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아파라: 영화배우 이대근 씨가 아파 누운 늙은 어머니의 소변을 받아내다가 냄새가 역해서 얼굴을 찡그렸더니, 그 어머니가 껄껄 웃으며 “나는 네 기저귀가 얼마나 구수하던지 코에 대고 킁킁 맡기까지 했단다”.
겉으로 효도한 자신을 알게 되었단다. ‘노후(老後)’란 늙은 뒤의 시간이란 뜻으로 생활능력이 없어지거나 떨어지는 때인데, 현실의 노후는 밝고 힘이 있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우리나라의 고려장 같은 모습을 소재로 한 일본영화다. 가난한 시절 노동력 없는 노인들은 입하나 줄이려고 산속에 버려졌다. 영화 속의 노모는 튼튼한 치아를 가졌지만 가난한 살림에 아무 도움도 못되고 음식만 축내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어느 날 돌절구에 앞니를 부러뜨리고 아들에게 나라야마 산으로 보내줄 것을 채근한다. 아들과 자식이 힘들까봐 전날부터 곡기를 끊어 몸무게를 줄인 어머니와 한마디 대화도 잊은채 쏟아지는 눈 속으로 사라지는 모자의 애절한 모습! 우리나라와 일본 외 옛날 이누이트 족도 식량이 떨어지면 노인을 눈밭에 버리곤 했다.
밥은 먹고 사는 오늘날에도 노인과 늙음에 대한 시각이 힘없고 약하다는 인식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노인이니까‘ 라는 생각은 스스로 돌절구에 앞니를 짓찧는 행위와 같다. ’나라야마 부시코‘의 노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우리는 그런 불행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젊은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라: 평화(平和)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 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 둘 때이며, 행복(幸福)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 부딪힐 때이다. - 황대권<야생초 편지>중 -
“가족 가운데 노인이 있다면 그 가족은 보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중국 속담), “노인 한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아프리카 속담)는 노인이 가진 지식과 정보, 지혜를 칭송하는 말이었지만 요즘은 거꾸로 첨단시대에 이런 말이 죽은 말이 될지도 모른다.
“옛날에 내가....”라는 자랑 말고 젊어서 하지 않던 귀여운 (?) 짓을 가끔 하면 좋다. 명령 아닌 부탁으로 말이다. “아들아, 아버지 용돈 만원만 주련?”
존 러스킨은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라 했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서 채워가는 것이다.
나이듦에 대처하는 상식: 내가 생각하는 노년은 잔잔한 호수를 떠나는 나룻배다. 나룻배는 동력이 없다. 젊은 날에 다 소진했기 때문에 조금 남아있는 힘으로 저어가야 하는 나룻배는 천천히 갈수밖에 없다. 배의속도에 맞춰 주위풍경도 천천히 흘러간다.
평소 보지 못한 것들이 눈길에 닿고, 작은 소리도 가깝게 들려온다. 노년은 인생에서 느린 속도가 허락된 시간이다. 늘 내일내일, 다음다음을 생각하느라 심신이 바빴던 젊은 시절에는 여유를 즐길 수 없었다
첫댓글 평화 행복 기쁨으로 주일을 잘채워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