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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주일설교 시편61:1-8(땅끝에서 드리는 기도)
본문: 시편61:1-8
제목: 땅끝에서 드리는 기도
오늘은 시편61:1-8의 말씀을 가지고
“땅끝에서 드리는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땅끝에서 드리는 기도”
1.땅끝에서 서 있을 때
땅끝이 있을까요?
지금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땅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땅끝이 이라고 하지만 그곳은 강이나 바다의 시작이고
그 강이나 바다를 지나면 다시 땅이 나옵니다.
실제로 땅끝은 진짜로 끝이라기보다는
시작일 뿐입니다.
땅이 둥글기 때문에 땅끝은 없고 돌다 보면
다시 그곳에 올 수 있습니다.
땅끝은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다윗은 그의 기도에서
땅끝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땅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사람이 없는 곳
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다른 세상으로 여기었습니다.
이 땅이 둥글지 않고 사각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땅끝이면 끝나는 곳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벼랑 끝
떨어지면 죽는 곳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없는 곳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땅끝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그러한 때를 만납니다.
어느 때가 그러한 때였습니까?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무엇을 하였습니까?
오늘 다윗도 그러한 때를 당하였습니다.
사울에게 쫓길 때 그랬을까요?
그때보다는 왕으로서 모든 것을 누리다가
하루아침에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여
왕궁에서 쫓겨나 요단을 건너 피난할 때일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 왔던 아들이, 신하와 친구들이
자신의 등에 칼을 꽂겠다고 할 때
땅끝에 서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사자 성어로 말한다면
百尺 竿頭(백척 간두) 곧
백자의 장대 위에 올라가 있는 느낌입니다.
그때 다윗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우리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언제나 기도해야 하지만
바로 그때 가장 집중에서 사력을 다해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조리고 눌리겠습니까?
땅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바닥을 향하여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지만
믿는 자가 해야 할 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주께 향하여야 합니다.
마음과 눈이 바로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그 두려움의 자리에서 눈을 들어 주님께 향하여야 합니다.
나의 처지와 형편은 매우 절망적이고
도움이 없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할 방도도 없고
어떤 결정도 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어떻게 했으며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분명하고 명백한 사실은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단순한 말이지만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하나님이여 하고 부릅니다.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부릅니다.
내 기도에 유의해 달라고 합니다.
지금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급박하니
오직 자신에게 집중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무슨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2절에서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해 달라고 합니다”
나보다 높은 바위가 어떤 바위입니까?
나라는 존재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왕이라고 해도 부자라고 해도 학식이 높아도
나는 언제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나를 넘어서는 바위는 어떤 바위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세워주시고
준비해 줄 수 있는 바위입니다.
이 바위는 한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련한 바위는 아무리 낮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 닿은 수없는 그런 바위가 됩니다.
나라는 존재는 전쟁에도 패하고
슬픔에도 넘어지고 어떤 일에 낙망하여
꼬꾸라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한계 속에 있는 나에 붙잡혀 있으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당하는
그 문제에 붙잡혀 벗어날 수 없고
그 문제에 짓눌림을 당하고
스스로가 자포자기하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붙잡혀 있는 자는 어느 정도는
무엇인가를 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높은 바위에 있게 되면
우리는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피난처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주는 우리의 피난처이며
주는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십니다.
그곳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는 곳이고
세상의 어떤 손도 닿을 수 없습니다.
3.영원한 것을 추구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높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4절과 7절과 8절에
계속해서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겠다고 합니다.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겠다고 합니다.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 것에 머물러 있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려움과
비참함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어디로 끌어 올려야 합니까?
이 땅에 것에 머물던 우리의 눈길을 영원한 것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유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유업은 언제 주시는 것입니까?
5절에 보면 이미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단지 서원하였을 뿐입니다.
