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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순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 정신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예배의 순서를 이루고 있는 예배의 요소들과 그것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여된 채 예배를 전도나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이려는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의 본질을 상실한 예배는 참 된 예배라 할 수 없습니다.
예배 정신과 예배 순서는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알고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는 의식(儀式)으로서의 예배와 삶으로서의 예배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의식으로서의 예배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단체) 예배입니다. 이 의식으로서의 예배는 순서가 있으며 예배자는 예배 순서에 대한 의미를 알고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 의식과 예배 순서를 통틀어 '예전'(禮典, liturgy)이라고 합니다. 의식으로서의 예배에는 일정한 형식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드리는 예배에서는 형식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예배에서는 예배의 질서를 위해 예배의 어떤 틀(형식)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은 통성으로 기도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찬송하고, 또 일부 사람들은 성경을 소리내어 읽는다면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일찍이 예배 순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바른 예배 정신을 강조함과 동시에, 예배 순서를 정하여 질서에 따라 예배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배 순서의 중요한 항목들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배를 위한 준비
예배가 시작되기 전,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공손하고 엄숙하고 정숙한 태도로 서로 인사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대화를 중지해야 합니다.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모였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 모인 것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강의실이나 공연장에 모인 경우와는 다른 것입니다.
예배하려고 예배당에 들어 갈 때에 예배하는 곳은 특별한 곳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온 것도 아니요, 세상 일을 하기 위하여 온 것도 아닙니다. 만유의 대주제 영광과 은혜의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에게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예배 시작 전에 미리 예배당에 들어와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2. 전주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예배에 합당하도록 준비할 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경건하게 예배하기 위하여 기도와 묵상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들이 기도로 준비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배자들이 모여들고 있는 동안에 오르간이나 피아노로 전주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예배실로 들어오면서 내는 소음을 막아주고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전주는 연주하는 사람의 음악적 기술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공예배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위한 것입니다. 전주곡은 언제나 조용한 음률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 안이 조용해지고 사람들이 기도로 예배를 잘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예배 전 10분 정도 전주곡이 연주되는 동안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묵도로 예배를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주는 예배 시작 2분전에 끝나야 합니다.
3. 묵도
전주에서 묵도는 이미 시작되었으므로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선언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묵도는 원래 기독교 예배의 순서에 없었던 것입니다. 묵도는 전주가 계속되는 동안 묵상으로 기도하는 순서입니다. 성경을 봉독한 후 또는 설교 후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순서는 기독교 예배에 있었습니다.
4. 예배의 선언
예배를 인도하는 자는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예배 시작을 선언하기보다는 예배로 부르는 성구를 읽은 후, '이제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두어 우리의 하나님께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종을 울림으로 예배 시작을 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5. 예배의 부름(call to worship)
예배의 부름은 예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예배로 부르는 것입니다. 예배의 부름은 '예배에의 부름' '예배로의 부름' 또는 '예배 초청'으로 말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배하게 된다는 것을 예배자들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 이 부름의 목적입니다. 성경에는 예배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하게 하고 그를 예배하도록 부르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시편은 예배의 부름을 위한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예: 시편 34:1-3, 84:1-4, 92:1-2, 95:1-3, 95:6-7상, 100:, 103:1-5, 113:1-3, 117:, 145:1-4, 8-11, 17-21등). 이사야 12:5-6, 40:28-31, 42:5,6,10상, 44:22,23, 55:6-7, 61:10-11과 예레미야 33:2-3과, 다니엘 2:20하-22 등도 예배하도록 부름에 사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이 순서는 칼빈에 의해 성구 낭독으로 예배가 시작된 것으로 개신교 예배의 역사에 오랫동안 지속해 온 순서입니다. 예배하도록 부름에 사용되는 성구는 몇몇 구절들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6. 기원(invocation)
기원이란 예배의 첫 번째 기도로서 예배 가운데 성령의 임재하심과,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수 있는 예배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간단한 기도입니다. 기원은 회중들의 형편과 사정을 아뢰고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반적인 기도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열납을 간구하는 간단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7. 경배의 찬송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것으로 모두 일어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서가 바로 경배의 찬송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예배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인간들은 당연히 일어서서 하나님을 우러러보면서 찬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이 때에 부를 수 있는 찬송은 반드시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경배와 찬양의 뜻이 담긴 찬송이어야 합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속하사 거룩한 존전에 예배하도록 허락하시고 불러 주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목적으로 작사 작곡된 찬송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내 영혼아 찬양하라'(19장), '다 감사드리세'(20장), '다 찬양하여라'(20장), '거룩 거룩 거룩'(9장), '기뻐하며 경배하세'(13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53장)등이 이 순서의 찬송으로 적합한 것입니다.
