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을 보아하니~”
예전에 사람들이 많이 쓰는 관용적인 술어 중 하나입니다. 무속과 점술, 관상 등이 유행하던 시대의 말이지요. 관상(觀相)은 사람의 얼굴을 본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의 성질이나 운명을 판단하는 것을 ‘관상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관상이라는 말에 쓰인 상(相)은 서로 상자로 쓰이지만 애초에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나무 목(木) 변에 눈 목(目) 자를 써서 목수가 건축에 쓸 목재를 고르기 위해 유심히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서로 상자가 아니라 모양 상자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관상이란 사람의 얼굴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살아온 내력과 생각, 품성 등을 종합하여 됨됨이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관상쟁이들은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그의 미래까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직관력과 통찰력을 갖습니다. 그 사람의 내신과 수능 성적이 몇 등급이고, 어느 학교를 나왔으며 어느 가문 출신인지를 보는 게 아니라 관상을 통해 그의 폐부를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관상이 이력서로 대체됐습니다. 그 사람의 학력과 경력이 기재된 페이퍼 하나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학력은 사람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돼버렸습니다. 성적만이 좋은 대학을 가는 기준이 됐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더 많은 기회와 부를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사회는 사람의 인격과 사유, 창의성 따위를 보지 않습니다. 성적과 출신학교가 그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시대 젊은이들 사이에 공부 잘하고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에게는 자동적으로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는 불문율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학교 시스템이 그런 룰을 찍어냈기 때문입니다. ‘인정?, 그래 인정!’ 이것이 20대 젊은이들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이며 화두입니다. 이 두 마디면 사유도 논리도 필요 없습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됐기 때문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그런 예입니다. 그가 당대표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과학고와 하버드 출신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당대표 선거에서 당원 투표로는 나경원 후보에게 밀린 그가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압도적으로 표를 얻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몰고 가며 편가르기 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환멸을 느끼던 이십대 남성들에게 여성 혐오를 부추기고 편가르기를 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가장 크게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이준석의 성적과 출신학교였습니다. 이대남은 이 두 가지 때문에 이준석에게 환호한 것입니다. 이준석의 말은 상대방을 일거에 제압할 만큼 빠르고 논리정연합니다. 그것은 그를 매우 스마트하게 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말에도 관상이 있습니다. 그의 말은 형식논리를 갖추었지만 진정성과 논리의 내용은 고루하며 사특합니다. 특히 게임에서나 하는 방식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이를 조롱하고 모욕 주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하였습니다. 화해와 협력, 타협과 대의를 위한 양보 같은 정치적 덕목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과거 성 상납을 받은 의혹까지 불거진 뒤 그 혐의에 대해 대응하는 태도를 보면서 권모술수로 늙은, 노회한 정치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경우 관상에서는 밉상이라고 합니다. 이죽거리고 비아냥대고 모욕하는 그런 화상을 말할 때 밉상이라고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경우도 밉상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뉴스에서 그 화상좀 안 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아무런 경험도 없는 어린아이를 너무 높은 자리에 앉혀 놓으니 안하무인이 된 것입니다. 원칙도 상식도 없이 교만하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고 여기저기 들이받기 일쑤입니다. 박지현은 밉상을 넘어 진상으로 발전합니다. 갈수록 진상 짓을 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의 류호정이나 장혜영 들도 정치적 도의를 어긋난 말과 행동으로 청년에 대한 이미지를 오염시키고 말았습니다.
청년 정치를 표방하며 각 정당들이 영입한 청년들이 상규를 벗어난 진상이라고 사람들은 혀를 내두릅니다. 이들 때문에 청년은 다 신선하고 창의적이며 개혁적이라는 통념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이력서 한 장으로 사람을 기계적으로 평가하는 이 시대의 가치관이 낳은 문제입니다. 오직 성적, 오직 경쟁, 오직 승리만을 배운 아이로 성장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배제와 혐오를 통해 편을 가르고 나와 다른 이를 틀린 것으로 규정하고 짓밟으려는 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울 때는 기초 교육이 매우 중요합니다. 의자에 똑바로 앉기, 밥 먹을 때 숟가락 흔들지 않기, 어른과 겸상하여 식사할 때 떠들지 않기, 앉아야 할 자리와 서야 할 자리를 구별하기, 누울 자리와 다리 뻗을 자리를 분별하기,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구별하기 들을 어릴 적부터 찬찬히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훈육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배우지 못하고 오직 공부만으로 경쟁하여 승리하도록 길들여진 아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화상은 밉상으로 자라게 되고 그 밉상들이 사회의 지도층에 속하게 되면 진상이 됩니다.
아이들을 인간으로 양육하지 않고 경쟁 기계로 키우면 싸가지 없는 화상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정치판에 나이 어린 싸가지 화상들이 청년을 대표한다고 진상을 떨고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어른이 없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를 후레자식이라고 합니다. 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서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을 말합니다. 그 진상들의 가정에 어른이 없는 것입니다. 애들은 어른에게 술을 배워야 하듯이 어른의 무릎에서 삶의 지혜와 원칙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배우지 못한 자들이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정당의 인사가 되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첫댓글 인간이 되는 과정을 배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