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며느리의 별난 출산 이야기
성복선
셋째 손자가 벌써 세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온 집안을 뛰어 다니며 장난감을 흩어놓고 그림책을 읽어 달라고 졸라대지만 집안은 오히려 마냥 즐겁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지만 하는 소리일 뿐이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온 가정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자식을 키워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특히 우리 집 막내(나에게는 손자인 셈이지만)는 온 식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유별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손자 손녀들은 참 유별나게도 태어났다. 첫째 아이를 병원에서 출산했던 며느리는 둘째부터는 수중 분만이라는 낯선 방식을 선택해서 우리들을 놀라게 했다. 나는 세 명의 아이를 다른 사람 다 하는 대로 병원에서 낳았던 사람인지라 며느리의 새로운 방식의 출산 결심을 듣고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음 듣는 출산 방식이기도 했지만 혹시나 잘못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불안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벌써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 날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체온에 가까운 따뜻한 물을 나무 욕조에 담아놓고, 그 안에 들어간 며느리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숨을 고르면서 출산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 남편인 아범이 함께 욕조에 들어가 며느리를 뒤에서 안고 손을 잡아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진통이 심해지는지 가쁜 숨을 내쉬며 잘 참고 견뎌내던 며느리가 주먹을 불끈 쥐며 “으악!” 하고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그 순간 아이가 제 어미의 뱃속에서 더 큰 물속으로 헤엄치듯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담당의사가 아기를 받아 코와 입 속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며느리 곁에 아이를 눕혀 놓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목 밑으로 밀려왔다. 나도 아이를 낳아 보았지만 이렇게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참으로 경이로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출산의 감동을 온 몸으로 깨달았다.
그렇게 유별난 방식으로 둘째를 낳았던 며느리는 셋째 아이는 집에서 낳겠다고 선언했다. 첫 번째 출산 때, 병원 침대에 누워 혼자 비명을 지르며 산고를 겪었던 기억이 여전히 공포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침상에서 온 몸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자신이 마치 우리 안에 갇혀서 몸부림치는 짐승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번에는 집에서 가족들의 도움과 보살핌을 받으며 낳겠다는 것이다. 이미 수중분만을 경험했으니, 이번에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겠다는 며느리가 기특하면서도 “내가 별나도 참 별난 며느리를 맞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뭘 그리 유난을 떠느냐고 한마디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둘째 손자가 태어나던 그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예정된 해산 날 며느리는 미리 섭외해 두었던 조산사에게 오전에 연락을 했다. 오후가 되자 며느리의 몸에서 양수가 흘러나오면서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조산사의 지시대로 안방에 산모를 눕히고 조명을 낮추고 가위와 무명실을 준비했다. 10분 간격으로 오던 진통이 5분, 2분으로 좁혀 왔다.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던 아기는 제 어미의 뱃속이 아쉬웠던지 생각만큼 쉽게 세상에 나오려 하지 않았다. 며느리가 배를 안고 이를 악물고 힘을 모으기를 한동안 반복했다. 옆에서 보는 나도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중학교 1학년인 누나와 초등학교 5학년인 제 형이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는 도대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 약속하기를 아기가 엄마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누나가 아기를 제일 먼저 받고, 형은 탯줄을 자르기로 말을 맞췄으므로 온 가족이 함께 숨을 죽이며 초조히 기다렸다. 가족 모두가 일분일초도 놓치지 않기 위해 며느리 옆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아범이 아내의 신음 소리를 못 들은 척 하는지, 아니면 쑥스러운지 제방에 들어가더니 오래 동안 나오질 않는다. 그 순간 며느리가 아범을 찾았다. 남편을 부르는 며느리의 목소리에서 섭섭함이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내가 큰 목소리로 아범을 불러냈다. 그제서야 방에서 나온 아들이 며느리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붙잡아 주었다. 아이들은 연신 신음소리와 함께 가쁜 숨을 내쉬는 엄마의 표정을 보더니 안쓰러운지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산모의 비명 소리와 함께 갑자기 아기의 까만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기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90도 방향으로 슬쩍 트는가 싶더니, 어깨와 함께 전신이 ‘쑤욱!’ 밀려 나왔다. 누나인 첫째가 두 손으로 얼른 아기를 받아 안는다. 아직도 엄마 자궁에서 못다 나온 긴 탯줄을 보며 당황해 하는데 조산사가 탯줄을 당겨 조금 더 길게 하더니, 둘째 아이에게 눈길을 주었다. 둘째가 조산사의 지시대로 탯줄에 가위질을 하면서 탯줄 매듭도 순조롭게 끝냈다. 조산사가 다시 아기를 받아 타월에 싸서 며느리 옆에 뉘여 놓고는, 며느리의 배를 반복 압박해 태반을 받고 오늘의 큰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 순간 가족들은 안도의 숨을 쉬면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나는 며느리가 잠이 드는 것을 보고서 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그 당시 나는 며느리가 그 모든 출산 과정을 남편을 비롯해 아직 어린 자식들, 그리고 시어머니인 나까지 지켜보게 한 의중에 대해서는 의아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만해도 보통의 산모들처럼 그 고통의 순간과 출산 후의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겪었던 진통을 숨기려고 애썼다. 얼마 전 저녁을 먹으며 나는 며느리에게 왜 그리 유별나게 분만 모습을 공개하느냐고 슬쩍 물었다.
