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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2 - 카이트 베이 요새에서 클레오파트라의 궁전을 생각하다!
4월 6일 우리 부부와 선배님 부부등 4명 일행은 카이로 람세스역 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
만에 종점인 알렉산드리아 마스르역 에 내리니 10분 정도 연착하여 13시 50분인데....
우선 급한게 오늘 밤에 카이로의 기자역에서 아스완 가는 밤차 를 타야하기에 카이로
로 돌아갈 기차표 라.... 매표창구를 찾아 카이로 기차표를 달래니 다른 곳으로 가라네요?
그 때 50줄의 이집션 이 자기를 따라 오라며 앞장을 서기로 잠시 망설이다가 뒤 를
쫓아가니 울 마눌은 낯선 사람을 함부로 따라 간다고 질겁을 하네요....
그러나 시간이 급한 나로서는 녀석을 따라 갈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로
안으로 들어가 조금 더 걸어 선로 옆 창구 에 도착해 카이로 표를 달라고 말합니다!
원래 16시 40분 기차를 타고 연착을 안하면 19시에 카이로 람세스 역에 도착하는데, 문제는
아스완 가는 밤 20시 침대 기차는 람세스역이 아니라 기자역에서 출발 하기로...
퇴근길 교통 지옥인 카이로 시내를 가로질러 택시를 타기도, 아님 아침에 지옥철
경험이 몸서리쳐지는데.... 다시 지하철 타자니 짐이 많아 그것도 걱정이 되어 불안합니다!
그런데 창구에 물어보니 인터넷에 나온 16시 40분 기차는 출발이 17시로 더
늦추어 졌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그건 포기하고 가벼운 마음
으로 오후 4시경 출발하는 기차표를 달래니.... 오후 3시 30분 기차는
좌석이 없고, 오후 3시 기차는 1등석은 매진 되고 2등석 몇장만 남았다나요?
지금 현재 시간이 오후 2시인데!!!!! 그럼 차 떼고 포 떼고 오후 3시 기차라면 알렉산드리아 관광은
불과 1시간!!! 어쩔거나? 눈물을 머금고 35파운드(7천원) 짜리 기차표를 받아 되돌아
나오는데, 좀 전에 창구까지 길을 안내해준 그녀석이 다가와서는 택시를 타지 않을거냐고 묻네요?
그럼 그렇지? 세상에 이집션이 공짜로 도와주지는 않을터!!! 불과 1시간 관광이라면 어차피 그냥
택시를 잡아서는 될일이 아니고, 전세를 내어 대기시켜 바로 돌아와야하는데, 그런데
녀석이 해안의 카이트베이 요새 왕복 ( 대기료 포함 ) 전세로 무려 100파운드( 2 만원) 나 부르네요?
바가지 요금이라 좀 불쾌하긴 한데.... 설사 녀석을 따돌리고 다른 택시기사를 잡으면
요금은 조금 절약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봐야 5 ~ 6천원 이라? 우리 4명
에게는 푼돈인데 그걸 깍자고 다른 기사에게 설명을 하고 흥정을 하기에는 시간
이 없네요! 다행히 이 녀석은 우리가 탈 기차시간 까지 아니 두말이 필요 없는 것이고!!!
해서 가방을 트렁크에 넣고는 우리가 탄 택시는 기차역을 빠져나가는 데.... 정신이 없었던 관계로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역사 사진 조차 나중에야 찍게 되는데, 지도에서 보았을 때는 해안
까지 일직선으로 뚤린 나비다니엘 거리로 달리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거라고 짐작했는데....
아니 이녀석이? 서쪽으로 가서는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구시가지를 들어서는데
여긴 구시가지 시장통이 아니야? 어쩌려고 이리도 복잡한 곳으로 들어왔담?
내 불안을 알아챘는지.... 연방 그 단어 하나만 아는지, “노 프라블럼” 을
외치는데 거리에 히잡이 아니라 차도르며 니깝을 쓴 여인도 보이고 전차도 지나 다닙니다.
택시는 구시가지 좁은 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니 언제 교통사고가 날지
모르는데다가 시간마저 흐르니 좌불안석..... 초조한 마음 입니다!
이윽고 야자수가 보이는 해변으로 진입하니 그제사 졸였던 마음이 풀어지 데 드디어 푸른
바다 지중해가 보이고... 흰색 소라껍질을 팔고 있는 리어카가 반가이 맞이 합니다!