8. 시편 교독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에서 성경을 읽는 순서를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칼빈과 그 후계자들은 예배 때마다 신구약 성경을 읽었는데 매주일 연속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설교를 위한 본문 외에 성경을 읽고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성경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예배 중에 성경 봉독은 설교 본문 외에는 읽지 않게 되어졌습니다.
오늘날 시편을 교독하는 순서가 있는데, 과거에 성경 봉독과 시편으로 찬송하던 것을 성경이 번역 보급되고 찬송이 개발되어 부르게 되면서 예배에서 성경 봉독과 시편 찬송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예배의 전통에 자리 잡고 있었던 성경 봉독과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의 소중함을 간직하려는 뜻에서 예배 시에 시편 교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교독', '성시 교독'이라는 교독문은 시편 이외에 다른 성경도 들어있기 때문에 '성경 교독'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에서 성경 봉독과 시편 찬송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9. 죄의 고백과 용서를 비는 기도
예배에서 죄의 고백과 용서를 비는 기도가 있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서 있는 예배자는 부끄러운 자아의 모습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임재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예배하는 자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은총을 간구하지 않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은 불가능합니다. 죄악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시 66:17-18). 예배자는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을 뵈올 때에 지체 없이 죄를 자백하고 자비와 긍휼과 은총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죄의 고백을 위한 기도문을 주보에 실린 것으로 읽으면서 기도할 수 있고, 또 인도자가 대표로 할 수 있으며, 회중이 다같이 자기만 알 수 있게 마음속으로 또는 작은 소리로 죄를 자백하고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죄의 고백과 용서를 비는 기도는 예배 가운데 있어야 할 순서로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이 기도는 개혁 교회 예배의 중요한 순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칼빈과 낙스(Knox)는 예배 순서에 죄의 공동고백을 두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진심으로 자백할 때까지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 열납되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죄의 고백 기도 대신에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기도하는 내용이 있는 찬송가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찬송 대신에 죄의 공동 고백으로 시편을 교독할 수 있습니다. 시편 25:6-11, 40:11-13, 시편 51편 등은 이 목적에 적합합니다. 히브리 시 형식으로 기록되지 않은 성경은 교독보다는 일제히 봉독해야 할 것입니다.
죄를 자백한 후에는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죄의 고백과 용서를 비는 기도 다음에는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10. 신앙 고백
예배에서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 신앙의 고백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됩니다. 믿음의 대상과 믿는 내용을 바로 알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시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할 때, 구원에 대한 확신이 더 강화됩니다.
둘째,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고백은 하나의 믿음을 고백함으로서 고백하는 자들에게 거룩한 공교회의 구성원이라는 영적 유대의식을 공고하게 해줍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흩어져 있어도 같은 믿음을 고백할 때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예배 시에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대해 우리의 믿는 바가 무엇인지 알리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 고백은 불신앙적 사조와 가치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의미 있는 일인 동시에 전 세계를 향한 진리의 선포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고백은 우리의 믿는 바를 마음으로 확신하고 입술로 시인함으로써 하나님이 열납하실 수 있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11. 죄사함에 대한 말씀
예배자들이 참으로 죄를 고백했다면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할 수 있도록 죄사함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깨워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순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하는 것 같은 면죄의 선언이 아닙니다. 목사는 사람들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선언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죄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예배자들이 그리스도의 충족한 대속과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에 의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할 수 있는 말씀의 보증은 받을 수 있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이 순서를 '사죄의 선언'이라고 말하지 말고, '죄사함의 확신' 또는 '사죄의 은혜를 보증하는 말씀'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이 순서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말씀으로는 시 32:1-5, 85:1-2, 86:4-5, 103:1-3,12, 130:3,4; 사 53:10,11, 55:7; 롬 8:1; 엡 1:7; 요일 1:9 등이 있습니다.
