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치과병원에 간다고 한참 차를 몰고 가다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 얼핏 창 밖을 보니, 자투리 공원(뭐 말이 공원이지 관목 몇 그루에 몇 가지 꽃들이 심어진 손바닥만한 땅이었지만) 안에 높다란 돌에 커다란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글씨인 즉슨 '초아의 봉사'란 글이 씌어져 있고 그 옆 여백에 조금 작은 글씨로 무슨 라이온스클럽이라고 자랑스런 듯 새겨져 있었는데...'봉사'란 낱말은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초아'란 단어는 무슨 뜻일까? 짧은 순간 잔머리 굴려봐도 언능 생각나는 게 없었다. 혹시 '초야(初夜)의 봉사'라고 쓸 걸 잘못 쓴 건 아닐까? 왜 있잖여, 첫날 밤 사랑하는 이에게 정성을 다해 온몸으로 뭘 한다는 거 말이다, 흠!...
그래도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어쩌구 저쩌구 하는 옛시조의 가르침을 좇아 잔머리 요리조리 굴리다 보니까 겨우 '초아'란 낱말의 뜻이 생각나고 문장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쓰지 않고 소리만 차용할 때 부딪치는 해프닝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라 하는감?
옛날 어렸을 때 읍내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여인숙'이란 간판을 군데군데 볼 수 있었는데, 그곳이 여인들을 손님으로 받는 숙박시설이란 건 짐작할 수 있었다지만 그럼 남자 여행객들은 어디서 잔디야? '여인숙(旅人宿)'이 집을 떠나온 여행객들이 묵는 집이란 건 한참 뒤에 알게 되었지만...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형님이 보는 잡지 속에는 예쁜 여자들의 사진이 좌르르 실려 있었는데, 사진 아래에는 어김없이 '여우 엄앵란', '여우 도금봉'. '여우 김지미' 뭐 이런 글들이 달려 있었다. 여우? 과연 잡지에 실린 배우들의 사진은 한결같이 불여우라 불릴만할 정도로 짙은 화장에 요염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으니 여우란 말이 틀린 건 아닐 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거기에 실린 '여우'란 낱말은 'fox(狐)'가 아니고 'actress(女優)'였다네. 뭐 무식하면 걱정이 없고 행복하다더만 내가 꼭 그 꼴이었으니...
뿐인가?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가운데 제목이 '여수'란 게 있었는데, 그 곡의 가사 어디에도 전라남도의 남해안 쪽에 있는 '여수'란 도시 이야기는 없었다. 그럼 웬 여수? 가사를 들어보면 떠나 온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게 전부인데 '여수'는 또 뭐여? 그 역시 노래 제목인 '여수(旅愁)'가 지명이 아니고 여행자의 근심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건 훗날 알게 되었지만, 쩝!...
한자의 뜻을 몰라서 겪는 혼란이 이러 하니 국한문 혼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때로 힘을 얻곤 했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인터넷의 보급은 그런 주장들을 쏘옥 들어가게 만들고 말았으니... 대중가요 가수 이연실님이 부른 '여수'는 미국민요 'Dreaming of home & mother'의 번안곡인데, 은희님은 같은 멜로디에 '고향집과 어머니'란 제목을 붙여 불렀다는데...하긴 뭐 이 노래를 갖고 일본에서는 '여수(旅愁)', 중화권에서는 '송별(送別)'이란 제목이 달려 있으니, 우린 뭐 '고향집과 어머니'로 해도 괜찮으려나?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초아의 봉사'가 무슨 뜻일까? 여기에서 '초아'란 자신을 넘어선다는 '초아(超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는데, 달리 말해 'beyond self'라 하면 쪼옴 더 이해가 더 잘 되려나? 하지만 또 이상한 게 흔히 우리가 접하는 영어 구문에 저런 구(phrase)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거다. 라이온스 회원들이 얼마나 희생적으로 봉사하면 저렇게 자아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를 정도일까? 아 몰라 몰라...'여수' 노래나 감상해 보자. 근디 naver에선 잘도 업로드되더만 여긴 맨날 꽝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