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미산
山氣兼將雨意蒸 산중의 운무에 우기(雨氣)까지 더해져서
煙霏雨羃忽瞢騰 멀리 안개 자욱하고 비 아련히 덮였다
若非時露螺鬟出 가끔씩 산봉우리 아니 드러났더라면
寧識遮藏碧玉層 푸른 옥절벽이 숨겨진 줄 몰랐으리
ⓒ 한국고전번역원 | 이기찬 (역) | 2015
――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 「원장이 운산을 그리다(元章畫雲山)」
주) 원장(元章, 1051~1107)은 북송 때 사람으로 문장과 서화에 뛰어난 미불(米芾)의 자이다. 그는 채양(蔡襄),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과 더불어 송나라 사대가(四大家)로 꼽힌다.
▶ 산행일시 : 2021년 10월 9일(토), 흐림, 비, 안개
▶ 산행인원 : 4명
▶ 산행시간 : 9시간 3분
▶ 산행거리 : 도상 14.1km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용문에 내려, 택시 타고 산음 보건진료소 앞으로 감
▶ 올 때 : The Stay(구 블루 밸리) 정문 앞에서 택시 타고 설악으로 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청평역에
와서 전철 타고 상봉역으로 옴(설악에서 잠실로 가는 버스가 있으나 도로가 막힐까봐 청평으로
가서 전철 탔다).
▶ 구간별 시간
06 : 50 - 청량리역, 용문 가는 무궁화호 열차 출발
07 : 27 - 용문
08 : 23 ~ 08 : 30 - 산음 보건진료소, 산행준비, 산행시작
08 : 49 - 벌목지대, 봉미산 등산 안내도
09 : 03 - 임도
09 : 40 - 헬기장
10 : 04 - 705m봉
11 : 00 - 봉미산(鳳尾山, △855.2m)
11 : 23 - 811.5m봉
11 : 40 ~ 12 : 40 - 다시 봉미산, 점심
13 : 11 - ╋자 갈림길 안부, 삼산현(三山峴)
13 : 54 - 644.5m봉
14 : 26 - △636.7m봉
14 : 35 - 617.5m봉
15 : 40 - 보리산(△627.3m)
16 : 00 - 610m봉
17 : 00 - 임도
17 : 18 - The Stay 구내 진입
17 : 35 - The Stay 정문, 산행종료
2-1. 산행지도(봉미산, 영진지도, 1/50,000)
2-2. 산행지도(보리산, 영진지도, 1/50,000)
▶ 봉미산(鳳尾山, △855.2m)
당초에는 백적산을 가려고 했는데 방심하여 평창 가는 열차표가 매진되는 바람에 가까운 봉미산으로 바꾸었
다. 나는 청량리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한 사람은 상봉역에서 전철 타고, 두 사람은 도농에서 전철 타고 용문
역에서 합류하기로 한다. 무궁화호 열차도 만원이다. 옆 자리에 앉은 경주 간다는 젊은이가 껌을 내게 내민다.
문득 여행의 기술이랄까, 이런 얘기가 생각났다. “먼저 옆에 사람에게 껌이라도 권하시라. 그러면 곧 껌보다 훨
씬 더 큰 것이 돌아올 것이다.” 나는 곧 자리를 주고 용문에서 내렸다.
용문버스터미널에서 봉미산 들머리인 산음보건진료소 가는 버스는 9시 4분에나 있다. 용문역에서 버스터미널
까지 가는 거리도 꽤 멀다. 시간은 돈이다. 용문역사 앞에 길게 늘어선 택시 탄다. 버스로는 1시간 47분 걸린다
는데 택시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산음리(山陰里). ‘시인이 사는 마을’이라는 표지가 있고, 도로 옆에 이 동
네 주민들이 지은 시를 사진에 함께 전시하였다. 40명 각각 1수씩이다.
그들의 사진 모습에서 숱한 인고의 세월을 볼 수 있거니와 그래서인지 시가 한층 여물었다는 느낌이 든다. 어
찌 보면 나날의 삶이 시이기도 하다. 다 수작이다. 그중 한 수를 든다. 이용숙 님의 「또 다른 길 앞에서」이다.
칠십 넘는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하루하루가 새롭습니다
무심히 지나치던
꽃 한 송이도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결의 속삭임도
사랑의 노래로 들려옵니다
마음 깊이 숨어 있던
아름다운 감정들이
수줍은 듯 고개 내밀어
황혼길에 느껴보는
또 다른 인생길
첫 사랑같이 다가옵니다.
이용숙 님의 칠십이 넘은 나이는 너무 젊다. 일본 열도를 감동시킨 바 있는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柴田トヨ,
1911~2013)는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98세 때 내놓은 첫 시집 『약해지지 마(くじけない
で)』는 출간 직후 16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그녀는 102세에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그녀의 「행복」이란
시다.
이번 주는 간호사가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아들의 감기가 나아 둘이서 카레를 먹었습니다
며느리가 치과에 데리고 가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날의 연속인가요
손거울 속의 내가 빛나고 있습니다.