사죄의 은혜에 대한 찬송을 불러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는 사죄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보증하는 말씀을 전하여 사죄의 확신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를 고백하는 그의 자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분이심을 이 순서를 통해서 회중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찬송으로 할 때에는 찬송가 속죄(182-202장)와 회개와 사죄(330-339장)에 관련된 찬송가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12. 감사의 찬송(또는 영광송)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보증하는 말씀을 들은 회중은 그 은혜에 감격하여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찬송으로 응답하는 것이 바로 이 순서인 것입니다. 이 때에 부를 찬송은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그 위대하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이 영광송을 '응답송'이라고도 합니다. 이 영광송은 성가대가 하고 이어서 회중이 감사의 찬송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서 이 영광송(gloria parti)은 초대 교회 때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의 예배에서도 지켜오던 순서입니다. 그 내용은 사죄의 은총을 인한 감사와 기쁨으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영광을 돌리는 회중들의 감사와 기쁨의 표현이 담긴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찬송가 중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4장), '주 성부 성자 성령께'(5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6장)등이 영광송으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광송으로 분류된 찬송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특별히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이 적합할 것입니다.
13. 헌상(offering)
헌상(또는 봉헌)의 순서는 예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입니다. 헌상은 단순히 돈을 바치는 헌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헌상의 순서는 교회의 운영이나 교역자의 생활비를 위해 돈을 모으는 순서가 결코 아닙니다. 미리 정성껏 준비한 헌금과 감사의 마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자 하는 헌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헌상의 순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은 후에 응답의 일부로 설교 다음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헌상의 순서가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는 예배의 첫 부분에 배치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헌상은 하나님의 말씀(설교)을 듣고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 헌상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예배자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상한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헌상 시간에 거두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도록 신속하고도 질서 있게 거두어야 합니다. 헌상이 진행되는 동안 봉헌 찬송을 연주하거나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누가 무슨 명목의 헌금을 하였다는 것을 봉투에 쓰인 것을 일일이 읽고 축복해 주는 기도를 하는 목사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헌상 기도는 헌상한 자들을 위한 축복보다는 하나님께서 받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귀히 쓰임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헌상은 돈만 바치는 것이 아니고 정성껏 준비한 헌금에 감사의 마음과 헌신의 소원을 담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봉헌 기도를 통해 이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봉헌 자들에게 신령한 은혜와 선행을 위한 자원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14. 중재 기도(prayer of intercession)
중재 기도는 '목회 기도'(pastoral prayer), '회중을 위한 기도'(congregational prayer), '중보기도'라는 말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이 기도는 예배하기 위하여 모인 회중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목회자나 기도를 맡은 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목회자가 교인들의 삶의 정황을 알고 그 가운데서 성도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염려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과 은총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질병과 재난과 가난과 억눌림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모인 회중뿐만 아니라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신앙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환난과 박해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선교사들과 목회자들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회중은 앉아서 기도를 듣기만 하지 말고 목회자의 기도가 자기 자신의 기도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여 기도에 동참하며, 기도가 끝날 때에 '아멘'으로 자기의 기도가 되게 해야 합니다. 진실로 기도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15.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로 회중이 함께 기도하는 순서는 개혁교회 예배에 일찍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칼빈의 예배순서(1542)와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1644)에 보면 중재 기도에 이어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16. 성경 봉독
1645년에 나온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봉독하는 이 시간에는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한 장씩을 읽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번역되고 인쇄되어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성경을 가지고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이 순서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고 설교의 본문만을 이 순서에서 읽고 있습니다. 개신교 예배에서 성경을 봉독하는 순서를 가진 취지를 살려 이 순서가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읽고 나서 간단한 설명이 있은 후, 시편이나 찬송가로 찬송하고, 신약 성경을 읽은 후에도 그렇게 한 개혁주의 예배 전통이 회복되었으면 합니다.
17. 성가대의 찬양
예배에 있어서 성가대의 기능을 바로 이해하고 있는 찬양대원이 많지 않고, 예배에 적합한 성가곡을 선택하는데 주의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휘자도 드뭅니다. 찬양대의 기능은 회중을 즐겁게 하거나 성가 연주와 합창의 아름다움이나 흥겨움이나 기교로서 좋은 인상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대는 성가대의 찬양에 회중이 마음으로 동참하여 하나님께 찬양하도록 성가의 가사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똑똑하게 불러야 합니다. 회중이 성가대가 어떤 내용의 찬양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곡조만 즐기는 것은 성가대와 회중이 다 잘못하는 것입니다.
영감된 시편의 가사를 사용한 훌륭한 찬송가가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사용할 때에는 해당되는 시편을 펴서 그 내용을 보면서 찬양을 듣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설교 제목에 잘 맞는 좋은 성가도 있습니다.