택시에서 내리며 “텐 미닛” 을 외치니 택시기사는 한 술 더 떠 “파이브 미닛” 이라고
농담을 건넵니다? 그 때 저 멀리 미색의 철옹성 “카이트 베이 요새” 가 눈에
들어오니.... 비로소 그리도 힘들여서 우린 알렉산드리아 에 왔다는 실감이 나네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호모 베스타기움 ( 흔적을 남기는 인간 ) 으로 BC 4세기에 동방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알렉산드리아라 이름 붙인 70개의 도시 를 건설햇으니
그리스인을 동방에 이주 시키고 피정복민과 혼인을 장려 하며 페르시아등
현지인의 관습을 존중하였으니...... 대왕 조차도 페르시아 여인과 결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이 젊은 나이에 급사한후 정복지는 장군들이 군웅할거하여 내란을 거친 결과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의 3개의 나라로 재편되는데... 부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 왕조를
세워 여기 알렉산드리아를 수도 로 삼았으니 그는 군사를 출동시켜 마케도니아로 돌아가는
막대한 금은보화로 치장한 대왕의 시신 수레를 강탈해 여기 알렉산드리아에 장사 지냈던 것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조 이집트는 수백년을 계속하며 번영하였는데 세계 최고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을 지어 학문의 최고 중심지가 되었고.... 그 유명한 “파로스의 등대” 는 세계 7대 불가사의
로 불렸으나, 클레오파트라 여왕때 로마에 패해 망하고는 이집트는 역사의 무대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그후 지진 으로 항구의 옛 유적이 무너져버렸으니..... 팔로스 등대와 여왕의 궁궐
은 바다 밑으로 가라 앉았다고 하는데...... 후일 이슬람 통치하에서 무너진
등대의 돌들로 새로 쌓은 것이 바로 저기 보이는 "카이트베이 요새" 라고 합니다!
비록 법정 스님은 가고 없으나.... 송광사 불일암 후박나무 를 보면 그게 바로 스님
이듯이 여기 카이트베이 요새에서 나는 팔로스 등대 를 보는 것이니!
그럼 내가 지구 반대편에 온 김에 감상에 젖어 좀 지나친 비약 을 하는 것일까요?
*** 법정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 이 후박나무 밑에 묻혔다네요 ***
방파제에는 놀러나온 시민들 외에 낚시하는 사람도 많이 보이고 그 안의 바다에는
뱃놀이며...... 아직 철이 이른데도 개구쟁이들이 헤엄치느라 난리도 아닙니다.
예전에 상업 항구의 흔적일까요? 높은음자리 아니면 배의 닻 처럼 보이는 조각이
우리 눈길을 끄는데...... 그 옆으로는 벽화 가 예쁘고 관광 마차가 보이네요!
이제 카이로 가는 기차 시간이 30분도 채 남지 않았기로 택시를 타는데, 이번에는 시장통이 아닌
해변길로 가는 것을 보니.... 그럼 좀 전에 저 복잡한 시장통으로 왔던 것은 이 녀석이 바쁜
와중에도 알렉산드리아 시내를 골고루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것이었을까요? 그렇게 큰 뜻이???
야자수 우거진 알렉산드리아 해변길에는 또 예쁜 벽화 가 이어지는
데.... 차 안에서 이 항구에 얽힌 옛날얘기가 떠오르는 것이니....
율리우스 카이사르 ( 영어로는 줄리어스 시저 ) 는 반란( 쿠데타 ) 을 일으켜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
를 접수하고는, 동방의 패자 폼페이우스를 추격 해 여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에 상륙했습니다!
그 때 클레오파트라 는 BC 69년에 공주로 태어나 남동생과 결혼하여 공동 파라오가 되었으나
그리스계로 부터 외면 받자 왕좌에서 물러나 있었는데 도움을 바라고 찾아온 패장
폼페이우스를 남동생인 이집트 파라오가 살해하고 추격해 온 카이사르에게 시체를 인도합니다!
일설에는 양탄자속에 숨어 카이사르에게 진상된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의 환심 을사서 왕좌
(파라오)에 복귀하고 이집트어를 배우는등 주민 통치에 노력하던중 아들 카이사리온을 안고
시저와 함께 로마로 가는데... 이국 여인에 대한 로마 시민들의 반감이 높아지는데다가
카이사르가 황제가 될 꿈을 꾸자 BC 44년 브루투스등 로마 원로원의 공화파들은 그를 암살합니다.
