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47)》 중종 6
- 조광조의 죽음
조광조는 임금과 대면할 기회
한번 갖지 못한 채그대로 유배 길에 올랐습니다.
그는 오로지 근본에 힘쓰고
원칙과 정도만 걸어온 사람으로서,
반듯하고 사심이 없었으며 온화한 성품에
인재라면 천민이라도 등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누구라도 공부하고 수양하면
성인군자가 될 수 있었다고 믿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임금을 끝없이 계도하여 군자가 이끄는 나라를
만들고자 성심을 다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조광조는
현실정치의 냉엄함을 잘 알지 못한 치명적 실수,
군왕제 하에서 신하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
중종의 개인적 자질 부족 등
(인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쇠퇴의 길을 가기 마련 )
여러 이유로 그 꿈을 접은 채
정치 개혁의 길에 들어선지 4년 만에
유배지에서 사사당하니,
그의 나이 겨우 38세였습니다.
중종은
조광조를 아들과 같이 아끼다가
느닷없이 그와 그를 따르는 무수한 신료들과
선비들을 납득할 만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은 채
모두 죽이니,
오죽하면 사관들조차,
"그 임금이 그 임금이었던가"
라는 취지의 촌평을 하였을까요
암튼 기묘사화와 함께
조광조 그리고 그의 개혁동지들은 모두
정치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살아남은 정국공신들은
끝없이 자기들의 욕심을 채워 나갔으며,
그에 따라 백성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민심은 늘 흉흉하여
각종 고변과 익명서가 난무하였으며,
임금에게 직언해야 할 대간마저
건강성을 잃고 권력을 쫒으니,
결국 조광조의 죽음은 개혁의 실패였고,
곧 중종의 실패였습니다.
조광조가 죽고 난 후 조정은
남곤이 제일 실력자가 되어 좌지우지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기존의 훈구파와는 다른
이질적인 인물이 급성장하고 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김안로입니다.
김안로는
똑똑하고 이빨이 세고
매사에 해결책을 잘 제시 해서
차기 또는 차차기를 이끌 인물로 주목을 받았고,
급기야 자기 아들이 중종의 딸과 결혼하는
중종의 총애까지 받아,
초고속 승진을거듭하였습니다.
남곤은 김안로를 위험인물로 보
김안로를 소인배로 몰아 귀향을 보내버렸으나,
남곤 그도 더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권력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남곤은 죽으면서
조광조를 죽도록 한 것을 후회하고
자식들에게 자신의 시호를 청하지도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도록 하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니
다행이라 할까요
중종, 인종, 명종 시대는
조광조의 등장과 퇴조,
김안로, 문정왕후, 윤원형, 윤임 등의
"피 터지는" 권력싸움이 벌어지던 시대였으며
전인화, 강수연 주연으로
TBC출신 김재형감독의 드라마가
전인화, 강수연 주연, 2001년 SBS의
“여인천하"입니다
TBC의 전성시기 70년대를 이끌어간 두PD
"쑈의 황정태, 드라마 김재형"
이 두분중
김재형피디께서는 몇해전 작고하셨으니
이 또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담회로~~
[출처] 조선왕조 실록 47|작성자 DJ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