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이야기지만 남자들이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 논산훈련소엘 많이 가게 되는데 훈련소에서 군사훈련을 받기 전 수용연대라는 일종의 대기소를 거쳐간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다. 몇날 몇일 샤워도 못하고 이리저리 사역을 끌려다니며 궂은 일을 하다보면 슬픈 모양새가 된다.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뭘까? 등산과 무슨 관련이 있길래?
처음 수용연대 내무반에서 2열로 앉아 밥을 받아든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찬도 없이 꿀꿀이죽처럼 나오는 밥은 한마디로 충격이었고 도저히 사람이 먹으라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낭만적인 생활을 하다 온 젊은이들로서 개밥을 넙죽 먹을만한 용기가 없었고 집에서 가져온 돈도 남아 있으니까 PX에 가서 빵과 우유로 떼울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대안도 있었기 때문이리라.
수용연대 잔밥을 독하게 생각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오대산 소금강계곡으로해서 노인봉을 오르던 때였다. 협력업체 직원과 4명이 집단지구에서 1박하고 아침에 일어나 옆친구가 코펠에 아침을 준비했는데 밥은 덜 익었죠 통조림으로 만든 찌게는 비린내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 없어 굶고 출발했다. 훈련소 수용연대 개밥에 비견되는 식사였으니까.
다들 기운이 팔팔한지 뛰듯이 가다보니 노인봉 정상에 12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나에게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더니 정상 바로 아래 산장이 있는 곳에서 기진맥진하여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벌렁 누워 하늘을 보는데 노랗게 보였다. 죽는줄 알았다. 일어날 힘도 없는데 먼저간 녀석들은 정상에서 야호를 외쳐대며 사진도 찍고 좋아하는 모습에 오기가 발동하여 죽기살기로 기어서 정상에 올라갔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산행 초보시절의 무지로 고생했던 모습이 너무 우습다. * 참고로 입산금지 기간이라 오를 때는 엉뚱한 길로 올랐고 하산은 용감하게 소금강계곡으로...
물도 남아있지 않아 급히 내려와 계곡에서 라면을 끓어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라면 중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의 요지는 산행에서 식사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물도 중요하고 운행식도 중요함은 물론이다.
산행을 출발하기 전 며칠간의 식사나 휴식 역시 중요하다.
백두대간 종주등 장거리산행을 해보면 스스로 터득되는 사실이다. 이밖에 '지치기 전에 휴식하고 배고프기 전에 먹어라' 하는 중요한 사실도 알아야한다. 한창 산행에 물이오른 시절 지리산 당일종주에 도전할 때 첫번째 시도에 보기좋게 실패하고 나서 절실히 깨달은 것이 있으니 출발 전 며칠간 휴식과 영양식의 중요성이다.
우리 몸은 비상시를 대비하여 몸에 지방 형태로 에너지를 비축한다. 그리고 근육에는 글리코겐의 형태로 탄수화물을 저장해둔다. 비타민과 미네랄은 주로 세포속에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녹아있게 된다. 우리 몸은 지방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양이 불충분하면 중요하지 않은 기관에서 단백질을 분해하여 사용한다. 그래서 단식을 하면 소화기 등 몸이 약해지는 이유이다. 또한 휴식이 불충분하면 중간대사물질인 노폐물이 쌓인다. 노폐물이 쌓이면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쉽게 피로하고 힘이 들게된다. 이 모든 것이 등산할 때 영향을 주기 때문에 휴식과 영양식이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몸을 구성하는데 필수적인 양질의 지방(필수지방산)과 단백질(필수단백질)의 섭취로 우리 몸의 약한 곳을 보수하고 세포기관과 근육에 필요한 영양소를 쌓아 두어야한다. 특히 비타민 B군은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중요하다. 음식물은 소화가 되어 신체 내에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생화학적 싸이클을 거친다. 비타민 B군은 생화학적 싸이클에 사용되는 효소(엔자임)와 조효소(코엔자임)의 주성분이 되기 때문이다. 이밖에 등산할때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므로 활성산소(free radical)가 많이 나와 우리 몸 구석구석 주요 장기를 공격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산화방지제를 계속 먹어줘야 하는데 비타민 C, 멀티카로틴 (비타민 A 전구물질), 엽산, 비타민 E(토코페롤), 식물내제 영양소(pytochemicals) 등이 필요함은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무얼까? 장비이다.
산행을 안하다 하거나 장거리산행을 하면 무릎관절이 아픈 것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게 된다. 난 처음에 관절이 약해서 아픈 줄로 착각했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근육이 약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관절을 움직이려면 관절 자체도 튼튼하여야 하겠지만 관절을 움직이는 근육이 튼튼해야 하는데 산행을 오래 하지 않았다면 근육이 약해져서 제대로 관절을 움직이지 못하니 관절이 아프게되는 것이다. 나중에 산행을 계속하면 서서히 근육이 튼튼해져서 관절이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약한 근육과 관절을 보호해주는 것은 장비의 역할이다.
우리가 많이 하는 무릎보호대 외에 '툴리스'(제품명)라는 발 밑에 대는 깔창같은 것이 있다.
고무재질에 격자구조로 만들어져 충격을 흡수한다고 하는데 우리 몸에 받는 충격은 차례로 발목→무릎→골반→등뼈→목뼈 관절에서 연골이 지탱하게 되는데 툴리스를 신으면 관절이 보호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지리산 종주했을 때 이놈의 혜택을 많이 본 기억이 있다. 가격은 '치타'라고 하는 모델이 인터넷몰에서 7만원(3만오천원*2개)하고 있는데 닳지 않으므로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평생을 쓸수도 있고 중요한 우리몸을 지켜주므로 비싸다고 볼 수만은 없겠다.
다음으로 알파인스틱도 유용하다.
알파인스틱은 사용법을 잘 모른 채 남들 하는대로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겨울철에는 아이젠 대용으로 늘 휴대하는 편이다. 아이젠은 차에 비유하면 스노타이어나 체인에 해당되는데 적설기 운전경험이 많은 운전자는 체인없이도 잘 운전할 수 있다. 같은 원리로 등산도 적설기 경험이 많으면 아이젠 없이도 스틱으로 균형을 잡으며 산행할 수 있다. 빙판이 심하거나 경사가 급한 곳에는 그래도 스틱으로는 부족하여 아이젠을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동절기 외에 아무 때나 스틱을 들고 산행하는 것은 별로 권장되지 않는다. 사람이 길게 늘어서 산행할 때 스틱을 길게 빼서 뒤로 향하게 하고 걸으면 날카로운 부분으로 뒷사람을 다치게 할수 있을뿐더러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스틱 끝을 신경쓰느라 즐거운 산행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인 자신도 노인네처럼 지팡이 짚고가는 꼴이 보기좋지는 않다. 또한 너덜이나 하산 시 지친상태에서 스틱이 바위같은 곳에 끼면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크게 다칠 수 있음도 기억하여야 한다.
관절을 보호하려면 급한 내리막이나 하산 시 너덜이 없는 곳에서 스틱 2개를 사용하여 지치기 전 균형을 잡으며 내려오도록 하자.
결국 장거리 산행을 위해서는 (1) 무릎보호대, (2) 툴리스, (3) 알파인스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외에도 중요한 것은 많이 있을 것이며 개인별로 노하우 하나쯤은 나름대로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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