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박물관과 비겔란 조각 공원
저희는 가장 먼저 바이킹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노르웨이인들이 자기들이 은근히 바이킹 족임을 드러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이킹은 노르드어 비킹그에서 유래한 표현으로서, 혈통적으로는 게르만족 노르드인이고, 언어적으로는 노르드어를 구사하며, 스칸디나비아의 고향 땅으로부터 항행하여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의 북유럽과 중유럽을 약탈 및 교역하며 활보한 바닷사람들을 일컫습니다.
바이킹이 활동한 시기를 바이킹 시대라고 합니다. 노르드인들의 군사적 상업적 성장과 인구 팽창은 중세 스칸디나비아 뿐 아니라 브리튼 제도, 아일랜드 섬, 프랑스, 키예프 루스, 시칠리아 등 광범한 지역에 중요한 요소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롱쉽으로 대표되는 진보한 항해 기술로 인하여, 본거지인 스칸디나비아에서 멀리 떨어진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바이킹의 활동이 미친 적도 있었습니다. 바이킹"의 어원은 확실치 않습니다.
오늘날 바이킹을 용감하고 호전적인 해양 전사로 생각하는 것은 당시의 정치적 이유와 관련이 깊습니다. 노르웨이 출신인 바이킹은 9~11세기에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습격하고 약탈행동을 일삼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865년 잉글랜드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고, 윌리엄 1세 재위 중 크누드 2세가 몇 차례 침공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것을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북유럽 서해에는 바이킹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바이킹은 아일랜드를 자신들의 주도 아래 통합시키려 했으나, 1014년 무참한 패배를 당해 실패했습니다. 대략 800년부터 1050년까지 시기를 바이킹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대에 바이킹들은 대부분 노르웨이 사람들이었고 바다를 휩쓸었지요.
하여튼 노르웨이 사람들이 유럽 해안을 공포에 떨게 하여 약탈을 하고 겁을 주었지요. 이들 바이킹의 풍부한 유산을 체험해볼 수 있는 장소는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오슬로 피오르 부근에서 발견된 3척의 배로 여기에 성당 모습의 바이킹박물관이 지어졌습니다. 오슬로 대학교의 문화역사박물관(Museum of Cultural History)의 일부로, 오슬로의 피오르에서 발견된 오세베르그호, 고크스타호, 투네호 등 3척의 바이킹선을 보존,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된 오세베르그호는 오사 여왕의 관으로 9세기에 배 밑바닥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대부분 부패된 채 발견되었는데 원거리 항해용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바이킹 박물관에 있는 바이킹 배는 지금까지 기록된 바이킹 배들 중 가장 큰데, 옛날 옛적 노르웨이의 해상 역사를 짐작하게 합니다. 배와 함께 발견된 예술품과 공예품들은 바이킹들의 문화생활을 가늠하게 해 줍니다.
그 다음으로 비겔란 조각 공원을 찾아 가서 1 시간 30분 둘러보았습니다.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Gustav Vigeland)의 이름을 따 ‘비겔란 공원’이라 불리지만 프로그네르 공원(Frogner Park)의 일부입니다. 비겔란은 자신의 일생을 바쳐 이 공원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20세기 초 오슬로시는 비겔란에게 공원 설계와 조각 작품을 의뢰했고, 비겔란은 청동, 화강암, 주철을 사용해 작품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원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뜨고 말았지요.
그 후 그의 제자와 오슬로 시민들이 합심해 지금의 공원을 완성하였습니다. 공원에는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당연 그중 하이라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 조각품인 <모놀리텐(Monolittan)>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기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21명의 남녀가 괴로움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조각 속 사람들은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7월 오후, 노르웨이의 투명한 하늘 아래 야외에 펼쳐진 조각 군상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침묵으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청명한 하늘, 바람 속 모놀리텐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첫댓글 멋진곳에 머무셨군요!~~ 평생 가볼까 싶은 곳을 덕분에 감상합니다 감사드려요!~~~~
대전 우리 성서 모임에서 간 순례에 - 바오르의 발자취를 따라 -
동행한 신부님을 을 만나 이 카페의 가족이 된 지 6년 만에
다시 이번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그 때 너무나 유쾌하게 순례를 이끌어주셨던 신부님 -
이번에는 이렇게 준비하였음에도 별 설명없이 조용하게 동행하셨지요.
자주 피곤해하셨지만 처음으로 소화제(우스운 이야기)도 막힘없이 나오셨고
많이 회복되고 한결 건강한 모습으로 순례단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처음 간 바이킹 박물관은 노르웨이 국민들이 자기네 조상들의 기상을 자랑했지만
그야말로 해적 떼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첫날 서로 어색한 분위기에서 간간히 눈맞춤들을 하며 서로를 알아갔지요.
인간의 희로애락을 침묵으로 노래한다는 설명을 읽으며 침묵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