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쌩쌩부는 내륙의 추운 기후에도 부산은 따스합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친바람도 해안에 마주닿으면 물거품처럼 부드럽게 흩어지는 것 같습니다. 부산은 겨울에 여행하기 정말 좋은 여행지입니다. 여름에 해운대에 백만인파가 몰리지만 엄청난 유흥인파가 모두 사라진 겨울의 해운대는 고상하고 낭만적이며 눈부시기까지 합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기후 뿐만 아니라 겨울의 부산은 하루밤 몸을 담그고 나면 날아갈 듯 개운해지는 동래온천이 함께합니다. 아이들과 교과서 공부도 하고 온천욕도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부산속으로 들어가볼까요?
부산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교과서여행지와 온천여행지 동래
동래온천은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는 소중한 장소일 것입니다. 현재 50~70대 어르신들이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떠났던 장소들이 대부분 전국의 유명한 온천들이었을테니까요. 대전의 유성온천, 부산의 동래온천등은 어르신들의 추억속에 빛바랜 앨범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동래온천의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숙종임금때 온천욕사가 지어졌으나 임진왜란때 폐허가 되었으며 일제강점기때 한국인.일본인이 공동으로 온천을 경영하다가 광복후 부산에서 운영권을 넘겨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 동래의 풍경은 여느 관광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규모가 비교적 큰 농심호텔의 허심청을 중심으로 온천숙소를 갖춘 숙박업소들이 밀집해있습니다. 부산의 교과서여행지를 부지런히 답사한 후 온천장을 중심으로 숙박장소를 정해 온천욕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면 행복한 겨울 부산여행의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객실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동래 동방관광호텔
객실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동래 동방관광호텔
리노베이션한지 얼마 안되어 깨끗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에 객실에서도 펑펑나오는 온천수로 객실안에서 동래온천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숙소입니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부산을 여행할 때 자주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객실온천탕 외에도 따로 온천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호텔 주변으로 많은 식당들이 밀집해있어 아침저녁으로 여행중 식사를 해결하기 좋은 곳입니다.
동방관광호텔 여행자수첩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 210-82
전화번호: 051-552-9511
동래읍성과 장영실과학동산
[왼쪽/ 오른쪽]동래성 / 장영실 과학동산
1592년 4월 15일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왜구가 동래성을 향해 진격해왔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한 동래부순절도 라는 그림 한 장이 부산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있습니다.-원본은 육군박물관 소장중입니다.- 왜구가 동래성 앞에서 깃발하나를 들고 서 있습니다. 깃발에는 “싸울 것이면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길을 비켜달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동래성 위에 또 하나의 깃발이 뜹니다. 동래성 깃발에는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성을 내주기는 어렵다.” 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동래성 성벽위에는 아녀자들이 기왓장을 깨어 던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처절한 항쟁을 했으나 패하고 왜구들에게 결연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동래부순절도에 그려진 송상현은 붉은 옷을 입고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하고 있습니다. 북쪽을 향해 절을 하고 있음은 곧 싸움에 패배를 의미합니다. 동래성 백성들과 관군들이 일치단결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으나 동래성은 그렇게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부산시에서는 당시 동래성의 처절했던 전투를 잊지않기 위해 해마다 동래구 일대에서 동래읍성 역사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동래는 조선시대 뛰어난 과학자였던 장영실이 출생했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동래읍성 입구에는 장영실이 만든 발명품 모형을 모아놓은 장영실 과학동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복천박물관이 위치한 언덕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집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살던 곳이었습니다. 1969년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부산의 복천동 언덕에 정말 우연히 가야의 거대한 무덤군이 발견되었습니다. 피난민들이 살던 언덕에 주택개량공사를 하기위해 땅을 파던 도중에 일어난 발견이었습니다. 부산에 거대한 가야의 무덤군이 발굴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무덤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엄청난 양의 가야갑옷과 무기, 장신구와 그릇들이 발굴되었습니다. 복천동 고분은 당시 일본학자들중 일부가 주장하던 임나일본부설이 전적으로 허구임을 증명해주는 대단한 발결이었습니다. 복천동고분에서 발굴된 엄청난 양의 가야철기를 통해 우리는 가야의 대단히 발전했던 철기문화를 오늘날 알 수 있었습니다. 복천 박물관 일대의 복천동 고분군은 가야의 화려했던 문화를 증명해주는 소중한 산 증거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관람시간 주의: 09:00~20:00(입장시간은 저녁 7시까지)- 다른 박물관과 달리 늦게까지 오픈하니 관람시간 확인 잘 하고 입장하자. 월요일은 휴무.
복천박물관의 관심유물 신발모양토기
신발모양 토기
복천동 53호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이며 국립중앙박물관 가야관에서도 전시되고 있는 한쌍의 토기입니다. 가야토기를 대표하는 굽다리위에 짚신이 나란히 올려져 있습니다. 이 신발모양토기는 무덤에서 출토되었다는 데 의의를 갖습니다. 아마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이가 이 짚신을 챙겨 신고 하늘나라로 편안하게 살펴갈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이 토기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망자의 무덤속에 넣어주는 그릇 하나에도 망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이 담겨있음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유물입니다.
복천박물관의 관심유물 말 모양 뿔잔
말 모양 뿔잔
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며 부산 복천동 고분 7호분에서 발굴된 유물입니다. 뿔모양처럼 생긴 잔도 독특하지만 입구 부분이 말머리 모양으로 생겼다는 점에서 흥미를 끕니다. 이 말머리 모양뿔잔은 사실은 우리나라가 아닌 서역에서 먼저 발견된 유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습니다. 용맹한 기상을 담은 말모양 뿔잔에 마실 것을 가득 채워 함께 마시며 드 높은 기상을 뽐내었을 고대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집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관에도 말모양 뿔잔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
보수동 책방 골목
한국전쟁 후에 부산은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보수동 책방 골목역시 그 시작은 피난민들이었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북쪽에서 피난온 손정린씨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 입구에서 헌박스를 펴놓고 헌잡지와 만화등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물건들을 팔기시작한 것이 지금 보수동 책방골목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헌책은 가난한 살림에 헌책이라도 손에 쥘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수 있었던 학생들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답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보수동 책방골목은 오랜 역사와 전통의 명성에 걸맞게 지금까지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워낙 유명해져서 헌책방 외에도 새책을 구입할 수 있는 서점도 들어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좋은 책 한아름 구입해서 따뜻하고 포근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북까페에 앉아 한나절 책만 가지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보수동 책방 골목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추운 겨울 문화의 도시 부산의 향기를 책이 주는 즐거움으로 품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