이어 내전 이 벌어지고 조카 옥타비아누스는 외삼촌의 후계자임을 자청하고는
안토니우스 와 함께 공화파를 멀리 그리스 까지 추적하여 격멸합니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나세르 ( 혁명동지이자 상관인 대통령이자 총리 나기브를 후일
숙청) 나, 박정희 ( 5.16 쿠데타시 지도자로 모셨던 육군 참모총장이자 최고회의
의장 장도영 을 5개월만에 숙청) 가 그러했듯이 권력의 속성이란 나누어 가질 수는 없는 법....
토사구팽이라고 했던가요? 옥타비아누스는 전투 지휘에서는 젬병이라.... 그 대신 공화파
와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동방을 평정한 안토니우스 가 이집트로 오니
클레오파트라와 그만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니.... 멀리 터키 에페소스의 항구
에 까지 둘의 로맨스 가 전해지는 것인데, 자식이 셋이나 태어나 왕에 책봉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시민의 반감을 선동해 내란을 일으켜 마침내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 파트라와 결혼한 안토니우스 장군의 함대가...
BC 31년 에 운명을 걸고 그리스 북서쪽이자 이탈리아반도 동쪽에서 해전을 치르게 됩니다.
아드리아 해에서 벌어진 저 대 전투를 "악티움해전” 이라고 부르는데.... 50세의
안토니우스는 Azio 언덕 위에 중무장 보병 6만 5천, 경보병 2만명에 기마병
1만 2천등 전투병만 10만명을 대기시키고 자신의 장기인 육전을 주장하게 됩니다.
*** 그리스 서북부 악티움 해전이 벌어졌던 바다 위의 언덕 ***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의 간청으로 해전을 받아 들였다는데, 이집트의 도움으로 5단층 ( 노 하나에
노잡이가 5명으로 5줄 ) 갤리선 520척의 대함대 ( 선원과 전투원 15만명 ) 를 편성하였으니!
임진왜란때 일본 세키부네 보다 훨씬 큰 조선의 판옥선은 노가 한줄 뿐이었는데 무려 5줄 이라니?
남쪽인 그리스 “파트라스” 에 본영을 설치 한 후, 일약 출격하여 그리스 서북쪽 “이고멘시아”
로 출전하였던 것이며 반면에 옥타비아누스도 육군은 북쪽 해안에 비슷한 병력을
동원하였으나... 해군은 5단층 군선 ( 노 하나에 노잡이가 5명 5줄 ) 5척을 포함하여...
400척 (나머지는 노 3층 군선) 으로.... 배의 크기도 작았거니와 숫자에서도 열세 였습니다.
*** 안토니우스가 본영을 차렸던 지금의 그리스 항구도시 파트라스 ***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아다시피 옥타비아누스의 대승으로 끝나는 것이니, 궂이 해군세력
이 약세임에도 불구하고 역전의 이유 를 들자면.... 전투에는 약한 옥타비아누스
는 뒤로 빠지고 그의 대리인인 “아그리파” 장군이 배에 “화기” 를 장착했다 는 것이지요?
뱃머리를 날카롭고 견고한 충각 (衝角, Ram) 으로 적선을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작전을 세운 것에
바람을 적절히 이용 한 정도이며, 반대편에서 보자면 “클레오파트라” 는 패전 이후의 경우도
대비 했으니, 결국 이 한번의 전투에 모든 것을 걸지 못한 “안토니우스의 미련” 이 승부를 갈랐다는?
1614년 오사카성 전투에서 요도기미가 그러했듯이 사사건건 클레오파트라의 간섭으로 안토니우스
휘하의 골수 로마 군인들이 실망하여 탈영하는 와중에서 해전이 시작되었는데
안토니우스군은 해군력의 우세( 함선이 대형선에다 숫자도 많았다 ) 로 서전에서우위를 지켰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어 바다가 불타며 아수라장이 되는 광경에서 클레오파트라는 겁을 먹었으니 일개 아녀자(!)