서원하였다고 하는 것은 단지 마음만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주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마음을 먹고 출발만 하면 이미 주시기로 한 것을
주어 버리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죽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서원하면 하나님을 그를 받아 주시고
하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세상에 누가 그렇게 합니까?
집을 사더라도 마음을 먹었다고
집을 누가 집을 넘겨줍니까?
내가 계약금을 내고 계약을 맺고 잔금을 치러야 그때 우리는 그의 집의 열쇠를 받고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단지 마음만 먹었다고 무엇 하나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만 먹고 출발했으면
주시겠다는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기로 하면 이미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 안에 거할 수 있게 됩니다.
구원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붙잡는 마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기로 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살겠다,
이만큼 드리고 살겠다
저만큼 행하며 살겠다고 서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은혜와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서원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행하는 것입니다.
서원을 행했다고 무엇을 잘했다고
구원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을 구원받은 자가 되었으니
감사해서 선행도 하고 헌신도 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워서
우리는 우리가 행한 서원을
하나님께 갚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8절에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믿는 자의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합니다.
급한 마음에 무엇이나 할 것처럼 하다가
급한 마음이 해결되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식으로 행동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급하면 하나님께
이것도 하겠다, 저것도 하겠다고 합니다.
이만큼 드리겠다고 하고, 무엇도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고 편하여지면
언제 그런 서원을 했는지 잃어버리고 맙니다.
전혀 서원을 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서원했을 때
그 마음에 출발을 보시고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서원하는 마음은 주를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어려울 때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문제에 집착하는 대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4.하늘 유업을 받은 자로서 삶
5절에서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다는
기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늘의 유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을 향하여 서원했을 때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했을 때 이미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기업은 신앙의 유산을 말합니다.
신앙의 유산은 주를 경외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사먹을 수 있고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고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의 유산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많은 것을 견디게 하고
많은 것을 극복하게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많은 보상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면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많은 기쁨이 있게 됩니다.
핍박 속에서도 기쁨이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 눌렸지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업 곧 신앙의 유산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어떤 고난이 와도 감당할 수 있고
어떤 문제가 와도 그것을 풀어 헤쳐 나갈 수 있고
어떤 장벽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놀라운 기업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기업 재산이 있지 않습니까?
신앙생활 잘했더니 돈이 얼마 있고 집이 얼마나 크고
권력이 얼마나 높은가를 말하는 것을
그것만이 하나님의 기업이 아닙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통과 난관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신앙의 유산이고
하늘의 기업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신앙의 유산이 있는 사람 하늘의 기업을 받은 사람은
시련이 와서 마음이 가라앉고 어려움이 닥쳐도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피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6절에서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시고
7절에 하나님 앞에서 거하게 하시고
8절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고
그냥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거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살고
한 걸음 더 나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이 얼마나 놀랍고 크신 신앙의 유산입니까?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피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살아가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그것은 바로 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보호하소서”
우리가 세상에 눌려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의 진리가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견디어 나가게 됩니다.
그럴 때 쳐졌던 마음이 올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유산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고난은 있지만
그것은 계속되지 않습니다.
절망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도 계속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있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 안에서 영원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장막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의 장막은 어떤 곳입니까?
주의 임재가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의 장막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4절에서 서원을 합니다.
결단을 합니다.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주의 날개 아래도 피하리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곳이 아닌 하나님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피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영원으로 이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며
주께 행한 서원을 이행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매일 헌신하고 찬양하고 서원을 갚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늘 하나님의 성소
곧 주의 장막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그 관계가 이어지는 삶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잊지 않고
그것을 붙잡고 살아가면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틈이 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머물며 메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잊지 않고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지 않는 분입니다.
어떤 자리에 있어도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하나님의 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이 절망 상태에 있을 때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다투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영원히 노하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나와 관계가 끝나버릴 것 같다고
생각될 때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고개를 들어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하나님 앞에 있을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인자를 베푸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땅 끝에 있다고 하여도
언제나 그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고
그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으로
살아가는 성도님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