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뭇가지에 노란 좁쌀을 뿌려 놓은 듯 산수유꽃이 필 때만 해도 극성스러운 꽃샘바람의
추위는 전혀 가시지 않아 봄이라고 솔직히 느끼지 못했다. 다만 이 추위에 무슨 고생인가 싶어
성질 무척이나 급한 산수유꽃이 애처롭기만 했다.
어느 날 문득 노란 개나리가 언덕길 위에 피어있는 걸 우연히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쟤네들이.... 무슨 짓을 한 거야 봄인가 보네.
봄꽃들이 피고 있으니 봄은 봄인데 봄을 느낄 수가 없는 건 왜일까?
여전히 바람결은 차갑기만 하여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의 질투를 언제까지 참아내야 하는지
때론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불과 며 칠 전 아침 햇살이 봄을 부르던 출근길,
개나리가 잘 있나 하고 언덕길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어머 살구꽃이! 그랬다 그것은 분명히 꽃분홍 살구꽃이 화사하게 피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쿵했다.
드디어 새봄 왔구나! 새봄에는 무엇을 할까?
새봄에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갑자기 막연해진다.
힘이 쑥 빠져 천천히 출근길을 가고 있는데
등산복 차림의 여인네 둘이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지나간다.
아... 그래 나에게는 산이 있었어 구세주 같은 산이.
북한산 백운대 산행
산에 나무를 심는다는 식목일 다음 날 북한산 백운대로 산행이 있었다.
한 달 만에 산행 잘해 낼 수 있을까 살짝 불안했지만 북한산 백운대는 꼭 가보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간식만 준비한 배낭을 매니
가볍다는 것만으로도 가뿐하게 산행을 할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잿빛구름과 숨바꼭질에 여념이 없는
해님을 슬쩍 엿보며 산행하기 참 좋은 날이구나
하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1 시간 하고도 20분을 전철을 타고 산우님들이
기다리는 북한산 우이역으로 갔다.
우선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산우님들과 팀을
이루어 도선사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백운대 가는 길'이라 쓰여있는 아치형 나무 현판과 고풍스러운 나무문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웃음꽃이 터지며 눈 맞춤을 했다.
세심하게 나와있는 북한산 코스별 안내판에는
현 위치에서 하루제까지는 0.4km 백운대까지는 1.8km라고 한다.
백운대 1.8km 길지 않은 코스이지만 쉽게 산행
할 것 같지 않은 예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우선 하루제까지 가는 게 급선무이지만 하루제 400m까지는
깔딱 고개라서 초반부터 전혀 쉽지 않은 산행이다.
연분홍 진달래가 저만치에서 깔딱 고개 산행을
하는 우리를 수줍게 바라본다.
비단결처럼 얇디얇은 꽃잎에 마음이 빼앗겨
눈길은 그들 곁을 떠날 줄을 모른다.
이따금 가까이 다가온 연분홍 꽃잎을 만져보고 싶은
강렬한 유혹도 일었지만 차마 만지지는 못하고 재빠르게 발길을 돌렸다.
오뉴월 산행도 아닌데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부채를 가져올 걸 때아닌 후회를 하며 감감무소식인 바람을 기다려본다.
둥글게 때론 뾰쪽하게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제
멋에 겨워 흙속에 박혀있는 이름하여 너덜바위
가파른 경사길에는 노란 제비꽃이 우리를 따라오며 응원하고 있다.
지극히 자그마하고 앙증맞은 그들의 응원에
깔딱 고개 산행길에 탄력이 붙어 들머리 도선사에서 하루제 400m를 무사히 올라왔다.
물론 평지에서 400m는 별거 아니지만 너덜길
깔딱 고개를 가볍게 올라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프로 산행꾼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허연 속살을 보이며 인수봉이 눈앞에 있다.
오늘 우리가 가야 하는 백운대도 인수봉 옆으로 살며시 선을 보인다.
백운대까지 1.4km 남었다는 나무표시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산우님들과 발길을 서둘러본다.
자 이제는 시소 타기 게임처럼 쭉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쭈욱 바위뿐인 산길을 올라갔다.