18. 설교 전 기도(照明을 위한 기도)
설교자는 설교를 시작하기 전 조명을 위한 기도를 짧게 드려야 합니다. '성령님이여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19. 말씀의 선포(설교 또는 강론)
설교 이전의 모든 예배 순서들은 설교를 듣기 위한 준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있어서 각 순서들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의 다른 요소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들을 강조함으로써 설교의 중요성을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주의를 예배의 본질적인 의미에 집중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기독교 예배의 필수적이며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경건한 목사가 설교할 때에 듣는 자들에게 회심과,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양육되며, 시험과 여러 가지 고난에서 믿음으로 굳게 서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격려와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통하여 진리를 배우고 깨달으며, 모든 과오에서 벗어나며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사랑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예배와 삶의 심장이요 중심부를 차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기도와 성경 연구로 설교를 잘 준비해서 성령의 기름부어주심을 받아 잘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생명력 있는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생명력이 없는 설교는 지식은 전달할 수 있겠지만 생명을 전달하고 생명을 살리는 설교는 되지 못합니다. 회심과, 변화와, 성장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20. 설교 후 기도
설교 전 기도와 설교 후 기도는 장로교 예배의 오랜 전통에 자리 잡은 순서입니다. 설교 후 기도는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결실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말씀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단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설교를 반복하는 기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때에 하는 기도를 적용을 위한 기도(prayer for application)라고도 합니다.
21. 감사와 헌신의 찬송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를 통하여 선포된 후 그 말씀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은총에 감사하며 말씀대로 헌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말씀의 선포에 대한 회중의 공적 응답으로 적합한 찬송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22. 파송의 말씀(오늘의 위탁)
파송의 말씀은 예배 끝에 목사가 몇 마디 말로서 교인들로 하여금 죄로 어두워진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는 일과 주님을 위하여 살아갈 것을 요구하며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이 파송의 말씀과 축도로 예배를 마치는 것은 여러 세기 동안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장로교 예배에서 시행해 왔습니다. 파송의 말씀은 설교 내용과 관련된 한 문장이나 두 문장이면 됩니다. 예를 들면 "분쟁과 혼란의 세상으로 평강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려 나아가십시오"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이 목적에 적합한 성구를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예배자들은 예배하는 회중으로부터 해산하여 나갈 때에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나아가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나아간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데 이 파송의 말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23. 축도(benediction)
개신교 예배에 있어서 예배 끝에 목사의 축도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 예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목사가 없는 경우는 기도나 주기도로 끝을 맺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축도가 있은 다음에 성가대의 응답송(영광송)과 반주자의 후주로 예배를 마치게 됩니다.
축도(祝禱)란 문자 그대로 '축복하는 기도'입니다. 축도를 뜻하는 영어 단어 '베네딕션'(benediction)은 라틴어 동사 '베네디케레'(benedicere)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bene'(well)와 'dicere'(say)의 합성어로 '행복을 빌다'(wish well to), '축복하다'(bless)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축도와 관련해서 오늘날 목회자를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꼭 같은 인간 중보자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목사라고 해서 일반 신자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축복권과 저주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 중보자라는 신분과 제사, 중보기도, 축복 등과 같은 인간 중보자로서의 고유한 활동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폐지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은사에 따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기능을 감당하는 것은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회자가 목양, 가르침, 리더십 발휘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는 구약 때의 제사장과 같은 인간 중보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축복의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예배 시에 축도하는 것은 구약의 제사장이 강복 선언으로 복을 분여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축도는 목회자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중보자적 신분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축도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복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축도하는 목회자가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축도는 예배를 마감하면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염원을 축도의 형태로 상기시키며 기원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축도가 성도들의 심령에 영적 유익이 되려면 예배를 끝내기 전에 삼위일체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그 복을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어야 축도를 통하여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을 목마르게 구해야 축도를 통한 신령한 복이 우리의 심령에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가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내용으로 축도를 할 때, 손을 어떤 형태로 들든지 축도의 끝말이 어떠하든지 그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3:13은 원문에 의하면 기원 형식의 축약된 문장으로서 "너희 무리와 함께"라는 말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있을찌어다'를 덧붙이건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를 덧붙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부가적 표현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영적 효능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3:13의 축도가 강복 선언이냐 강복을 기구하는 기도이냐 하는 점을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의 주석에서 "이 축도야말로 모든 은혜를 완전무결하게 받도록 요망하는 불가형언의 무궁무진한 복리를 기구하는 기도이다"라고 했습니다. 폴 바네트는 그의 고린도후서 강해(BST시리즈, IVP)에서 고린도후서 13:13을 기도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서신서를 아름다운 기도로 끝내고 있는데 그 기도가 우리에게는 아주 귀에 익은 것이기 때문에 그가 말하고 있는 요점을 놓칠지도 모른다…이 기도를 통해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그들의 '고침'은 그들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통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공격성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질투를 없애버리며, 또한 성령에 의해 생겨난 교제는 비통함을 멸해 버린다.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실 때, 고린도교회와 모든 문제 많은 교회에 나타나는 문제들은 해결될 것이다."
