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題〈무제〉
이상은(李相隱)
서로 만나기 어렵더니 이별 또한 어려워라
봄바람은 힘이 없어 온갖 꽃 다 시든다.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이 다하고
촛불은 재가 되야 눈물이 마른다네.
새벽녘 거울 보며 변한 머리에 한숨짓고
밤에 시를 읊으며 달빛 차가움을 느끼리라.
봉래산은 이곳과 멀지 않으니
파랑새야 살며시 찾아가 알아보려무나.
相見時難別亦難 상견시난별역난
東風無力百花殘 동풍무력백화잔
春蠶到死絲方盡 춘잠도사사방진
蠟炬成恢淚始乾 납거성회루시건
曉鏡但愁雲鬢改 효경단수운빈개
夜吟應覺月光寒 야음응각월광한
蓬山此去無多路 봉산차거무다로
靑鳥殷勤爲探看 청조은근위탐간
[通釋]
어렵게 만났으니 헤어지기가 더욱 어렵고, 동풍이 힘을 잃은 늦봄이라 온갖 꽃들도 다 시들었다. 봄누에가 죽어서야 실잣기를 그만두듯, 초가 다 타서 재가 돼야 촛농이 마르듯, 나의 사랑도 죽음이 아닌 한 가로막을 수 없다. 그대는 새벽에 거울을 마주하고는 검은 머리칼이 세는 것을 걱정하고, 달빛이 차가운 밤에 그리운 정을 읊조리다 처량함을 느끼겠지. 그대가 있는 봉래산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파랑새에게 조용히 찾아가서 보고 그대 소식 전해주기를 부탁한다.
[解題] 이 시는 해석에 있어 의견이 분분한데, 인생의 불우함을 읊은 것으로 보기도 하고, 늙음을 탄식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영호도(令狐綯)에게 충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 문면에 나타난 그리움의 정감을 근거로, 애정시로 보기도 한다.
1·2구는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어렵게 만났는데 또 헤어져야 하는 괴로운 심정을 ‘難’자를 연이어 써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이별의 시점을 꽃이 지는 늦봄으로 설정하여 애상감을 더욱 깊게 하였다. 3·4구는 이별 후 맹세한 말로, 봄누에와 납촉(蠟燭)에 기탁해 자신의 애정이 죽어도 변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진실됨을 회화적으로 그려내었다. 이 두 구는 천고에 전송될 만한 명구로 꼽힌다. 5·6구는 수심에 잠기고 외롭고 처량한 상대의 처지를 상상하여 읊었고, 마지막 7·8구는 파랑새에게 대신 소식을 전해달라고 하여 절망 속에 희망이 담겨져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들의 사랑이 어려움을 보여준다.
[출처] [당시삼백수]無題(무제) : 相見時難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 이상은(李相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