로 전락 하는데, 마침 북풍이 불자 겁에 질린 클레오파트라는 돛을 달고 남쪽으로 내빼니 이집트 군함
60척이 그뒤를 따랐으니.... 요도기미도 포탄 한발이 오사카성 천수각에 떨어지자 겁에질려 화의에
응해 오사카성 2중 해자를 메우고 요새를 허물어 잠시 평화를 맞았지만 결국 2차 공격으로 할복 자결합니다.
이것을 본 안토니우스는 전투고 뭐고 부하들을 다 팽개치고 “사랑을 쫓아” 돛을 올리고 클레오 파트라를
뒤따라 전선에서 이탈 하니.... 그다음은 말해서 무엇 하랴? 역사를 바꾼 세기의 “위대한 사랑”
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그런 심약한 장군을 따랐던 20만명의 군인들이 불쌍 하다고 해야 하나???
해협을 마주보고 육지에 있던 10만 지상군은 여드레 동안이나 사령관 “안토니우스” 를 기다리며
죽을 힘을 다해 분전했으나, 그는 부하를 버리고 연인을 쫓아 이집트로 도망쳐버린 것을...
추격해온 옥타비아누스 에 의해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하고 그녀에 대한 흔적이 철저히
파괴 되었으므로 현존하는 유물은 거의 없고 싸구려 담배의 이름으로만 남았을 뿐이라고 하네요!
그후 로마로 개선한 옥타비아누스는 유일 지배자로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
라는 칭호를 받았으나 조심성이 대단하여.... 생전에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 시민 가운데 제1인자를 뜻하는 프린켑스 Princeps 로만 남았던 것입니다.
이후 이집트를 복속시키고 게르마니아를 정벌하는등 로마제국의 영토는 팽창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로마의 노예시장도 번창하였다고 하네요!
이런 회상 중에도 우리 택시는 야자수 우거진 해변길 을 지나서 도심으로 접어
들었는 데, 도로에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다시 걱정이 되어 마음을 졸입니다.
카이로 기차 시간 10분을 남겨두고 마스르역 에 도착하기로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며
“슈크란!” 이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더니 녀석은 손을 벌리면서 “박시시” 라네요!!!
야 이녀석아! 요금을 그리 비싸게 받았으면 되었지 무슨 박시시 야? 염치가 있어야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걸 팁 이라고 번역하고 성가시게 생각하는 데...
원래 유대교에서 나온 기독교와 이슬람등 세 종교는 가나한 자를 도와주는 것을
권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이슬람은 이런 자선이 신을 섬기는 종교적 의무사항 이라!!!
그러니까 받는 사람이 고마워 할 일이 아니고, 그런 선행(보시)을 베풀수 있는 기회
를 준것이니.... 오히려 “주는 사람이 고맙게 생각” 하라는 방식이니...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에게 “당연하고 떳떳하게 박시시” 라며 손을 벌리는
것입니다!!! 어쨌든 무사히 카이로 가는 기차에 오르니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후일 기차시간표 사이트 : http://touregypt.net/trains.htm 에 접속해 보니 그새 사이트가
새로 개편 되었는 데.... 중앙에 See Also 라고 적힌 밑에 푸른색 글씨로 "Abela Egypt for
Sleeper TrainInformation " 라고 적혀 있는 것이 하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가는 시간표 인데.....
출발 시간표가 위에서 처럼 변경되었는 데, 카이로에서 아침 8시 출발(10시 10분 도착),
8시 30분 출발(11시 10분 도착), 9시 출발(11시 20분 도착), 11시 출발 기차 순이고...
돌아오는 기차는 알렉산드리아에서 15시 출발 (17시 카이로 도착), 15시 30분 출발(18시 10분 도착) 이
있는데.... 아니 세상에??? 17시 20분 기차는 침대차 로 20시 10분에 카이로 (람세스역?)에 도착해
20분후 다시 출발해서는 룩소르에 5시 35분 정차한후 아스완에 8시 50분에 도착하는 것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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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된다 .
네 생각은 네 말이 된다.
네말은 네 행동이 된다
네행동은 네 습관이된다 .
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된다 .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
(간디)
오늘 하루를 만끽하며 살아야 한다.
건강과 행운이 있는 행복한 시간 되세요.
👌👌👌
바람이 아주 매섭습니다.
건강에 조심해야 할 계절인가 합니다.
이집트 🇪🇬 의 여왕이요?
알렉산드리아........
참으로 오래된 도시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