생강나무꽃,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살구꽃까지 봄꽃들이 차례를 지켜
너도나도 피어서 봄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조용한 숲 속에
봄 햇살이 내려앉으며 봄을 재촉하고 있다.
저만치에서 백운대 1.1km라는 나무 표시판이
무심하게 봄햇살을 맞으며 서 있다.
그 너머로 제법 가파른 나무계단도 보였다.
선두에서 산행을 하기 때문에 과히 힘들지 않게 산행을 하지만,
시종일관 가파른 바위길이라 산행에 속도는 붙지 않는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가자 바람이 드디어 지나갔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시원한 바람"
우리가 예전에 배웠던 동요가 진리일 줄이야.
시원하게 부른 바람에 온몸을 맡기자 산행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가파른 바윗길을 쉼 없이 오르고 또 올라 우리를 기다리는 백운대 산장에 왔다.
산장에서 산우님들과 가볍게 간식을 먹고 눈앞에 보이는 백운대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백운대까지는 0.5km라고 하지만 이제는 험준한 바윗길을 타야 하는 산행만 남었다.
조심조심 바윗길을 올라가기도 하고 더 위험한 구간은 쇠로프를 잡고 올라갔다.
북한산 만경대가 나타났다.
바위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철탑처럼 위엄 있게 서있는 모습이라니.
과연 대자연의 오묘한 조화가 새삼스러워
그를 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바위에 박혀있는 쇠말뚝에 연결해 놓은 쇠로프를 잡고 바윗길을 올라갔다.
사고는 산행에 끝이기에 조심조심 올라가지만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등산객들이 많아 사고의 위험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까마귀들이 백운대 정상을 날아다니며 까악 까악 울어댄다.
"아니 쟤네들이 왜 온 거지"
하필이면 까마귀라니 왠지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떨쳐버리려 하여도
쇠로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드디어 태극기가 보이고 백운대(836.5m) 정상이다.
하지만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 모여든 등산객들의 줄은 끝날 줄을 모른다.
북한산에는 주봉인 백운대(836.5m)와 인수봉(810.5m) 그리고
만경대(787m)가 있어 고려시대에는 삼각산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서울 근교산 중에는 골이 깊고 산세도 수려하여
국립공원으로써의 품위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북한산.
저 멀리 발아래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들이 지지고 볶고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삶의 터전이.
백운대 봄바람.
바람이 분다 봄바람이 백운대 정상에도.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에도.
때론 세상사 상처받아 아픈 마음에도.
2024.4.6
NaMu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까마귀들이 "아니 쟤내들은 왜 오지?" 했다지만
나무랑님이야말로 참 아슬아슬한 산행을 했네요.
나는 남산길을 두어시간 걸었을 뿐인데요.ㅎ
건각이 부럽습니다.
글쎄말예요. 까마귀가 저공비행하며 까악까악 거리는데 겁이 덜컥 났다니까요.
산행은 재미 있었어요.
왜냐면요 안전장치가 넘넘 잘 되어있었거든요.
남산길도 좋아요 선배님.
북한동암문(위문)에서 백운대 오르는 길이
눈에 선합니다. 참 아름다운 산이지요.
산도 사람도 아름다운 계절임을 보여주네요.
저도 주말엔 올라보려고 해요.
주말엔 그저 새벽에 올라가야 사람들이 좀
적답니다. 사진은 올해 첫날 백운대에 올라
찍은 것입니다.
지금은 진달래가 피어있어서 진달래능선도
유난히 멋있을 것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관악산 육봉보다 안전장치도 잘 되어있고 한번에 쭈욱 올라가면 되니까 백운대가 더 좋았어요.
그러게요 주말에는 사람들 엄청 많아요.
근데말예요 백운대 정상에서 태극기 인증샷은 못했지만 그래도 백운대는 관악산보다는
사람들이 적었어요.
왜 관악산 이야기를 많이 하냐구요.
저희 집에서 가까우니까 아무래도 관악산을
자주 다녀서요.
백운대 정상 인증샷 멋있으세요.
북한산 백운대,
상쾌한 봄바람을
온몸으로 포옹하겠네요.