3. 젖나무(전나무) 벌목 중
4. 까치고들빼기
심산에서 자란다고 한다. 이 무수한 꽃봉오리를 빗방울이 맺힌 걸로 착각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5. 까치고들빼기
6. 까치고들빼기
7. 용문산
8. 봉미산에서 북동쪽 조망
9. 참나무에 기생하는 은꿩의다리(?)
10. 봉미산에서 북동쪽 조망
11. 봉미산에서 북동쪽 조망, 운무로 경치는 순식만변이다.
개울을 따라 산기슭을 향한다. 이곳에도 전원주택과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한다. 조만간 신도시(?)가 조성될 기
세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전원주택 지구를 벗어나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벌목차량들이 드나들어 진창길로
변했다. 20분 정도 걸려 임도는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가고 커다란 ‘봉미산 등산 안내도’는 직진의 소로를 안내
한다. 젖나무(전나무) 벌목지대다. 흙과 낙엽이 푹신하여 오히려 걷기에 힘이 든다.
한 피치 오르면 임도가 지나고, 높은 절개지 비킨 왼쪽 가장자리에 색 바랜 산행표지기가 소로를 안내한다. 임
도에 둘러앉아 입산주 탁주로 목을 축인 다음 숲속에 든다. 후덥지근한 날씨다. 바람 한 점 없다. 모기떼와 하루
살이는 극성이다. 이곳은 아침에도 비가 내렸는지 풀숲이 흠뻑 젖었다. 그런 풀숲을 헤치느라 금방 바지자락이
휘감기도록 젖는다. 소나무 숲을 지날 때면 혹시 눈먼 송이가 있을까 불룩 솟은 낙엽더미마다 스틱으로 헤집어
본다.
수풀 무성한 헬기장을 지나고 갈잎은 일제히 사방에서 빗소리를 내는데 정작 우리는 땀을 눈 못 뜨게 비로 쏟
는다. 바윗길을 오른다. 심산에서 자란다는 까치고들빼기다. 그 무수한 꽃봉오리를 빗방울이 맺힌 걸로 착각했
다. 이런 기화이초를 볼 때면 여태의 숨 가쁨도 잊고 만다. 한참 들여다본다. 705m봉에 올라서고 정서진한다.
안개 속에 든다. 안개비가 내린다. 골 건너편의 봉미산 주변은 운무가 들락날락한다. 어서 가자 마음이 급해진다.
가도 가도 조망은 수렴에 가렸지만 풀숲 잠깐 누벼 봉미산이 명산이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긴 오르막에 숨
이 벅찰 무렵 봉미산 정상이다. 너른 헬기장에 큼직한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풀숲 헤쳐 찾아낸 삼각점은
‘용두 314, 2005 복구’이다. 비로소 하늘이 트인다. 용문산은 운무 위로 솟았고, 중미산은 망망대해 한가운데 고
도다. 북동쪽 금학산 주변은 운무가 군무를 춘다. 운무의 향연이다. 봉미산 남릉 811.5m봉은 암봉이니 더욱 조
망이 트이지 않을까? 배낭 벗어놓고 다니러간다. 왕복 1.6km다.
811.5m봉을 가는 도중 왼쪽 능선이 훤해 보여 내리 쏟았으나 조망이 무망이라 뒤돌아 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하여 주릉에 든다. 달음질한다. 811.5m봉. 암봉이다. 그러나 노송이 둘러 아무런 조망도 할 수 없다. 다시 봉미
산 정상이다. 자리 펴고 점심밥 먹는다. 어느덧 라면이 맛 나는 계절이다. 점심시간에도 주변의 운무는 무척 바
쁘다. 천지가 순식만변이다.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에는 ‘봉황이 자주 내린다 하여 봉미산이라 한다’는데
나는 그와 다르게 이해한다.
백운봉이 봉황의 머리이고, 용문산이 그 몸통이고, 대부산, 마유산(유명산)이 그 오른쪽 날개이고, 중원산, 도일
봉이 그 왼쪽 날개이고, 봉미산이 그 꼬리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12. 용문산
13. 용문산
14. 보리산 가는 도중의 동쪽 조망
15. 보리산 가는 도중의 동쪽 조망, 오른쪽 멀리는 대룡산
16. 용문산
17. 용천봉(?)
18. 중미산
19. 삼태봉, 그 왼쪽 뒤는 청계산
20. 가운데는 연엽산, 맨 왼쪽은 대룡산 녹두봉
▶ 보리산(△627.3m)
봉미산에서 북서쪽 주릉을 내린다. 엄청 가파르다. 더구나 빗물에 젖어 미끄럽기까지 하다. 걸음걸음 쩔쩔맨다.
하도 엉덩방아를 찧다 보니 내 엉덩이가 아니다. 암릉과 맞닥뜨린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젖은 바위라 직등이 어
렵다. 오른쪽 사면을 내린다. 선답의 인적은 햇낙엽에 가렸다. 우리가 새길 낸다. 길게 돌아 주릉에 오른다. 그리
고 다시 한 차례 쏟아져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로 삼산현이다. 이제 길이 풀린다. 산책길이 이어진다.
