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게으름이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아주 약간의 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419쪽~421쪽까지..
제 4편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제 2장 일하초(逸話秒) 정홍수 記 中
[합숙 21일 특별수련]
포덕 91(1950)년 6*25 전란으로 영남으로 돌아오신 묵암 선생께서는
동암(東庵)방기용(方基用)선생의 주선으로 각처의 교인들이 힘을 합하여
고성군 회화면 녹명리에 안주하시게 되었다.
당시 아래채를 전교실로 사용하였는데,
이 집에서 인암(認庵김효진(金孝振)동덕의 제안으로
본인(丁弘洙)을 포함한 5명의 동덕이 묵암 선생님의
직접 지도 아래 처음으로 합숙 21일 특별수련을 실시하였다.
수련 일정은 포덕 93년 11월 5일부터 동월 25일까지였고,
시간표는 묵암 선생께서 일일이 짜주셨는데
새벽 4시 30분 기상하여 5시 기도 후 아침식사 때까지 연성을 계속하였고,
식사 시간은 1시간 20분이며, 15분의 휴식 등 저녁 8시 50분까지 세밀하게 짜여졌다.
첫 날
묵암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련공부란 한 마디로 고행(苦行)
즉
괴로움을 참고 견디어서 이겨내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 쓰고 먹고 즐기던 어육주초(魚肉酒草)를
근기(根氣)로써 금하고,
수족동정 역시 1시간, 2시간, 3시간이라도
꼼짝하지 않고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 수련이다."
"수련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돼!
성사께서 종도(從道)들에게 수도의 요체로 주신 말씀이
사람은 육체로써 살지 말고
주의로써 살라고 하셨으니
이신환성(以身換性)은 우리 교의 화두(話頭)다."
"수련에 도취되어 깊어지면 공연히 예민하고 시비하는 마음이 생기는 등 시험에 들게 되는데,
이럴 때 상호 맞대응하게 되면 모두 낙제다."
또
"수련시 주문을 외우는데,
우리 주문은 21자로 되어 있으나
그 중 8 자는 강령주문이고
13 자는 불망지사 본 주문이다.
오늘부터 각자 강령이 될 때까지는 8 자의 강령주문만 외워라.
천도교에 입교를 하니 절을 할 때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하는 등
'사람이 한울이라 하고
시천(時天)이라고 하니 왜 그런가?
이것은 모두 한울님이 내 몸에 모셔져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는 체험공부인 것이다.
그러니 처음 수련을 할 때
강령주문을 정성껏 외워
'내게 한울님이 계신다'
'내 몸에 시천(時天)이 되어 있다'고
느끼는 강령이 될 때까지,
즉
한울님이 알아줄 때까지
열심히 강령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강령 공부에 열중했으나 생각처럼 그리 쉽지는 않았다.
4일째 되는 날에야
다섯 사람 모두 강령이 되었다.
첫 관문을 통과한 우리는 낙오자가 없음을 안도하자,
묵암 선생께서는
"충분한 강령으로 한울님이 내 몸에 모셔져 계신다는 체험을 다 했어?"
하시면서 껄껄 웃으셨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강령은 재미로 모시는 것이 아니다",
"모두 한울님을 체험했으면,
강령이란 간혹 자기 몸에 기화상통이 잘 안되거나
몸이 무겁고 기분이 저하될 때 한 번씩 하는 것이지
강령을 호기심으로
하거나 너무 심하게 하게 되면 허령(虛靈)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니
앞으로 명심하고 주의하여야 한다."
"강령 체험을 했으니 이제부터는
본주문 (13자)에 힘써 주문 공부를 충실하게 하여라.",
"참사람(眞人)의 경지에 도달될 수 있도록 염념불망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21일 동안 하루 1 시간씩의 강화 내용과 독공수련 생활을 다 기록할 수는 없으나,
당시 묵암 선생의 수련 지도 방법과 주문 공부하는 절차에 대한 가르침을
오늘에 와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세세히 명찰하여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묵암 선생이야말로 오랜 세월 의암성사님의 면전에서 직접 공부하신
그 심법 그대로를 포덕교화의 현장에서 60만 영남 도인들에게 실천으로 보이시고 증언하며
조금도 쉬지 않고 펴시다 가신 위대한 지도자이시기 때문이다.
