다. 동시에 터키 u-16, u-18, u-21 대표를 거치며, 긴 침체기에 있었던 터키축구에 하칸 수쿠르, 아리프 에르뎀, 알파이 외잘란, 에르균 펜베 등과 함께 터키축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당시 페이스 테림 터키 대표팀 감독은 세르겐 얄친을 비롯한 영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어린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시킴으로서 유로 96에 참가시킨다. 하지만 터키 대표팀은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덴마크 등이 포함된 그룹 D에서 한골도 넣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며 예선 탈락한다. 그러나 테림감독의 이들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고 세르겐 얄친은 국가대표팀에서 에이스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스타의 자리에 오르고 성공을 맛 본 탓일까? 세르겐 얄친은 유로 96이후 축구외적으로 빠지게 된다. 경마를 좋아하고 밤문화에 깊숙히 빠지게 되었고, 훈련도중 무단 이탈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베식타쉬 동료들은 그런 세르겐 얄친을 멀리하게 되었고, 이것은 선수단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결국 세르겐 얄친은 쫒기듯 이스탄불스폴로 이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스탄불스폴에서도 2시즌동안 15골을 넣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실력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세르겐 얄친은 클럽에서 천덕꾸러기였으며, 져니맨 생활을 하게된다. 시프트젯파스폴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페네르바체, 갈라타사라이,트라브존스폴 다시 갈라타사라이 클럽으로 임대생활을 한다. 매시즌 다른 클럽에서 뛴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임대생활을 한 2번의 갈라타사라이 시절 각각 리그 우승을 차지 했고, 99-2000시즌에는 더블을 차지하기도 했다. 세르겐 얄친은 비록 불성실한 축구선수였지만, 실력만큼은 여전히 빛나서 어느 팀에 가든 그가 합류하면 당장 우승후보로 평가되니 그토록 공격하던 터키 언론들도 재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져니맨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국가대표 감독인 파티 테림은 여전히 세르겐 얄친을 신뢰했다. 비록 98년 프랑스 월드컵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세르겐 얄친은 터키 대표팀을 유로 2000에 진출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다. 터키 대표팀은 유로 2000에서 이탈리아에 1:2로 패배하였지만 스웨덴과 무승부, 벨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처음으로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세르겐 얄친은 터키의 8강 진출에 많은 힘을 보탰는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많은 스포트라이트는 벨기에 전에서 2골을 기록한 하칸 수쿠르에 돌아갔다. 터키 언론은 악동보다는 건실한 스타를 원했다. 그리고 유로 2000은 세르겐 얄친에겐 마지막 메이저 대회가 되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월드컵 무대는 부상으로 꿈을 이룰수 없었고, 2002년 월드컵에서 터키가 3위에 오르는 영광을 쓸쓸히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팀기강을 문제삼아 악동 세르겐 얄친은 한동안 국가대표팀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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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베테랑의 나이가 되어버린 세르겐 얄친은 져니맨 생활을 뒤로하고, 친정팀 베식타쉬에 복귀했다. 베식타쉬에 복귀한 배경에는 자신을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루마니아 출신의 미르체아 루체스쿠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르겐 얄친은 루체스쿠의 신뢰에 보답하며 베쉭타쉬에게 다시 리그 타이틀을 선물한다. 그리고 03-04 챔피언스리그에서 다시금 세르겐 얄친의 이름을 전세계 축구팬들의 머리속의 각인 시킨다. 당시 홈에서 놀라운 승률을 자랑하던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호화군단 첼시를 스탠포드 브릿지에서 2골을 넣으며 격침시킨다. 이 경기에서 MOM에 선정된 세르겐 얄친은 각종 언론매체에서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다시금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입게되고 유로 2004 지역예선에 참여하게된다. 하지만 터키는 아쉽게도 플레이오프에서 라트비아에게 진출권을 내주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 후 세르겐 얄친은 라트비아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게된다.
클럽에서도 세르겐 얄친은 베식타쉬에서 놀라운 활약을 뒤로 한채, 부상과 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정든 베쉭타쉬를 떠나게 되었다. 명문팀이 아닌 중소클럽에서 터키축구의 상향평준화를 위해 과감히 이적을 결정한 것이다. 06-07시즌 세케르스폴에서 23경기 13골을 넣으며 건재를 과시했고, 그 다음 시즌엔 에스키세히르스폴에서 21경기 6골을 넣으며, 선수생활 마지막까지 그는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명제를 터키 축구팬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 통산 426경기 132골을 넣은 이 위대한 스타는 은퇴후 베식타쉬 u-15 팀의 감독을 지냈으며, 현재는 축구 분석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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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터키 축구계에선 제2의 세르겐 얄친을 찾고 있다. 그 2명의 후보가 바로 누리 사힌과 아르다 투란이다. 이 2명의 젊은 재능들은 향후 터키 축구계를 이끌어갈 재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필자에겐 아직 이 둘에게서 세르겐 얄친 만큼의 임펙트를 느끼진 못했다. 그만큼 세르겐 얄친의 축구재능은 위대했다고 생각이 들고,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세르겐 얄친이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사실이 너무나도 아쉽다. 언젠가는 누리 사힌과 아르다 투란이 세르겐 얄친을 뛰어넘길 바라며, 그런 계기로 세르겐 얄친의 이름이 다시금 각인될수만 있다면 이 먼 "형제의 나라" 대한민국의 이름없는 팬의 가슴에 큰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