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빚진 돈의 액수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돈을 갚지 못하는 동안 가해지는 심리적 압박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조여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최후의 해결책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교수는 외국의 사례를 들었다.
“미국만 해도 카드회사는 고객에게 전화해서 함부로 말을 못한다. 잘못했다간 인권 침해로 소송을 당할 수 있고 손해배상액이 채무 액수보다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에 빚 독촉에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그래서 카드회사에서 빚 갚기를 독촉하는 전화가 걸려올 때 채무자는 상대에게 “녹음을 해도 좋으냐”고 양해를 얻은 뒤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이 채무자의 권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대학생 박선희씨(25)는 카드빚 60만원이 연체된 지 3일이 지난 뒤부터 카드회사에서 매일 전화를 받는다. 받아야 할 과외비가 이번 달엔 늦어져 결제일을 놓친 때문이다. 그래서 1주일 뒤에 갚겠다고 말했으나 직원은 당장 돈을 마련하라며 위협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그래도 박씨는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돈을 갚지 못한 ‘죄인’ 신세이기 때문이다.
신용회복법 제정을 위한 3백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정미현 부장은 “대부업법 등은 빚을 받을 목적으로 채무자에게 협박·폭행 등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유형이나 기준이 없다”며 “아직까지 불법 채권 추심에 대한 지도나 제재를 받은 업체가 한 군데도 없다”고 말했다.
불법 채권추심 등 채무자 보호를 위한 규정은 현재 대부업법과 여신전문금융업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명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채무사실을 제3자에게 알리는 행위 ▲정당한 사유 없이 채무자 또는 그의 관계인을 방문하는 행위 ▲말이나 글, 음향, 영상, 물건을 사용해 채무자 또는 그의 관계인에게 도달하게 하는 행위 등을 ‘채무자에게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히 해치는 일체의 행위’로 보아 금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가족, 직장에 채무사실을 알리는 행위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법으로 간주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채무자의 인권과 신용정보 비밀 유지를 위한 구체적인 금지 사항이 법률에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처벌범위가 너무 모호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오후 9시부터 오전 8시 사이에 전화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에 해당하며, 거주자의 허락 없이 방문하는 것은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헌욱 변호사는 “신용카드사의 추심 담당 직원과의 전화 통화에서 인격 침해로 느껴질 내용이 있다면 녹취내용을 금융감독위원회나 소비자보호원에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채무자가, 채권자가 가하는 인격 모독에 대해 당당히 맞서기란 쉽지 않다. 채권자의 권한이 막강한 상황에서 밉보이기라도 하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시민권리팀 정지인 간사는 “채무자도 인격과 인권이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며 “신용불량자가 3백50만명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지금도 채권자의 권리만 강조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카드사 연체율이 20%를 넘어서고 채무 불이행에 대한 법적 처벌이 전무한 실정에서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문제는 자주 거론돼 왔다. 그 사이 채무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사실은 묵살돼 왔다. 이제 카드빚 자살의 원인은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는 심리학자의 분석을 귀담아들을 때가 됐다.
첫댓글 정말인거사같았요 심리적이 압박이 장난이아니던데 무단침입도 아무러치않게하더라구요 정말 스트레스받아서 살수가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