467쪽~469쪽에서....
청년으로 성장함에 따라 풍기는 이미지가 호랑이 상이라고도 하고
바위 위에 앉은 독수리 같다고 할 정도로 근엄하고 어딘가 모르게
상대방을 압도하는 위엄을 보여주면서 고이고이 자라나셨다.
...중략....
재기의 거사를 위해 다시 고국에 들어와서 독립운동을 도모하시다가 실패하고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그 곳에서 국제 정세도 살피시고
애국 지사 이상렬 씨도 만나고 칼 마르크스의 유물사관도 탐독하였으나,
그것으로도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책을 불태워버리기도 하였다.
그 곳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멸국신법(滅國新法))이라는
책을 하룻밤 동안에 통독할 정도로 독서력이 대단했으며,
***중국의 계몽사상가 량치차오(양계초·1873~1929)의 눈을 빌려 ‘청말 중국
지식인의 대한제국기 한국 인식’을 살폈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전이 치열했던
20세기 전환기, 약소국 지식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강’과
‘망국(亡國)’이었다. 당대 한국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량치차오는
망국의 근원은 침략국이 아니라 그 나라 안에 있다는 내재적 원인론을 강조했다.
그의 ‘망국 사학’은 사회진화론에 입각해 주변 약소국의 ‘망국’ 사례를 거울
삼아 ‘자강’을 강조하는 계몽사학이었다. 그는 〈멸국신법론〉
〈조선멸망의원인〉 〈일본병탄조선기〉 등 많은 논설들에서 대한제국의 황실과
양반·관리·귀족의 무능과 부패한 친일세력을 비판한 반면, 안중근 등 애국자들을
높이 평가했다.******
.....중략.....
이 때 국내 사정은 을사보호조약으로 급전직하로 망국의 어두운 기운이 감돌고 있어
자중정관하면서 실의에 차 분개하고 있을 즈음에
경남고성에서 눌암 황태익(黃泰益) 선생을 만났다.
***천도교 초대 교구장 지낸 황익태 선생
1879~1953, 독립운동가 , 천도교인, 해암 황용수의 부친
독립지사 눌암 황태익(黃泰益) 선생의 묘소(墓所)가 있고 선생은 천도교 초대 고성교구장으로서 1919년 4월 3일 마산시 진전면에서 교민들과 함께 삼진의거를 일으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일경에...*******
눌암 선생은 천도교가 보국안민의 대도임을 강조하면서
입도할 것을 누차 권유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 단체라고는 종교 단체만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데다
그나마 다른 종교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고
천도교만이 의암성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본 묵암 선생은 눌암의 지극한 정성에 감화된 나머지
동반 상경하여 의암성사를 뵙고 약 두 시간동안 면담하셨다.
이 때 의암성사께서는 도담은 전혀 하지 않으시고 시국담만 하시면서
"내가 22세 때에 장질 손천민(孫天民)에 의하여 입도하였는데,
****1857~1900, 전봉준 장군 노선과 극한대립, 최시형의 오른팔, 북접 보수파 대표적 지도자
나이 26 살 1882년 겨울에 동학 입도, 고을 이방 출신 문장가로 학식과 문장 뛰어남***
모발이 하얗게 된 오늘까지 이 놈의 세상이 끝이 안나니
보국안민이 장차 어찌될 것인가?"
하고 개탄하시는 것을 보고 감동되어 성사님 면전에서 입도식을 거행하였다.
이 때가 32세로 포덕 55(1914)년 6월 4일이었다.
입도 후 귀향한 묵암 선생은 일번치제 영시지중맹(一番致祭 永詩之重盟)의
믿음으로 수도에 정진하다가....
.....중략.....
