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군 사관학교를 자운대로 통합한다고?
나는 끝까지 반대한다.
나는 육군사관학교에서 훈육관으로 근무했고, 자운대 육군대학에서도 전략학처장 등으로 8년 동안 근무했다.
누구보다 두 곳의 현실을 잘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묻고 싶다.
정말 자운대를 알고 하는 이야기인가.
지금 자운대에는 이미 20개가 넘는 군 교육기관과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다.
합동군사대학교(육군대학·해군대학·공군대학), 국군의무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 정보통신학교, 종합군수학교, 전투지휘훈련단 등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런 곳에 다시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까지 한곳으로 모으겠다고 한다.
현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발상이 아니다.
국방부는 대전이 KAIST를 비롯한 첨단과학의 중심지이므로 미래전 교육에 유리하다고 말한다.
좋다.
그렇다면 묻겠다.
왜 지금 있는 자리에서는 안 되는가?
왜 반드시 통합해야만 가능한가.
민간 교수 비율을 높이겠다고 한다.
국립대 수준으로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첨단 연구시설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왜 통합해야만 가능한 일인가.
예산만 있다면 지금 각 사관학교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이유를 끼워 맞추는 것처럼 들린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이전 비용만 수조 원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 막대한 예산이면 지금 있는 사관학교에 최첨단 교육시설을 구축하고 세계적인 민간교수를 초빙하며 AI·드론·우주·사이버 교육체계를 얼마든지 강화할 수 있다.
왜 기존의 장점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려 하는가.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시설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전통은 만들 수 없다.
건물은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은 이전할 수 없다.
육군사관학교에는 육사혼이 있다.
해군사관학교에는 바다를 품은 해사의 정신이 있다.
공군사관학교에는 하늘을 지키는 공사의 문화가 있다.
이것은 교과서 한 권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4년 동안 같은 생활을 하고, 같은 가치관을 배우고, 같은 전통을 몸으로 익히며, 같은 자부심을 가슴에 새길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부대를 버티게 하는 힘은 무기가 아니라 이런 정신력이다.
그 정신을 하나로 섞으면 무엇이 남는가.
건물은 남아도 혼은 사라진다.
국방부는 미래전과 합동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것이 미래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40여 개국의 전쟁터를 답사했고, 합참에서 군사전략을 담당했으며, 미국 육군의 핵심 전투실험기관인 레번워스에서 연구했다.
또 전쟁사 관련 저서를 50권 가까이 집필했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미래전은 전문성을 없애는 전쟁이 아니다.
전문성을 극대화한 뒤 그것을 하나로 융합하여 싸우는 전쟁이다.
무딘 칼 세 자루를 묶는다고 명검이 되지 않는다.
육군은 육군답게, 해군은 해군답게, 공군은 공군답게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뒤 함께 싸울 때 비로소 진정한 합동성이 완성된다.
전문성이 약해진 통합은 합동이 아니라 평균화이고, 결국 하향평준화다.
반란을 막기 위해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정말 그런가.
일부 정치군인의 잘못 때문에 대한민국 군의 뿌리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인가.
어느 시대든 정치군인은 있었다.
앞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조국을 위해 평생 헌신하는 대부분의 군인들까지 함께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병을 고치겠다고 심장을 들어내는 의사는 없다.
또 하나 묻겠다.
합동성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사관학교만 통합하려 하는가.
대한민국 장교의 대부분은 ROTC, 학사장교, 간부사관, 전문사관 등 다양한 양성과정을 통해 임관한다.
그들이 장교의 절대다수다.
그들의 합동성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논리대로라면 모든 장교 양성과정을 하나로 통합해야 하지 않는가.
왜 사관학교만 대상인가.
처음부터 논리가 맞지 않는다.
외국 사례를 말하며 캐나다를 예로 드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캐나다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으며 안보환경 자체가 다르다.
국가안보는 다른 나라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더구나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진 미국도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합동성을 몰라서 그런가.
아니다.
전쟁을 많이 치른 나라일수록 전문성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더 걱정되는 것이 있다.
오늘은 통합이라고 한다.
내일은 독립성을 없애자고 할지도 모른다.
모레는 이름만 남기자고 할지도 모른다.
결국 육사도, 해사도, 공사도 역사 속 이름으로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 우려가 기우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논리 하나를 더 묻겠다.
특정 학교 출신 일부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학교를 통합해야 한다면, 왜 서울대학교는 그대로 두는가.
서울대도 연세대와 고려대를 합쳐야 한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학교는 죄가 없다.
잘못은 개인이 하는 것이다.
개인의 잘못 때문에 제도를 허무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더 큰 문제를 만드는 일이다.
안보는 정권보다 오래간다.
정권은 바뀐다.
그러나 군의 전통은 백 년을 간다.
한 번 허문 사관학교 체계는 다시 세우기 어렵다.
학교가 사라진 자리에는 다른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사라진 전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문제는 몇 년짜리 정책이 아니다.
대한민국 백 년 안보를 결정하는 문제다.
나는 올해 일흔두 살이다.
30년 동안 군복을 입었고, 육군사관학교와 자운대에서 직접 근무했으며, 평생 전쟁사를 연구해 왔다.
그래서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괜찮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안보만큼은 정치가 아니라 국익의 기준으로 판단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어느 정권을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쓴다.
국군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후손들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반대한다.
영원한 정권은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영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부디 이 결정만큼은 다시 검토해 주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72세 노병의 절규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국군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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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안보
#안보의뿌리는 실험대상이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