설곡리 다일공동체의 위수지역에 들어선다. 588m봉은 ‘나눔봉’이라고 표지판을 붙여 놓았다. 이후의 봉봉은 섬
김봉, 능력봉, 화해봉, 응답봉 등이다. 아울러 곳곳에 거룩한 성경의 가르침을 쓴 팻말을 세웠다. 644.5m봉은 Y
자 능선이 분기한다. 안개가 몰려왔다 몰려가곤 하니 방향이 헷갈린다. 지도 정치하여 나침반 확인하고 왼쪽으
로 간다. 잔 봉우리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따금 발로 수렴 걷어 운무의 향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636.7m봉 삼각점은 어렵게 판독하여 ‘406 재설, 76.8 건설부’이다. 617.6m봉에서는 왼쪽(서쪽)으로 직각방향
튼다. 하늘 가린 숲속 길이고, 사면 풀숲은 비에 젖어 누비기 꺼리니 그저 줄달음한다. 577.5m봉을 한 피치 내
리고 암릉과 만난다. 안전제일이라 메아리 님이 척후하고 오른쪽 사면을 깊이 내려 길게 돌아간다. 더러 너덜이
라 지나기 사납다. 주릉이 오르고 보니 직등이 더 안전할 듯싶다. 선답의 인적이 느긋이 오고 있지 않는가!
이윽고 보리산(나산)이다.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고 삼각점은 ‘405, 76.8 복구’이다. 키 큰 나무숲 둘러 사방
조망이 가렸다. 보리산부터는 잘 다듬은 길이다. 가파른 데는 계단 놓고 핸드레일을 설치했다. 이 잘 다듬은 길
은 ┣자 갈림길에서 오른쪽의 널미재로 가고 우리는 한갓진 능선 길을 직진한다. 보리산에서 20분쯤 간 610m
봉은 암봉으로 오늘 최고의 경점이다. 너른 암반이라 휴식하기 명당이다.
중미산은 여전히 망망대해의 고도다. 반공을 가린 화야산, 뾰루봉 연릉은 장릉이다. 북한산의 인수봉과 백운대
를 찾아낸다. 기경이다. 반갑다. 보고 또 본다. 610m봉을 지나고 613.0m봉 가기 0.17km 전에 ┫자 갈림길과 이
정표가 있다. 왼쪽이 블루 밸리 2.67km다. 왼쪽으로 간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이제야 시작된다. 암릉 절
벽의 내림 길이다. 절벽 왼쪽으로 밧줄이 길게 달렸다. 세 차례를 밧줄 잡고 주춤주춤 내린다.
지도도 그러하다. 암릉이 끝나면 잠시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다 급박하게 내리쏟는다. 진땀 뺀다. 잣나무 숲속
넙데데한 평원에 내리고 사면 쓸어 엷은 능선 잡는다. 엄나무, 산초나무, 산딸기 등 가시덤불을 헤친다. 여간 사
나운 야산이 아니다. 이정표가 무심하기 짝이 없다. 산허리 가로 지르는 임도와 만나고 임도 따라 내리자 하고
오른쪽 골로 간다. 임도도 잡목과 덤불숲에 막힌다. 뒤돌아 능선 마루금을 잡는다.
잣나무 숲을 누빈다. 오른쪽 산 아래는 블루 밸리 골프장일 터이니 왼쪽 멀찍이 비켜 내린다. 동물이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전선을 넘고, 목책을 넘어 블루 밸리 구내에 들어간다. 청화쑥부쟁이 가꾼 정원과 앵무
새 등을 가두어 놓은 간이동물원이다.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 주변의 표지판을 보니 ‘The Stay’의 9 BLOCK이
다. 아마 이들은 돈 주고 들어왔을 것. 우리 차림으로는 정문에서 시비하지 않을까 조신한 걸음 한다.
정문의 바리게이트는 무인통제시스템이다. 우리 말고 정문을 걸어서 들어오거나 나가는 사람이 있을 성 싶지
않다. 정문을 나서자마자 카카오택시 부른다. 목적지 설악면, 요금 6,000원, 택시 도착예정 7분. 오늘도 무사산
행을 자축하는 하이 파이프 나눈다.
부기) 설악면 돼지사랑 음식점을 또 찾아갔다. 나이 드신 내외분이 주인으로 홀 서빙을 담당한다. 밑반찬이 정
갈하고, 두껍게 썬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 또한 맛이 좋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가 보리산을 내릴 때 배낭이 무
겁도록 거둔 버섯이 진미다. 노루궁뎅이버섯, 큰갓버섯, 가지버섯. 삼겹살과 함께 구워먹는다. 특히 토실토실한
가지버섯은 부드러운 식감과 그윽한 향기가 일품이다. 버섯을 먹느라 고기는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21. 보리산 정상에서, 자연 님과 하운 님(오른쪽)
22. 멀리 가운데는 불암산, 그 오른쪽 뒤의 흐릿한 산은 북한산
23. 중미산
24. 삼태봉, 그 왼쪽 뒤는 청계산
25. 멀리 가운데는 북한산
26. 노루궁뎅이버섯
27. 큰갓버섯
28. 청화쑥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