성경 주석가들뿐만 아니라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도 고린도후서 13:13을 기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서공회가 펴낸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고후 13:13)로 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사에서 펴낸 [현대인의 성경]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로 번역했습니다.
축도를 목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복을 그 백성 위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언(혹은 '복이 있으라'고 명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축도를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명하여진 구약시대 제사장 직무의 일부인 만큼 신약 시대 목사의 직무의 일부도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원문에는 없는 축도의 끝말("있을찌어다")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일방적인 해석으로 보여집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직무를 맡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시에 하는 축도를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신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기구하는 기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축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당신의 백성을 축복하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복 주시고자 하시는 뜻을 그의 백성들에게 상기시키면서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복을 비는 기원을 하는 것입니다. 축도할 때 서양의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민수기 6:25-26 말씀으로 할 수 있으며, 한국교회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고린도후서 13:13 말씀으로 축도할 수 있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3:13에 있는 사도 바울의 기원으로 축도할 경우 한글 성경에 있는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있을찌어다"를 "함께 있기를 축원하옵나이다"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13 말씀을 복을 기원하는 기도로 보면서도 일반 기도와 구별하고 싶으면 "함께 있어지이다"라고 하면 더 나을 것입니다. "있어지이다"라는 말은 선언이나 명령이나 간곡한 당부의 뜻이 아니고 분명한 기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교인들은 목사의 축도를 받기만 하면 멍하니 앉아 있어도 자동적으로 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축도하는 목사는 손을 들어 '…있을찌어다'하면 복이 내려지게 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축도하는 목사나 축도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피차 축복하는 간절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인 하나님의 자녀들의 개인적 가정적 교회적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교통의 복을 내려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이 복을 개인의 심령과 공동체적 삶 가운데 넘치게 내려주시기를 축도자와 회중이 간절히 원해야 축도의 시간이 복된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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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 및 성도의 교제
광고를 예배 순서 중에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데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광고는 예배의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고는 예배 전이나 예배 후에 하고, 가급적이면 주보에 광고를 실어서 교인들이 읽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보에 싣지 못한 광고는 게시판에 부착하거나, 예배 시작 10분전에 알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교인들은 최소한 10분전까지는 예배실에 들어와서 예배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 전에 광고가 있을 경우에는 전주를 간단히 하면 될 것입니다.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예배 순서는 개신교 예배에서 갖는 일반적인 순서들을 고찰해 본 것입니다. 예배 순서에 드라마, 춤, 영상 매체를 통한 메시지, 간증 등 여러 가지 순서를 갖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예배의 요소가 될 수 없는 것들이 예배 순서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감동을 받는다고 해서 예배 순서에 이런 저런 것을 들여와서는 안 됩니다. 중생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역사와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만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 기울이는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 가지 예배 순서를 살펴보았는데, 그 순서들이 반드시 다 예배에 들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순서들은 하나로 묶을 수 있으며,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매 예배 시에 하지 않고, 성례를 거행하는 예배 시에만 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각각 1장씩 봉독하지 않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 순서를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 제시된 예배 순서를 기본적으로 따르되 필요한 것은 추가하고(예를 들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 구약과 성경을 읽는 것은 설교할 본문과 교독문으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무반주로 시편을 노래하는 것은 찬송가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 순서가 지니는 의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부록
예배 순서 참고 1
1542년에 작성된 칼빈의 예배 순서
•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아멘"
• 고백의 부름과 기도
• 시편 찬송 (무반주)
• 조명의 기도
• 성경 봉독 (설교할 본문 봉독이 아닌 Scripture lesson)
• 설교
• 중재 기도, 주기도로 끝마침
• • • •
• 성찬식을 위한 기도
• 사도신경으로 신앙 고백
• 성찬 제정의 말씀 (고전 11:23-29)
• 훈계와 권면
{"여러분의 심령을 주님께로 들어 올리십시오"(Susum corda- 3세기부터)라는 말을 포함함}
• 성찬식 거행
(성찬식이 거행되는 동안 성경을 읽든지 시편을 찬송함)
• 감사의 기도
• • • •
• 아론의 축도 (민 6:24-25).