며느리는 이 세상 만물이 생겨나고 자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지만 생명의 귀중함을 알고 느끼는 것은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 생기는 감정이라고 알고 있단다. 특히나 가족에 대한 사랑은 함께 경험하면서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을 때 식구들이 모두 지켜봤던 일이 생각난다. 어미개의 신음소리와 표정을 보면 짐승조차도 저렇게 애틋한 마음으로 새끼를 낳는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며느리 말대로라면 자식들은 엄마의 출산을 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고 엄마라는 존재가 나와 어떤 관계인지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며느리는 가족 간의 유대를 두텁게 엮어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도록 일러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특히 맏이인 딸에게는 앞으로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다뤄야함을 가르치겠다는 깊은 뜻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십 몇 년을 함께 지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던 시어머니에게도 며느리는 자신이 가장 힘들었지만 자랑스러운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같은 여성으로서 소통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깊은 뜻을 간직하고 있었던 며느리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시어머니가 부끄럽기조차 했다.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는 며느리의 선택과 결정은 지금까지 나를 감동시키고 있다.
나의 귀하디귀한 세 명의 손자 손녀들은 그렇게 유별난 며느리 덕분에, 낯설지만 감동적인 시간들을 거치면서 한 가족이 되었다. 식구가 한 명씩 늘어나는 것은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기쁨과 감동을 부모에게 안겨준다. 나는 생명의 신비를 체험으로 느끼며 오늘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굳건히 살아나가야겠다고 손자들이 잠든 얼굴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막둥이가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은근히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 별난 며느님께서 만약 넷째를 가진다면 과연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말이다.
첫댓글 이 글을 읽으니 제가 어릴 때부터 고기를 왜 못 먹었고, 지금까지도 잘 못 먹고 있는지 그 이유가 선명해지네요...그 때 그 시절엔 지금처럼 주로 소, 돼지, 염소, 토끼, 닭등등 여러가지 동물들을 집에서 키웠고...힘들게 새끼 낳는 감동적인 장면도 자주 보고 해서였는지도...그리고 늘 친구처럼
같이 놀고 눈 마주치고 그랬던 동물 친구들이 잡아먹히는 걸 직접 봤으니...으~~~그 핏발 선 눈빛은
평생 잊을 수 없네요..-.-
그나저나 이 글 쓰신 분 며느리..
별난 며느리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며느리시네요...^^*
모든 감동들 뒤에는 고통과 희생이 숨어있죠....
그래도 고기는 맛이좋죠...
@터기 ㅎㅎ 난 육고기에서 나는
그 고기 특유의 맛이 싫은데...
얼마전에 아이들한데 치킨 시켜주고
나도 한 점 먹어볼까 싶어
잡은 부위가 하필 닭 날개...
입에 갖다대는데 날개가 움직이는 듯 해서
갑자기 속이 뒤틀리면서 욕지기가.....
맛나게 먹는 아이들한테 누가 되지 않게
아무말 않고 내려놓았었지요....ㅎㅎ
@연보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생명이 있죠...
동 식물뿐 아니라 장인이 만든 모든것이 다 그렇죠...ㅋ
@터기 나는 생명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닌데..
그냥 개인의 취향이지요..
난 고기가 맛 없고..
터기 오라버니께선 고기가 맛있고..ㅋ
@연보라 그렇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