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랑한 고을
가.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여동생과 재혼한 에피소드
일본인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즉, 1582년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마음이 들어, 자신이 나서서, 양측이 동맹을 맺기로 하였으며, 동맹을 맺고는 땅을 도리어 늘려주면서 환심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히데요시를 경계할 뿐 속마음을 주지 않았다. 이에 애가 탄 히데요시가 생각해 낸 대책은 이에야스와 혼인으로 친척관계를 맺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당시 43세였는데, 수년전에 오다 노부나가의 의심을 풀기 위하여 본처 치쿠야마 도노(=築山殿)를 죽인 일이 있었는데, 그 일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정식 재혼은 하지 않고 수년간 홀애비로 살아왔다.
*** 기상천외한 운명의 여인 아사히히메(= 朝日姬)

한편 히데요시에게는 아사히히메(= 朝日姬)라는 43세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문제는 아사히히메는 소에다(=副田)라는 남편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히데요시가 생각해 낸 방책은 여동생과 소에다를 이혼시키고, 그녀를 이에야스에게 재혼시켜 보내자고 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사히히메도 극력 반대하였고, 히데요시의 生母도 펄쩍 뛰며 반대하였는데, 그 누구도 히데요시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마침내 아사히히메가 이혼하고 두 사람은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이에야스는 자신과 동갑인 이혼녀와 첫날밤은 합방도 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는 다가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짓을 강행한 히데요시, 그런 짓에 가만히 호응한 이에야스 모두, 인간의 보통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권력의 괴물들이라고 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험으로 격리된 산악 속을 좋아하였음
그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수루가 지방(= 오늘날의 시즈오카시)을 좋아하였다. 그는 불과 6살의 아동 때 인질이 되어 이곳 수루가에 보내졌다. 아동기를 이곳에 보내고 첫 결혼도 이곳에서 하였다. 그후 다이묘가 되어 여러 곳을 돌다가 1587년부터 수루가 거성으로 옮겼으니, 거의 30년만의 옛 터전에 복귀한 것이다. 이후 그는 이곳에 정착하며, 1616년 사거할 때까지 약 30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 오늘날 복원된 슌뿌(=駿府) 거성. 天守閣이 없는 등 규모는 작아도, 월대(月臺 = 암석 기반)와 해자(垓子 = 방어용 물웅덩이)를 모두 갖추어, 적의 방비에 허점이 없으면서도 외관도 멋졌음

***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기습을 받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여, 슌뿌 주변의 하천에는 다리를 놓지 못하게 하고 배를 타고 오는 것조차도 금지하였다. 건너올 일이 있으면, 물속을 걸어오든지, 아이나 여인이면 인부 등에 업혀 건너오라는 것이었다.
이런 위압적인 법령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하였다.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죽어서도 동조대권현(東照大權現)의 존귀한 신령이었던 것이다. 이에 겨울철에도 남자들은 옷을 벗고 아베(阿部) 하천을 걸어 건너야 했던 것이다. 이 풍경을 화가 歌川広重(우타가와 히로시게)는 『東海道五十三次』 목판화에서 아래와 같이 그렸다.

*** 슌뿌는 당시 인구 8만이 넘는 도시로, 東海道 길 도중에는 가장 큰 고을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시즈오카 市의 인구도 70만명으로 일본 14위 도시라고 한다. 험준한 산악지대와 화산온천 지대를 지나온 여행자들은 여인숙(슈쿠바 = 宿場)의 여인들의 유혹에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따라 들어갔다.

첫댓글 재밌는 역사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잘 읽어보고갑니다
그 옛날에도 권력은 무시무시 하네요 ~
동생을 이혼까지 시키고 ~ ㅎ
보물들이 하나씩 나오는군요
감사합니다
아? 도구카와이에야스에 대한 일본 대하드라마 가 50회 분량으로 2개가 있는데..ㅎㅎ 거기 보면 잼나게 나옵니다..추천..
일본의 재미있는 역사네요
잘보았습니다.
東海道 53 驛站 [ 아주 흥미롭네요 ... 京都 [교토 ]까지 歌川広重(우타가와 히로시게)
와 같이 했으면 만화보는것 처럼 더욱 흥미가 있겠읍니다,
(슈쿠바 = 宿場) 여인들의 " 이랏샤이 마세 "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좋은글 그림 대단히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