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바라보이는 초지대교가 강화를 육지와 연결하고 있다. 오른쪽 유명한 초지진이 있는 데, 선말 우리나라를 기웃거리는 양이와 왜인들과 겨루던 해안 포대가 당시의 긴장을 말해주는 듯하다. 중앙의 등대가 참 멋없이 지어졌다. 관광 한국의 길목이자 첫들머리인 이곳의 등대가 저렇게 추레해서야 관광한국의 길은 요원할 것이다.
강화도 서쪽 석모도 낙가산에 있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4(635)년에 희정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주산인 낙가산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의미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관대무변함을 상징하며, 절 이름은 보문사라 하였다.
강화 보문사 일주문
조용해야할 산사의 입구가 웬 식당 천지다. 삼산면 석모도가 연륙된 후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모양인 데 당국에서는 절측에만 맡기지 말고 산사 주변 정비를 깨끗이 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도 좀 적극적으로...보문사는 한국의 삼대 해수면관음 도량이라 하지 않던가?
인천에서 일찍 출발하였지만 도착시간이 12시가 다 된다.
중화로 먹은 벤댕이 무침이 인삼 막걸리 안주로는 아주 그만이다.
일주문 아래 신도 주차장 옆에 자라는 산딸기 나무라는 데 복분자와는 다른 종이다.
맛도 시금털털하고...보통은 애주가들이 술에 담가먹거나 한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엊그제 지나간 A급 태풍 '링링'의 상처가 약간 참혹하다.
산사를 오르기는 약간 가파르다.
길가의 암석을 보니 모두 초기 화강암으로 보이는 매우 단단한 돌들이다.
절집 앞에는 태풍 피해보수도 할 겸 무슨 공사가 한창이다.
오른쪽 나무에 가린 종무소는 시멘트 건물이다. 이젠 절집들도 모두 시멘트로 짓는 경우가 많다.
보문사 중수기를 담은 돌비가 맨 먼저 맞아주고
감로다원 / 차 한 잔 나누는 운치가 있어야 할텐데 오늘은 조금 바쁘다.
법음루
법고를 두드리는 누각이다.
왼쪽 와불전과 사리탑을 모신 야외 오백나한전을 지나
주 법당인 극락보전과 삼성각으로 다가서다.
범종각
주 법당인 극락보전 뒤로 마애관음보살상이 정상 부근 숲에 가려 있다.
약간 바쁘지만 마애관음상을 친견하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
시멘트로 지어진 종무소
목조 건물은 멋있기는 하지만 화재에 취약하여 문제가 있다.
마애불상 가는 계단 길 들머리에서 한 호흡을 줄이고
마애석불까지 돌계단을 쌓은 시주불자들의 명단이 적힌 관음성전계단불사공덕비
약간 가파른 이 계단을 오르려면 무릎이 튼튼하지 않으면 매우 힘들다.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안내판
약 20여분 오르면 황금 연등이 걸린 관음성전에 도착한다.
남해 보리암이나 양양 낙산사 해수면 관음상 보다는 남성적이다.
마애상인 것도 다르고, 비록 오래된 작품은 아니지만(인천 유형문화재 제29호)
눈썹바위 아래 투박하지만 서민적인 모습이 매우 친근하게 보인다.
관음성전에서 내려다본 보문사
미세 먼지가 가득하여 시계는 썩 좋지 않다.
올라오는 재가불자들이 관음상에 돈수팔배 올리고 불경을 낭송한다.
탐방자도 시주 조금 올리고 돈수삼배 드리다.
나중에 올라온 둥이녀석들 인증샷!
마애관세음보살 앞에서 제 아빠가 찍은 그림이다.
내려와서 극락보전의 삼존불께 인사 올리고
보문사 석실을 돌아
보문사 석실 내력 안내문
와불전에서 열반하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 돈수삼배를 올리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사리탑과 야외 오백나한전
주차장에 보호되고 있는 구부러진 소나무
곧은 나무가 곱을 때 수없이 많은 고통을 간직한 소나무다.
강화도 관광안내도
돌아오다 들른 강화 씨사이드 리조트, 아이들이 좋아하는 야외 썰매장이다.
보통의 야산에 자연을 훼손해가며, 많은 돈을 들여 놀이시설을 하는 세상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첫댓글 강화 보문사에는 몇번 가보았는데 사진을 매우 소상하게 잘 찍어 올려서 또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