예배 순서 참고 2
1644년의 웨스트민스트 예배모범
• 예배의 부름 (Call to worship)
• 기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와, 예배자들의 용납하심과, 말씀을 통 한 복주심을 구함)
• 구약 성경 봉독
• 신약 성경 봉독
• 시편 찬송 (무반주)
• 기도 (고백, 중재, 조명을 위한)
• 설교
• 감사와 중재 기도
•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 • • •
• 권면과 초청
• 성찬에 사용할 떡과 포도주의 봉헌
• 성찬 제정의 말씀 (복음서나 고전 11:23-27)
• 성찬을 위한 기도 (분병 분잔 전 기도)
• 떡과 잔을 나눔
• 권면
• 감사의 기도
• • • •
• 시편 찬송
• 축도
예배 순서 참고 3
Robert L. Reymond 박사의 조직신학에서
• 예배의 부름
(인도자의 말로, 시편 등 성구를 읽음으로, 성가대의 찬양으로)
• 경배의 찬송
• 기원
• 주기도
• 구약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의 주권과 예배자들의 죄를 깨닫게 하는)
• 죄의 고백과 용서를 위한 기도
(인도자가 기도할 수 있고, 한 목소리로, 또는 기도문을 교독함으 로 할 수 있음).
• 용서의 확신을 돕는 말씀
• 감사의 찬송
• 헌상
• 중재 기도
• 신약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가르치는)
• 설교 전 찬송
• 조명을 위한 기도
• 설교 본문 봉독
• 설교
• 적용을 위한 기도
• 찬송
• 축도
• • • 성찬식 • • •
• 찬송
• 초청과 주의
(세례 받지 않는 사람들은 떡과 잔을 받을 수 없다는 것).
• 감사의 찬송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 사도 신경으로 신앙 고백
• 성찬 제정의 말씀
• 분병 분잔 전 기도
• 떡을 나눔
• 잔을 나눔
• 감사의 기도
• 찬송
• 축도
예배 순서 참고 4
황성철 지은 예배학에서
• 전주
• 예배의 선언 (예배의 부름)
• 개회 찬송 (경배의 찬송)
• 예배의 기원
• 참회의 기도
• 사죄의 선언
• 신앙 고백 (사도신경)
• 성시 교독
• 찬송
• 목회기도
• 성가대의 찬송
• 말씀 (설교)
• 설교 후 기도와 찬송
• 헌금
• 교회의 소식 (성도의 교제)
• 축도
예배 순서 참고 5
양의문교회 주일예배
• 예배의 부름과 선언 인도자
• 응답송 (입례송) 성가대
• 기원
• 경배의 찬송
• 성경 교독 (성시 교독) 다같이
• 자백과 간구 다같이
• 신앙고백 (사도신경) 다같이
• 영광송 성가대
• 감사의 찬송 다같이
• 성경 봉독 설교자
• 봉헌 및 중재 기도 인도자
• 주님의 기도 다같이
• 성가대 찬양 성가대
• 설교 전 기도 설교자
• 설교 설교자
• 설교 후 기도 설교자
• 감사와 헌신의 찬송 다같이
• 축도 인도자
예배 순서 참고 6
제81회 총회 개회예배 (통합측) 1966. 9. 12 소망교회
• 예배 선언
• 전주
• 예배의 부름
• 응답송 ------------------------------- 성가대
• 예배의 기원
• 경배의 찬송
• 언약의 확인 (교독문)
• 참회의 기도
• 침묵의 기도
• 용서의 확신
• 영광송
• 중보기도
• 주님의 기도
• 구약의 말씀
• 신약의 말씀
• 찬양 --------------------------------- 성가대
• 설교 전 기도
• 말씀의 선포
• 설교 후 기도
• 주님의 만찬
신앙고백 - 사도신경 -
성찬의 찬송
봉헌
제정의 말씀
• 성령 임재 기원
• 떡을 나눔
• 참예 선언
• 성만찬 참여
• 잔을 나눔
• 참예 선언
• 성만찬 참여
• 감사의 기도
• 감사의 찬송
• 파송의 말씀
• 축도
• 후주
• 성도의 교제 (광고 및 성도의 교제)
송용조 목사(양의문교회, 고려개혁신학연구원 명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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