의암성사는 그 후 74인의 대 두목이 참석한 중요한 자리에 특별히 묵암 선생을 참석시켜
'신용구를 내 곁에 있게 했으니 여러분은 왈가왈부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당부하시고 모든 중요 간부회의에 참석시키는 등 각별한 사랑을 베푸셨다.
....중략....
순회를 떠나기에 앞서 인사 차 성사님을 뵈오면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말씀과 함께
"가슴에 불을 끄지 않도록 하라.
가슴에 열이 식으면 안되니 정열을 쏟아 넘쳐흐르는
용기로 매사에 임하라"고 격려하셨다.
또한 순회를 다녀온 뒤에 의암성사를 찾아 인사 겸 문안을 드리면
"응, 잘 다녀왔소.
어째 가슴에 열은 식지 않았오?"
하면서 각별히 챙겨주셨다고 한다.
의암성사의 훈도 아래 묵암 선생의 도력은 일취월장하여 순회포덕에
가일층 정진하는 가운데 수도제일,포덕제일주의로써....
............중략....
483쪽의
고정훈님께서 쓰신 봉도사에서....
...... 중략......
스승님(묵암)은 대신사 심법을 가장 바르고 쉽게 터득할 수 있도록
순순(諄諄)히 타일러 주셨습니다.
"내 말이 아니다.
성사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이다.
해월신사님 법설이다.
대신사님의 성훈(聖訓)이시다.
한울님 말씀이다."
하시면서 높으신 도력으로써 .....
...........중략.....
"..............................................."날 닮아라."
연원윤리화(淵源倫理化)에 힘써라"
.....중략....
5/20,그렇지 않아도 지금 현재의 수도법에 조금의 새 바람을 생각하며
성사님까지의 수련법 터득에 최선을 다해 보려고예....
지금껏 해오고 있는 월산 김승복 선생님의 수련법에 이의를 제기해 보려고예.....
*** 영등포교당을 설립했던 그는 월산 김승복(1926~2004)을 만나면서 천도교의 깊은 수도세계에 눈을 떴다. 월산은 손병희 이후 끊길 뻔한 수도 전통을 치열한 수도를 통해 체계적으로 되살려 화악산수도원에서 수도를 전하다 간 ‘숨은 도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6/15,"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멀지 않은 곳에 빛이 있다는 것이니라"...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
호암수도원,
대신사님,
묵암 신용구 선생님,
학산 정갑수 종법사님을
뵙는 인연이 될 줄이야...
6/25, 시호시호 ... 퓨전공연 관람....
6/29,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호암수도원 입공식으로 향하는
그 걸음 걸음에 목표와 목적을 설정하다..
그리고
수련 기간 동안 내내
희망과 기쁨에 가득차서 큰 기대감만 고취되었다.
수련 3일째 되던 날........
혼자서 학산 정갑수 종법사님 묘소 참배를 다녀오다.
내 마음 그 깊고 깊은
그 소용돌이의 핵심에 있다는
그 적적(寂寂)한
그 자리
그 곳에 들고보니
대신사님과 학산 선생님 두 분께서
하나의 주문 단지를 들고 나타나시어 뵙다.
이 모두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도된 듯이
스스로 무위이화(無爲利化)되었다.
수련 시작 4일째 되는 날 대신사님과 학산 선생님 뵙다...
각철대오(覺哲大吾)하라...
자천자각(自天自覺)하라...
취락천(取樂天)이 네 아호이니라...
유일무이(有一無二)하고 만사여의(萬事如意)하게 하는
본 주문 열 세자만 담을 수 있는 단지(독)이니라..
대신사님과 학산 정갑수 종법사님께서 단지 하나를 들고 오셔서는
이것은 주문을 담는 단지(독)라고 말씀하시며
주문을 담아 보아라는 말씀에 본 주문 열 세자를 담다가
혹
실수로 스무 한 자를 담게 되니
두 분 다 동시에 똑 같이
스무한 자 주문을 골라 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수련 시작 6일째 되는 날 묵암 선생님 뵙다.
묵암 신용구 선생님께서 주신 이것으로써 포덕 원년을 삼으시라고 주신 말씀이....
여기서부터는 아직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이해를 구하고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