가는 길 곳곳에
봄이 왔으니 나 여기 있어
나무랑님, 여기 나 좀 봐줘~
많은 꽃들이
아우성을 할 것 같네요.
그 속에 묻혀서
백운대 정상에 발을 찍었네요.
나무랑님도
자유로운
봄꽃이 되었습니다.
넘넘 가보고 싶었지만 갈 기회가 없어서요.
포기 상태였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새봄 제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걸 했고,
글도 써 봤으니 이만하면 새봄이 주는
선물은 다 받은 거나 마찮가지 인거죠.
여러가지로 감사드려요 콩꽂언니.
나가 미쳤지
여기는 어디며 나는 누구인가
산 탈 때 맨처음 반 시간때 마음~
덕분에 북한산 잘 다녀왔습니다
(도선사 택시 를,
올라갈 때 타는 방법도 있구나!!)
그러게요 산행 시작하고 맨 처음이 어려워요.
하다보면 지구력이 생겨서 괜찮은데요.
옙^^ 우이역에서 도선사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체력 확보에 만점이예요.
아직은 많이 서투른데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북한산을 자주 갔으면서도
백운대는 딱 한번 올라가보았네요.
힘들어서 그 다음부턴 비봉과
사모바위쪽으로만 오르내렸습니다.
사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맘자리님이 산행 할때는 아마 바위를 로프를 타고 올라 가셨을텐데요.
지금은 안전장치가 넘나 잘 되어 있어서
식은죽 먹기보다 더 쉽게 갈 수있어요.
더군다나 도선사에서 1.8km밖에 안잖아요.
백운대 가는 가장 단거리 코스라서요.
다음에는 비봉이나 사모바위 가게되면
또 올려 볼께요.
북한산엘 못가봤으니
당연히 백운대도 못가봤지요.
산에 오르시는 나무랑 님이 부럽습니다.
산위에 오르다 보면 무궁무진
볼 것도 많을 텐데요.
저도 산행을 못 했었는데요.
하다보니 쪼금 늘었어요.
지금은 건강하게 산행 할 수있음에
감사해요.
옙^^ 산은 힐링 그 자체인 것같아요.
단지 제가 표현력이 아직은 서툴러서요.
잘 봐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이베리아 님
그날 즐거웠습니다. 나는 정상 태극기가 보이는 바로 아래지점서 집안 가족모임에 시간늦지않게 참석하려고 부지런히 내려왔습니다.
백운대에 오고가는 외국인이 그렇게 많은걸 보니 명산은 명산인가봅니다. 도선사에서 택시를 합승하는데 싱가폴서 여행온 젊은친구 셋과 같이 탔습니다. 합승이 올라갈때는 2천원 내려갈때는 천원이더군요.
택시기사가 싱가폴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를 서툰영어로 계속 칭찬해주어 싱가폴친구들이 아주 고마워했습니다. 이게 민간외교죠.
우리는 선두 주자였어요.
그~쵸.
아 먼저 내려 오셨군요.
저도 일이 있어서 뒷풀이는 참석을
못 했어요.ㅠㅠ
도선사 운전하는 택시기사님은 영어가
필수 인가봐요.
넘나 멋찐 택시기사님 이시네요.
어젠 눈뜨자마자 백운대가려 했더니 날이 너무 흐렸더라구요.
올해 첫산행을 뿌연 풍경보러 가긴 싫었어요~(적당한 핑계 찾음ㅎ)
꿈의 숲 자락을 몇 바퀴 도는 걸로 대신했는데
이렇게 시원한 사진과 글을 보니 반갑네요^^
다시 주말을 노려봅니다.^^
오늘도 날이 흐리네요.
잘 하셨어요.
옙^^ 어설픈 제 글로 만족 하시구요.
요번 주말 파이팅 이예요 둥실 님.
개인적으로 저는 백운대 언제가도 참 좋은 것같아요.
요번 주말은 진달래 능선이 넘나 좋을 것같은데요. 대신에 산행이 길어서요ㅠㅠ
등산길보다는 꽃이 눈에 너무 들어와
글을 정독하지 못했어요 .
나무랑님도 꽃 보듯이 보았습니다 .
너무 아름다워서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