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以心傳心)의 마음의 글
한승연작가의 <꽃이 지기 전에> 답평
임춘앵(林春鶯)
글 김광한
흔히 영화나 연극, 또는 작가가 힘들여 쓴 한권의 책을 평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잘못하다보면 그 작가가 쓴 내용의 다이제스트에 불과할뿐만 아니라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잘 못전달이 돼 오히려작품 자체가 폄하(貶下)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그 당사자가 갖는 예술적 가치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작가의 정신이 살아날 수도 있고 또는 신통치 않은 그저 그런 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한승연작가가 공들여 쓴 임춘앵과 그분의 조카 김진진 여사의 여성국극(國劇)에 얽힌 이야기인(꽃이 지기 전에)를 김영관 교수님은 그분의 예리하고 세심한 문학적 안목으로서 일방적이고도 주관적인 입장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짦은 글귀에 담아 한승연작가의 혼과 임춘앵, 그리고 당사자인 김진진여사 등이 모두 함께 부활하는 획기적인 효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평을 한 당사자가 작가이고 글과 접하는 시간이 많고 또 작가인 한승연작가와 친면관계로 인해 주관적인 입장에서 평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노파심을 완전히 불식시켰다는데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아시다시피 동족상잔의 폐허속에서 전국민들이 희망을 잃고 좌절과 실의에 빠졌을때 남도 예인 임춘앵은 그 천재적인 소리와 용모 그리고 섬세한 동작으로 여성국극을 창단했지요.흔히 창극(唱劇)이라면 소리꾼, 그것도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소리꾼 한둘이 나와 서 목울대를 잡고 관객을 향해 외치는 진부함에 벗어나 중국의 경극(京劇)도 아니고 일본의 가부기도 아닌 독특한 여성극을 만든 임춘앵과 그 후계자 김진진의 혼불나는 투혼은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그분들은 돈을번다는 어떤 트릿한 목적에 우선해서 남을 즐겁게 해주고 여기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예술의 기를 꽂고 싶어했던 순수한 사람들이었습니다.약아빠진 사람들은 이런 연극을 하지 못합니다.손해가 날줄 뻔히 알면서도 열심히 자신들의 분야에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분들은 아름답습니다.마음 속에 음흉한 욕심과 남을 중상모략함으로서 얻는 이득을 열심히 챙기려는 사람은 탈을 쓴 진짜 광대라고 할 수 있지요.
그 하나하나의 몸동작과 절규하는 소리는 대중들을 향해 외치는 소리라기 보다 이 땅의 한과 억울함을 하늘에 호소하는 백성의 소리요,그 백성의 소리를 대신하는 또 다른 메세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얼굴에 탈을 쓰고 나와 현란한 몸동작으로 사랑과 배신의 장을 그리고 있는 중국의 경극이 힘을 바탕으로 했기에 모든 출연자가 남자들로 이뤄진 반면에 임춘앵과 김진진의 여성국극은 여성으로 이루어졌지요.그래서 경극이나 가부기, 또는 남성들 몇이 나와서 목청을 뽑는 창극보다 더 세련이 되고 여성스러워서 많은 호응을얻었지요.
한때 국민의 대다수가 이 여성국극을 보고 희망을 키웠던 일이있었습니다. 춘향전을 각색한 옥중화(獄中花), 낙랑 공주와 호동왕자 등 그분들이 했던 내용들은 설움을 안고 살아가는 많은 백의민족의 아픔을 대신하는, 바로 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백성의 마음이었습니다.한승연작가만이 쓸 수있는 이 작품은 한승연 작가가 갖는 또 다른 한과 설움의 발산이요, 절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남는 것은 허망이고 빈 손인것을 잘아는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남도(南道)의 한,그 작가를 잘 알기때문에 김영관 교수님은 풍자에세이와는 전혀 톤이 다른 평을 하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좋은 글에는 좋은 평과 좋은 독자가 있어야한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는 독자 마당에서 한마디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